팬들이 먼저 느낀 진짜 '장충의 봄 배구'
OSEN 최익래 기자
발행 2017.03.13 06: 05

‘장충 남매’의 동반 플레이오프(PO) 진출은 또 한 번 다음을 기약하게 됐다. 하지만 올 시즌 우리카드와 GS칼텍스의 ‘약간 다른’ 멋진 모습은 장충체육관을 찾은 팬들에게 ‘장충의 봄’을 선물했다.
우리카드와 GS칼텍스는 12일 홈구장인 서울 장충체육관서 나란히 ‘2016-2017 NH농협 V-리그’ 최종전을 치렀다. 두 팀 모두 ‘봄 배구’와는 거리가 멀었다. 이날 경기 결과와 상관없이 PO 탈락이 확정된 상황. 다소 김이 샐 만도 했다. 경기 전 “최종전에 다양한 행사를 준비했는데 공허할까 걱정이다”라는 우려가 허투루 들리지 않은 이유다.
그러나 이날 장충체육관을 찾은 팬은 3512명으로 오히려 평소보다 더 뜨거웠다. 올 시즌 우리카드의 평균 관중은 2788명이다. 지난해 2411명에 비해 약 16%가 증가했다. 이번 시즌 우리카드의 홈경기 16번 중 3천 명 이상의 관중이 찾은 건 여섯 차례. 특히 시즌 마지막 두 경기서 평균 3800명이 들어찼다는 점은 고무적이다.

봄 배구 무산에도 팬들이 경기장을 찾은 이유는 하나. 선수단에게 격려를 전하기 위해서다. 서포터즈석에서 유니폼과 머플러를 갖춰 입고 열광적으로 우리카드를 응원하던 이상현(41) 씨는 “평소 좋아하던 최홍석에게 격려를 보내고자 최종전을 찾았다”라고 밝혔다. 그는 “비록 봄 배구는 아깝게 실패했지만 우리카드 덕에 겨울을 즐겁게, 따뜻하게 보냈다”라며 “선수들 모두 올 시즌 고생 많았고, 다음 시즌도 건강하게 잘해줬으면 좋겠다”라고 당부했다.
격려를 전한 건 장혁, 김연옥(이상 56) 부부 역시 마찬가지였다. 얼마 전 공직에서 정년퇴임한 장혁 씨는 “일을 하는 동안에는 가족들이랑 여가를 즐긴 적이 없다. 은퇴 후 즐길 거리를 찾던 중 우리카드 배구를 보게 됐다”라며 계기를 밝혔다. 이어 장 씨는 “우리카드는 여러 모로 짜임새 있는 구단이다. 다음 시즌이 기대된다”며 설렘을 감추지 않았다.
장혁 씨는 “우리카드는 지역 주민의 날이나, 다양한 할인 혜택으로 팬들을 끌어당긴다”라고 매력을 전했다. 김연옥 여사는 “아들이 시즌 티켓을 구매하라고 성화다. 오늘만 같다면 바로 결제할 생각이다”라고 거들었다.
GS칼텍스는 이날 경기가 끝난 후 선수단 전원의 팬사인회를 열었다. 보통 시즌 종료 후 팬사인회는 우승팀의 전유물이었다. 전체 6개 팀 중 5위에 그친 팀의 팬사인회는 다소 이례적인 이유다.
그러나 선수단 전원은 차상현 감독을 필두로 팬들에게 적극적으로 다가갔다. 특히 차 감독은 어쩔 줄 몰라 하는 꼬마아이의 손을 잡고 강소휘의 앞으로 직접 데려다주거나 함께 배구공으로 장난을 치는 등 격식을 내려놨다. 평소 선수단에게 “팬들께 즐기는 모습을 보여드려야 한다”고 강조했던 모습에 부합한 셈.
팬사인회에 참가한 ‘2년차 GS칼텍스팬’ 박지온(22) 씨는 “선수단 일부가 참여하는 팬사인회는 흔하다. 하지만 감독부터 선수단 전원이 참여하는 행사는 낯설다”라며 “비록 GS칼텍스가 성적은 5위지만 팬서비스는 1위다. 내 마음속 최고의 구단은 GS칼텍스다”라고 극찬했다.
나현정의 광팬임을 자처한 심영범(32) 씨는 “지난 시즌 GS칼텍스 홈경기만 열두 번을 왔다. 하지만 올 시즌에는 개인 업무가 바빠 다섯 번밖에 못 왔다”라며 아쉬워했다. 심 씨는 “GS칼텍스 선수단은 지난 시즌이 끝나고 응원단상 앞에 모여 팬들에게 인사를 했다. 그런데 올 시즌은 팬들이 직접 코트로 내려왔다. 한층 진보된 것 같다”며 너스레를 떨었다.
이어 그는 “축구와 야구 모두 팬인데 이렇게 선수단 전원을 경기장에서 직접 만나는 사인회는 처음이다”라며 “프로팀은 성적도 중요하다. 이런 창의적인 이벤트도 팬들이 경기장을 찾는 이유로 충분하다”라고 설명했다.
프로스포츠단의 지상과제는 우승, 그 다음은 우승에 근접한 좋은 성적이었다. 그러나 수년전부터 ‘스포테인먼트’ 산업이 꿈틀대기 시작했다. 물론 아직 완전히 자리매김하지는 않았다. 여전히 “성적이 최고의 팬서비스다”라고 주장하는 이들도 많다.
하지만 우리카드와 GS칼텍스처럼 팬들에게 다가가려 노력하는 구단들이 서서히 늘고 있다. 이제 구단 공식 SNS는 선택이 아닌 의무가 된 수준이다. 팬들은 구단에 대한 정보 수집은 물론 선수들과의 소통까지도 SNS를 활용한다. 장충 남매는 이 부문에 특히 강점을 띄고 있다.
성적을 잣대로 판단하면 올 시즌 우리카드와 GS칼텍스 모두 아쉬움이 앞선다. 그러나 시각을 조금만 달리하면 오히려 이들이 다른 구단들에게 많은 걸 시사한 시즌이었다. 장충 남매는 그렇게 또 다른 봄을 팬들에게 안겨줬다. /ing@ose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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