[Oh! 시네마]‘로건’ 울브린, 마블이 DC를 꺾는 비밀병기
OSEN 손남원 기자
발행 2017.03.01 08: 59

[OSEN=유진모의 취중한담]엑스맨의 최고 히어로 울버린의 마지막 영화 ‘로건’(제임스 맨골드 감독, 이십세기폭스코리아 배급)은 확실히 ‘엑스맨’ 시리즈나 기존 울버린의 스핀오프 ‘엑스맨 탄생 울버린’ ‘더 울버린’ 등과 확실히 차별화된다.
20세기만 하더라도 마블에 비해 DC가 한 수 위였다. 슈퍼맨과 배트맨이 DC의 든든한 간판스타였고, 21세기에도 크리스토퍼 놀란이란 연출계의 슈퍼히어로가 ‘다크 나이트’ 시리즈로 배트맨을 더욱 철학적으로 탄탄하게 완성함에 따라 동력을 유지했다.
하지만 마블은 21세기 들어 ‘엑스맨’(2000)과 ‘스파이더맨’(2002)이란 양대산맥으로 DC에 확실히 역전했다. 그 중심엔 울버린이란 캐릭터와 이를 17년간 훌륭하게 소화해낸 슈퍼스타 휴 잭맨이 굳건하게 버티고 있었다.

처음 등장한 로건에게 엑스맨 팀은 울버린이란 이름을 지어줬지만 사실 로건의 외모는 늑대에 더 가까웠다. 왜 울버린인지는 점차적으로 자연스럽게 설명이 됐다. 울버린은 덩치는 작지만 퓨마나 곰조차도 기겁해 먹이를 던지고 도망갈 정도로 성질이 포악한 포식자다.
로건은 불륜이 낳은 혼외자에 아버지를 죽인 가정적 트라우마가 크다. 성장해 정부의 프로젝트에 의해 뼈가 아다만티움(최강금속)으로 대체된 비밀병기로 거듭났지만 도망쳐 홀로 떠돌던 방랑자다. 어느 이데올로기에도 속하지 않는 아나키스트에 어디로 튈지 모르는 럭비공 같은, 돌연변이 중에서도 이단아다.
살과 뼈가 칼에 찢기고 총알에 으스러져도 금세 자연치유 되고, 늙지 않는 힐링펙터의 초능력은 돌연변이 중 최고의 변별성이다. 두개골에 아다만티움으로 만든 총알을 맞지 않는 한 불사신이다.
지금까지 로건은 돌연변이의 원조이자 신적인 존재인 아포칼립스와 부딪치지 않았을 뿐 사실상 그보다 더 강력한 수많은 돌연변이들과의 싸움에서 승리했다. 전투력은 떨어지지만 불로불사 초능력에 각별한 의지를 갖췄기 때문이다. 그래서 울버린이다.
그런데 핵폭탄의 공격에도 살아남은-황당하게도-‘더 울버린’과 다르게 ‘로건’에서만큼은 울버린은 철저하게 인간적인 로건이다. 영화는 슈퍼히어로의 활약을 그린 액션에 충실한 ‘엑스맨’ 시리즈나 2편의 ‘울버린’ 외전과 달리 황폐화되는 지구와 멸망을 향해 치닫는 인류의 회한과 비애를 그린다. 기존의 울버린이 트라우마와 소외에 대한 응어리를 풀기 위한 한의 분출에 천착했다면 ‘로건’의 울버린은 쇠락한 영웅이자, 늙고 병들고 가난해 죽어가는 한 늙은이의 비망록을 쓰는 데 집중한다.
‘로건’의 전반에 등장하는 뮤턴트는 로건, 찰스 자비에(프로페서X), 그리고 알비노 칼리반 단 셋이다. 공식적으로 뮤턴트는 이들 외엔 멸종됐고, 로건도 그렇게 믿고 있지만 찰스는 이를 부정한다. 찰스는 심각한 병에 걸려 살날이 얼마 안 남았고, 그건 힐링 펙터가 날이 갈수록 약해지는 로건 역시 마찬가지다.
화무십일홍이다. 백악관도 쥐락펴락할 정도로 화려하고 당당하던 엑스맨 조직은 사라졌다. 타인의 뇌를 조종하고 파괴할 수 있는 엄청난 능력을 지닌 찰스가 한낮 치매에 걸린 노인으로 전락하고, 엑스맨의 최강전사였던 로건은 건달 너덧 명 처치하는 것조차 버거운 병약자가 돼 생계를 위해 콜리무진을 운전한다.
