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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h! 시네마]‘밤의 해변에서 혼자’, 예술인가, 방어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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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진모 취중한담]홍상수 감독과 그의 영화가 국내에서 이렇게 지대한 관심을 끈 적이 있을까? ‘밤의 해변에서 혼자’다. ‘아직’ 유부남인 홍 감독이 주인공 김민희와 사랑하는 사이고, 김민희가 베를린국제영화제에서 은곰상(여우주연상)을 수상해 세계의 주목을 받았기 때문이다.

영화의 내용은 홍 감독과 김민희의 ‘현실’이 많이 투영된다는 게 중론이다. 1부. 영희(김민희)는 촉망받는 여배우였으나 영화를 찍으며 사랑에 빠진 늙은 유부남 감독 상원(문성근)과의 불륜관계에서 비롯된 스트레스를 이기지 못해 훌쩍 한국을 떠나 독일 함부르크에 머문다.

10년 넘는 결혼생활을 청산하고 이곳에 정착한 선배 지영(서영화)은 영희의 유일한 친구. 두 사람은 재래시장과 공원 그리고 현지 지인의 집 등을 돌아다니면서 서로의 사랑과 인생 등에 관한 얘기를 나누는 가운데 평화로운 일상을 보내는 듯하지만 실상 마음의 상처와 관능의 공허를 이겨내지 못해 남몰래 앓고 있다.

2부. 귀국한 영희는 강릉의 한 예술영화관에서 혼자 영화를 관람하고 나와 어슬렁거리다 그곳에서 프로그래머로 일하는 선배 천우(권해효)를 우연히 만난 인연으로 또 다른 선배인 준희(송선미)와 명수(정재영), 그리고 명수와 카페를 운영하는 그의 연인 도희(박예주) 등과 술자리에서 어울린다.

당연히 영희와 상원의 관계가 화제의 도마 위에 오르고, 술에 취한 것인지 아니면 평소 참았던 설움과 울분이 폭발한 것인지 영희는 일행을 향해 “당신들은 사랑할 자격이 없다”고 날카롭게 소리친다.

다음날 바닷가 모래밭에 누워 깜빡 잠이 든 영희를 상원의 조감독인 승희(안재홍)가 깨운다. 승희는 상원이 스태프를 이끌고 근처로 촬영하러 왔다고 전한다. 그날 저녁 영희는 상원 일행의 식사 자리에 합류하고 술에 취해 상원과 격렬한 설전을 벌인다. 이 팽팽하던 기류 속에서 결국 상원은 눈물을 쏟고야 만다.

이미 베를린은 이 영화를 “홍상수의 가장 훌륭한 작품 중 하나”라고 찬사를 보낸 바 있다. 하지만 각 영화제마다 성격이 있고, 그게 꼭 대중의 기호나 생각과 같은 노선을 걷는 것은 아니다. 칸은 대중적으로 많이 선회했지만 아직도 베를린이나 베니스가 극찬하고 상을 주는 작품 중 예술영화전용관 외의 극장에서 반기는 건 그리 많지 않다. 국내 극장가는 더 심하다.

홍 감독과 김민희의 관계를 의식하지 않고 순수하게 영화적으로 봤을 때에도 수작이라고 할 수 있을지에 대한 답은 지난 홍 감독의 영화를 바라보는 다수의 시각에 있다. 다만 항상 자신의 즉흥적인 시나리오로 연출하는 스타일로 유명한 홍 감독이 단골로 다루는 주제는 사랑이고, 주인공들이 영화나 문화예술계 사람들이란 면에선 선입견은 금물이다.

대단한 철학을 담으려하거나 심오한 메시지를 전달하려는 강권이 크게 엿보이지 않는다는 점에서 역시 ‘홍상수답다’는 생활밀착형 공감대가 형성된다. 고차원적 카메라기법이나 특수효과 등 인위적인 테크닉을 배제한 채 단지 줌인이나 프레임을 바꾸는 테이크 혹은 러닝쇼트만으로 살짝 변화를 주는 연출스타일 역시 의도적으로 아마추어냄새를 풍기는 다큐멘터리적 기법이어서 친근하다.

홍상수 특유의 맥거핀 혹은 미장센도 흥미롭다. 지인들과 바닷가로 놀러간 영희가 돌연 프레임 안에서 사라진 뒤 카메라가 다시 180도 돌아 잡아낸 프레임 안에서 웬 남자(공원에서 말을 걸고 다가왔던 한국인)의 어깨에 걸쳐진 채 마치 유괴당하는 듯한 상황에 놓인 1부 마지막 장면이 그렇다.

2부에선 강릉에서 영희가 임시거처로 잡은 콘도미니엄 안에 천우 준희와 함께 들어오면 바다가 보이는 베란다 바깥쪽에 웬 정체불명의 남자가 서있다. 그는 처음엔 열심히 유리창을 닦더니 나중엔 물끄러미 바다만 바라본다. 주인공들의 눈엔 그가 안 보인다. 홍상수의 영화가 국내 감독 중 가장 프랑스답다는 평가를 받는 증거다.

