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쎈인터뷰] '명불허전' 박종아, 평창 그리고 아이스하키[동영상]
OSEN 우충원 기자
발행 2017.03.11 05: 29

지난 2월 18일 한국 여자 아이스하키는 새로운 역사를 썼다. 일본 삿포로 스키사무 체육관에서 열린 동계 아시안게임 풀리프 1차전서 태국을 20-0(7-0, 7-0, 6-0)으로 대파했다. 이날 승리는 한국 여자 아이스하키가 동계아시안게임에서 거둔 사상 첫 승이다. 1999년 강원에서 열린 첫 대회에서 3전 전패를 시작으로 2003년 일본 아오모리 대회에서 4전 전패, 2007년 창춘 대회에서 4전 전패, 2011년 아스타나-알마티 대회에서도 4전 전패했지만 15전 16기 만에 첫 승을 수확했다.
또 23일 열린 중국과 4차전서는 승부샷(승부치기)까지 가는 치열한 접전 끝에 3-2로 승리했다. 박종아는 0-1로 뒤진 1피리어드 19분 27초에 동점골을 터트린 데 이어 승부샷에서도 마지막 골을 넣어 한국에 역사적인 중국전 첫 승을 안겼다.
한국 여자 아이스하키의 대들보 중 한 명인 박종아는 처음부터 끝까지 모두 아이스하키 이야기만 했다. 인터뷰 뿐만 아니라 식사를 하는 순간에도 아이스하키에 대한 이야기만 했다. 그의 목표는 최고의 아이스하키 선수가 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박종아의 고향은 강원도. 설상 종목이 아닌 빙상 종목은 강원도에서 접하기 힘들다. 그러나 쇼트트랙을 취미로 했던 어머니의 권유로 아이스하키를 시작하게 됐다. 내성적이고 이기적이던 박종아를 위해 어머니가 추천했다. 단체 운동을 통해 성격이 변하기를 기대했다.
홀로 아이스하키를 즐기던 박종아는 경포여중 2년 서울로 홀로 유학을 떠났다. 대표팀에 발탁된 박종아는 훈련에 집중하기 위해 중학교 2학년이지만 집을 떠났다. 공무원 생활을 하는 부모님과 언니-동생을 지키기 위한 어머니는 서울로 올 수 없었다. 박종아는 눈물 나는 시간도 많았다. 대표팀에서 심하게 혼난 뒤 푸념을 털어 놓으려고 집에 전화했는데 피자를 먹으며 즐거운 모습을 보이는 가족들 때문에 눈물이 더 나기도 했다.
홀로 생활하던 박종아는 실력을 키웠다. 이를 악물고 아이스하키에만 집중했다. 그 결과 혜성여고 2학년 시절 아이스하키협회의 후원을 받아 캐나다로 향했다. 학교를 그만뒀다. 아이스하키를 위해서 본인이 직접 내린 결정이었다.
"가족들의 믿음은 대단했어요. 아이스하키로 성공하겠다는 것이 아니라 아이스하키 밖에 없던 저를 위해 부모님께서는 허락을 해주셨어요. 그렇게 캐나다에 가게 됐고 새로운 세계가 열렸습니다. 정말 운동만 생각하고 아이스하키를 즐기며 살았습니다".
대한아이스하키협회의 유망주 지원 프로젝트에 발탁된 박종아는 2013년 10월 캐나다 인터내셔널 하키 아카데미(CIHA)에 입학했다. 이어 2014년에는 캐나다 오타와에 위치한 온타리오 하키 아카데미(OHA)에서 선진 시스템 속에서 아이스하키를 즐겼다. 아이스하키만 생각하는 시간이었다. 링크-웨이트 트레이닝-숙소를 다니면서 집중했다. 그 결과 박종아는 2015년 2월 캐나다 대학 스포츠 1부 리그(CIS) 사스캐처원대학교에 스카우트됐다.
물론 미국 명문대에서도 입학 제의를 받았다. 아이비리그인 브라운대와 캐나다 명문인 UBC에서도 손짓했다. 그러나 경제적인 사정과 아이스하키에 집중하겠다는 생각에 사스캐처원을 선택했다.
캐나다에서 배운 것이 정말 많았다. 국내에서는 우쭐할 실력도 됐지만 우물안 개구리였다. "캐나다에 가보니까 수준이 완전히 달랐어요. 한국에서 어느 정도 한다고 생각했지만 캐나다에 나 같은 선수는 정말 세상에 널리고 널렸더라구요. 그래서 운동만 생각했어요. 아이스하키-웨이트 트레이닝만 했습니다. 또 특별히 어딜 가보자는 생각도 못했어요. 아이스하키 연습만 해도 부족했거든요. 남들보다 30분 더 연습하고 숙소로 돌아가면 피곤해서 잠만 잤어요".
기적적인 일이었다. 국내에서 아이스하키를 배운 어린 학생이 캐나다 명문팀에 합류했다. 서스캐처원대학교는 디비전 우승을 차지하는 등 명문팀이다. 그런데 더 재미있는 일은 대학교 합류를 연기하고 한국으로 돌아왔다.
 
"평창 올림픽 도전을 위해서는 돌아올 수밖에 없었어요. 아이스하키를 즐기기 위해서는 캐나다에서 머물러도 됐지만 올림픽은 다릅니다. 그래서 돌아왔습니다. 정몽원 회장님을 비롯해 많은 분들께서 지원을 해주셨기 때문에 고마움을 갚아 드리기 위해서는 대표팀에서 최선을 다한다는 생각만 가지고 있습니다. 열심히 하는 것 그리고 평창 올림픽서 여자 아이스하키의 자존심을 세우는 것만 생각하고 있습니다".
평창 올림픽을 준비하며 한국은 삿포로 아시안게임서 대단한 승부를 펼쳤다. 특히 첫 승을 챙긴 중국전은 역사에 남을 만한 승부였다. 3피리어드 60분간 2-2로 승부를 가리지 못한 두 팀은 연장 피리어드에서도 상대 골문을 열지 못했다. 대회 규정에 따라 축구 승부차기와 비슷한 슛아웃에 들어가서도 9번 슈터까지 승부를 가리지 못하는 살얼음판 승부 끝에 대표팀의 10번 슈터 박종아가 페널티샷을 성공시키고, 골리 신소정이 중국 10번 슈터를 막아내며 70여분간 펼쳐진 혈전서 한국이 승리했다.
중국전을 마친 뒤 아니 중국전 골을 넣은 뒤 박종아는 소리를 질렀다. 일부러 지른 것은 아니었다. 그냥 입에서 나왔다. 정말 기뻤다. "다른 생각은 못했습니다. 그냥 중국을 상대로 승리했다는 생각만 들었어요. 좋다라는 생각만 했어요. 그런 생각밖에 들지 않았습니다".
박종아의 꿈은 단순히 평창에서 그치지 않는다. 일단 대학으로 돌아가서 아이스하키에 집중하는 것이다. 사스캐처원을 선택한 이유는 간단하다. 아이스하키에만 집중할 수 있는 곳이었다.
"스마트한 선수가 되고 싶어요. 언제까지 선수생활을 하게 될지 모르겠지만 나 혼자가 아니라 팀 플레이를 할 수 있는 선수가 되고 싶습니다. 평창을 잘 마치고 대학교로 돌아갈 생각입니다. 또 아이스하키를 즐길 수 있기 때문에 앞으로 더 즐거운 일만 남았습니다". / 10bird@osen.co.kr
[영상제작] 비에스 미디어 (BS MED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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