인류 역시 내일을 기약할 수 없는 절망 속에서 광기에 휩싸여 지성보단 본능에 충실한 하루하루를 살아갈 따름이다. 혼돈의 디스토피아다. 그 속에서 로건은 이제 비로소 인간의 본성을 찾는다. 뮤턴트는 유전자의 돌연변이에 의해 새로운 종이 됐지만 뿌리는 인간이다. 초능력을 잃게 되니 인간의 본질에 다가가게 된 것이다.
잭 스나이더 감독의 수작으로 평가받는 ‘왓치맨’이 보인다. 정치와 치안이 혼란스럽던 시절 정의감에 불타는 사람들로 왓치맨이란 자경단이 결성돼 활약하지만 정부는 그들의 활동을 불법으로 규정한다. 왓치맨 중 유일한 초능력자 닥터맨해튼은 우연한 사고로 오히려 신의 경지에 오른 인물.
그러나 이들 모두는 정체성의 혼란을 겪는다. 특히 진짜 슈퍼히어로여서 이미 행성 하나를 창조할 만큼의 힘을 지닌 닥터맨해튼은 자신이 더 이상 인간이 아니고 인간과 어울려 살아갈 수 없음을 뒤늦게 깨닫고는 머나먼 우주로 사라진다. 남은 인간 왓치맨 멤버들 역시 자신이 보통사람인지, 나약한 법의 솜방망이대신 효율적인 처벌을 집행하는 히어로인지 혼란을 겪긴 마찬가지.
서서히 인간이 돼가는 ‘로건’의 로건은 사랑의 행위조차 인간미가 사라진 ‘왓치맨’의 닥터맨해튼의 역순이다. 비로소 부자의 정을 나누는 찰스와 로건, 자신의 유전자를 물려받은 로라를 위해 희생하는 로건은 ‘왓치맨’의 대를 이어 1, 2대 실크스펙터 임무를 해내는 모녀와 더불어 이들을 포용하는 2대 나이트아울이다.
만약 로건이 마이크로버스 바이러스에 감염돼 힐링펙터를 잃어버리지 않았더라면 리처드 쉔크만 감독의 SF걸작 ‘맨 프롬 어스’(2007)의 1만4000년을 산 사나이 존 올드맨이 될 뻔했다. 올드맨이 그랬듯 로건은 한곳에 정착하지 못하고 일생을 떠돌며 살았다. 긴 세월동안 세계 각국에 안 가본 곳이 없는 올드맨의 기착지는 미국의 한 시골이다. 여기서 그는 마지막 아내가 될 뻔했던 여인의 구애를 거부하고 처음으로 자신의 혈육(아들)을 만난다. 용병으로서 아프리카 일본 캐나다 등 각국을 떠돈 로건의 마지막 정착지는 멕시코고 여기서 그는 딸과 자신의 복제품 헬버린을 만난다.
‘엑스맨’ 시리즈가 천사를 연상케 하는 날개 달린 뮤턴트, 고대 이집트의 신으로 추앙받던 전지전능한 아포칼립스, 뮤턴트의 양대 지도자 찰스와 매그니토, 그리고 불로불사의 로건까지 창조한 게 어쩌면 그리스-로마신화와 기독교에 대한 작은 저항이라면 ‘맨 프롬 어스’는 대놓고 신성모독을 자행한다. 올드맨은 자신이 한때 예수로 불렸고 부처도 만나봤다고 주장한다.
‘왓치맨’에서 늙고 기력이 쇠잔한 왓치맨들은 은퇴하며 자신의 슈퍼히어로 이름과 임무를 후배에게 물려준다. ‘맨 프롬 어스’에서 올드맨은 오랜 세월 세계 곳곳에 자신의 DNA를 전파함으로써 그동안 쌓은 엄청난 정보와 지식을 전파한다. ‘로건’에서 자연발생적 뮤턴트가 사라지고 인류마저도 멸종을 향해 달려가는 암울한 지구에서 인간의 어긋난 욕망에 의해 인위적으로 탄생한 유전자 조작 뮤턴트들은 새로운 세대(종)교체란 희망을 향해 동심의 여행(신세계 창조를 위한 모험)을 떠난다./osenstar@ose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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