그래서 이 영화는 ‘여전히 지나치게 프랑스다워서’ 재미를 논하긴 쉽지 않다. 다수의 관객들은 각자의 기준대로 영화를 고르기 마련인데 당연히 재미가 앞장선다. 물론 지적인 허영심의 충족을 위한 일부 관객의 목적이 엄연히 존재하지만 극장가의 판도를 바꿀 수준은 아닌 증거가 홍상수나 김기덕 감독의 영화의 양면(일부 전문가의 호평과 다수 관객의 혹평)이다. 게다가 그런 마니아들은 대부분 목적에 맞는 작품을 소장하길 원하지 일회성으로 즐기는 것은 꺼리기 마련이다.

홍 감독의 영화 중 가장 흥행에 성공한 ‘여자는 남자의 미래다’(2004)의 성적표는 28만여 명. 그 외 10만 명 이상은 한 손에 꼽을 정도. 이번 영화의 흥행은 그와 김민희와의 화제성 측면에선 플러스가 엿보이는 한편 그들에 대한 부정적인 시각에 비췄을 땐 마이너스가 예상된다.

후자의 이유는 영화의 완성도를 떠나 주인공들의 상황과 대사가 홍 감독의 변명과 김민희의 옹호 및 응원으로 비칠 가능성이 농후하기 때문이다. 영희는 지영에게 “잘생긴 남자들을 많이 만나봤지만 다 얼굴값 해. 이젠 외모 안 봐. 죽기 전에 하고 싶은 거 다 해봐”라고 종용한다. 더불어 “흔들리지 않고 나답게 살고 싶어. 솔직해야 돼. 그 사람 자식도 있거든. 자식이 진짜 무서운 것 같아”라는 의미심장한 말을 토로한다.

술에 취한 영희는 상원에게 “왜 그런 영화를 만드세요? 한이라도 맺히셨나요?”라고 쏘아붙이고 상원은 “나는 영화를 만들지만 정상이 아닌 것 같다. 자꾸 괴물이 돼가는 것 같아. 계속 후회하다 죽어버리고 싶어. 숨이 막혀”라고 자아비판을 하며 동정심을 유발한다.

등장인물들은 하나같이 영희를 위로하고 응원하며 그녀를 향한 세상 사람들의 천박한(?) 잣대를 비난한다. 천우는 “그런 일(대중의 비난)로 일(배우)을 그만두지 마. 자기들은 그렇게 잔인한 짓들을 해대면서 왜 (영희를) 가만히 놔두지 않고 난리를 치는 거야? 사람들이 할 일이 없으니까 남의 일에 뭐라고 하는 거야”라고 영희를 달랜다. 준희는 “영원한 친구가 돼 평생 함께 갈 것”이라며 영희의 매니저를 자청하고 나선다. 심지어 그녀들은 술자리에서 진한 키스까지 나눈다.

스크립터 연출부 제작부 등은 “팬이다” “정말 훌륭한 배우”라고 앞 다퉈 영희의 인기와 실력을 칭찬하며 빨리 스크린에 복귀하라고 용기를 북돋운다. 상원 역시 영희의 미모를 극찬하며 “아까운 배우니 하루 빨리 돌아오라”고 격려하고 영희는 이에 당당히 “시나리오를 받았다”며 일에 대한 의지를 불태운다.

결국 이 영화의 주제는 상원의 컴백종용과 더불어 영희의 “내가 원하는 것은 그냥 나답게 사는 것이니 나 하고 싶은 대로 하고 살 것”이라는 자아선언과 독자노선의 의지에 담겨있다. 이혼녀인 지영의 “남편이 잘 지냈으면, 행복했으면 좋겠다”는 한마디는 의도를 의심케 할 요인이 존재한다.

작곡과 그림은 작가 혼자 작업하기 마련이지만 영화는 다르다. 피터 잭슨이 호주머니를 털어 만든 데뷔작 ‘고무인간의 최후’도 혼자는 아니었다. 그림은 콘테스트에 출품되고 전람회에 전시되기도 하지만 대부분 입장료가 없고 대신 판매에서 돈이 거래된다. 빈센트 반 고흐는 자살로 생을 마감하기 직전 딱 한 점의 작품만 팔았을 뿐(약 10만 원) 평생 동생 테오에게 경제적으로 기대어 살았다.

영화는 드라마가 아닌지라 관람료는 물론 ‘극장구경’에 필요한 지출이 추가된다. 술과 담배는 철저한 기호소비품목이기에 가격이 결정을 강요하지 않듯 영화 역시 ‘품격’보단 ‘재미’가 우선이다. 영상물등급위원회의 청소년관람불가 판정은 약간 애매모호하다. 101분. 3월 23일 개봉./osenstar@osen.co.kr

[칼럼니스트]

<사진> 영화 포스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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