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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윤표의 휘뚜루 마뚜루] ‘예고 은퇴’ 이승엽, 영구결번은 당연…은퇴식, 투어 구상 중

소설가 이외수는 “내게는, 타고난 재능으로 고수에 이른 사람보다는 피나는 노력으로 고수에 이른 사람이 훨씬 더 위대해 보이고, 피나는 노력으로 고수에 이른 사람보다는 그 일에 미쳐 있는 사람이 훨씬 더 위대해 보인다. 그러나 그보다 훨씬 더 위대해 보이는 사람은 그 일을 시종일관 즐기고 있는 사람이다”라고 어느 책머리에 써놓았다.

2017년, 한국프로야구계의 두 ‘고수(高手)’가 시즌을 마치고 무대의 뒤안길로 사라진다. 이승엽(41. 삼성 라이온즈)과 이호준(41. NC 다이노스)은 앞서거니 뒤서거니 올 시즌이 마지막 무대가 될 것임을 진작 예고했다.

떠나는 자의 아쉬움과 남은 자의 애틋한 마음은 동서고금이 다를 수 없다. 하물며 아낌없이 굄을 받았던 그들임에랴. 치열한 야구선수의 삶이었지만 자신의 앞날에 대한 ‘예고’를 통해 미래에 대비하는 태도는 칭송받아 마땅하다. ‘떠나갈 때가 언제인가를 아는 일’은 어렵다. 미련을 버리는 선택이다. 그야말로 청춘을 불살랐던, 목숨과도 같았던 그 삶의 터전을 벗어나는 일은 무어라 형언하기 쉽지 않을 것이다.

“야구를 그만두지 않으면 안 되는 날이 왔습니다. 오늘이라는 날은 나의 일생에 있어 가장 슬픈 날입니다. 그러나 지금까지 이렇게 긴 세월 동안 야구를 해올 수 있어서 대단히 행복했습니다. 위대한 팬 여러분께 인사를 올립니다. 여러분은 나의 생애에서 정말 훌륭한 팬이었습니다.”


베이브 루스의 714홈런 기록을 깨트렸던 ‘조용한 흑인’은 이 말을 남기고 덕 아웃으로 사라졌다.

1976년 9월 18일 밤, 밀워키 브루어스의 본거지인 밀워키 카운티 구장에는 4만863명의 관중이 꽉 들어찼다. 메이저리그 최다인 개인통산 755홈런 기록 보유자 행크 아론의 은퇴식을 보기 위해 그날 보위 쿤 커미셔너를 비롯해 워렌 스펀, 미키 맨틀, 윌리 메이스 등 왕년의 명선수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아론의 은퇴식 장면을 지켜본 미키 맨틀은 “아론은 슈퍼스타로서 너무 낮게 평가됐다. 만약 그가 뉴욕 팀에서 플레이를 했다면 윌리 메이스나 나와 동급으로 평가받을 수 있었을 것이다.”

인종의 벽을 넘어서 한 시대를 풍미했던 아론은 그렇게 역사의 갈피로 걸어들어갔다.

일본프로야구 최초로 개인통산 3000안타 고지에 올랐던 재일교포 장훈(3085안타)은 1981년 23년간의 프로 선수생활을 정리하게 됐을 때 “생명이 끊어지는 것 같은 아픔을 느꼈다.”고 했지만 동시에 “끝없는 전쟁터에서 가까스로 해방이 됐다.”고 홀가분한 심경도 내비쳤다.

이제 올 한해가 지나면 한국 프로야구사에 위대한 업적을 아로새겼던 이승엽과 이호준은 볼 수 없겠지만 그들이 남긴 업적은 영원할 것이고 그 이름은 팬의 뇌리에 깊게 새겨질 것이다.


사실 어찌 보면 ‘예고은퇴’의 원조격은 김재현(스포티브이 해설위원)이었다. 그는 2009년 한국시리즈 미디어 데이 때 “한 시즌만 더 뛰고 은퇴하겠다.”고 선언, 신선한 충격을 안겨줬다. 김재현은 당시 “예전부터 생각해왔다. 힘 있을 때 좋은 모습으로 은퇴하려고 했다.”고 ‘예고 은퇴’의 변을 밝혔다. 선수생활 막바지에 은퇴의 때를 놓치고 볼썽사나운 실랑이를 벌이는 선수는 얼마나 많은가.

삼성 구단은 현재 이승엽의 은퇴와 관련한 구체적인 그림을 그리고 있지는 않다. 하지만 상식선에서 ‘이승엽 등번호의 영구결번’은 당연하게 여기고 있고, 대구 라이온즈파크 홈구장 은퇴식도 구상하고 있다.

다만 마지막 원정경기의 ‘은퇴투어’는 상대 구단의 양해를 구해야하는 만큼 삼성 구단이 먼저 나서서 뭐라 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긴 하다. ‘은퇴투어’는 이승엽이 대구 삼성 구단에 국한된 선수가 아닌 한국 프로야구를 대표하는 타자였던 만큼 상대 구단도 받아들일 필요가 있다.

김남형 삼성 구단 홍보팀장은 “은퇴식은 논의 중이고 영구결번은 아직 섣불리 말씀드리기 어렵지만 상식적으로 당연한 수순을 밟게 될 것으로 본다.”면서 “은퇴투어는 시기적으로 당장 결정할 문제는 아니고 시즌 마지막 경기에 마련해야할 일이다. 이승엽이 원하는 은퇴투어는 마지막 원정 경기가 끝나고 이를테면 ‘양쪽 (응원 관중들)에 모자를 벗고 인사만 할 수 있게 해줘도’ 감지덕지라고 한다.”고 전했다.

정규시즌 일정이 9월 이후에는 잔여경기를 소화하게 돼 다시 잡게 되므로 어떻게 될지 아직은 알 수 없긴 하다.

고정희(작고) 시인은 ‘모든 사라지는 것들은 뒤에 여백을 남긴다’는 시에서

‘오 모든 사라지는 것들 뒤에 남아 있는

둥근 여백이여 뒤안길이여

모든 부재 뒤에 떠오르는 존재여

여백이란 쓸쓸함이구나(……)’라고 노래했다.

이승엽의 부재를 떠올리는 일은 쓸쓸하다.


/홍윤표 OSEN 선임기자

[사진=오키나와, 민경훈 기자] 지난 2월 25일 일본 오키나와 온나손 아카마 구장에서 열린 삼성 라이온즈와 한화 이글스의 연습경기에서 삼성 팬들이 이승엽을 응원하고 있는 모습. / rumi@ose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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