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쎈 테마] ‘전·현직 검투사’가 말하는 검투사 헬멧
OSEN 최익래 기자
발행 2017.03.28 06: 05

야구장에 검투사가 나타났다. 올해는 그 수가 조금 더 많다.
타자들이 착용하는 기본 헬멧에 안면 부위를 가리개를 덧댄 것. 이것이 검투사 헬멧이다. KBO리그에서 처음 도입된 시기는 2001년. 투구에 안면 부위를 강타당한 심정수(당시 현대·은퇴)가 처음 쓰고 나왔다.
그로부터 16년이 지났고 그사이 많은 타자들이 검투사 헬멧을 썼다 벗었다. 올 시즌 검투사 헬멧을 쓰고 나올 선수들은 박용택, 최재원(이상 LG), 나지완(KIA), 최준석(롯데), 김동욱(kt) 등 다섯 명. KBO 등록선수 614명의 1%도 되지 않는 소수다. 이들이 검투사 헬멧을 쓰는 결정적 원인은 각기 다르다. 실제 안면 부위에 공을 맞는 끔찍한 부상을 겪은 이도 있지만, 부상 방지를 위해 미리 준비한 선수들도 있다. 이들은 입을 모아 “검투사 헬멧을 쓰면서 불편한 건 전혀 없다”라고 밝힌다.

그러나 ‘전직 검투사’들의 생각은 다르다. 검투사 헬멧조차 언젠가 극복해야 할 대상으로 보는 이부터, 자연스럽게 벗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선수까지. 검투사 헬멧을 벗은 이유 역시 다양했다. KBO리그의 검투사 헬멧 역사를 따라가봤다.
▲ ‘원조’ 심정수와 후발주자들
앞서 언급한 것처럼 KBO리그에서 검투사 헬멧을 가장 먼저 쓰고 나온 이는 심정수다. 심정수는 2001년 롯데 강민영의 투구에 얼굴을 맞았다. 광대뼈 함몰에 복합골절 진단. 그는 특단의 조치로 검투사 헬멧을 들고 나왔다. 당시 현대 프런트에서 근무했던 넥센 관계자는 “심정수는 검투사 헬멧을 전혀 불편해하지 않았다. 물리적 보호에 심리적 안정감이 더해져 오히려 성적이 좋아졌다”라고 추억했다.
그러나 심정수는 이내 검투사 헬멧을 벗었다. 몸쪽 공을 극복하기 위해 택한 방식이지만, 자칫 이에 얽매일까를 두려워했기 때문이다. 몸쪽 공에 대한 두려움을 이겨낸 만큼 검투사 헬멧도 이겨내겠다는 각오. 결국 그는 검투사 헬멧을 벗고도 제 모습을 발휘했다.
현대가 도입한 검투사 헬멧은 구단들의 거울이 됐다. 이종범(당시 KIA)은 2002년 7월, 롯데 김장현의 공에 왼쪽 광대뼈를 직격 당했다. 이종범은 2주 후 검투사 헬멧과 함께 복귀했다. 당시 KIA 구단 차원에서 현대 측에 검투사 헬멧 제작 방식 자문을 구했고 현대도 적극적으로 협조했다. 일종의 선구자가 된 셈이다.
2008년 한화에서 뛰던 김태완(넥센)도 검투사 헬멧 초기 착용자다. 그는 2008년 KIA와 경기서 이범석의 강속구에 턱을 강타 당했다. 김태완은 “얼굴을 맞은 다음날부터 경기에 나섰다. 물론 두려웠다. 그러나 경기에 나서지 않고 쉰다면 몸쪽 공에 대한 두려움이 더 커질 것 같았다. 부딪혀서 이겨내고 싶었다”라고 회상했다. 김태완이 말한 검투사 헬멧은 ‘후유증 극복을 위한 도구’였다. 그는 “시야에 걸린다거나 방해되는 건 전혀 없었다. 극복 후에는 자연스럽게 벗었다”라며 “올 시즌 검투사 헬멧을 쓰는 선수들이 많은데, 심리적인 안정을 얻을 수 있다면 추천한다. 투수의 몸쪽 공에 자신감을 가질 수 있다”라고 의견을 밝혔다.
▲ 검투사 헬멧, 헤드샷을 미연에 방지한다
올 시즌 두 ‘베테랑’들도 새로이 검투사 헬멧을 쓴다. 주인공은 박용택과 최준석. 두 선수 모두 광대뼈나 턱을 맞은 경험이 없다. 그럼에도 검투사 헬멧을 들고 나온 이유는 하나, 몸쪽 공에 대한 심리적 안정 때문이었다. 박용택은 “투수들의 몸쪽 승부가 늘었다. 순간적으로 제구가 흔들리면 바로 얼굴 쪽으로 공이 날아올 것이다”라며 “심리적 안정을 얻는 효과가 큰 것 같다”라고 밝혔다. 이어 그는 “헬멧을 쓰면 그때부터 시야에 보호대가 보이지 않는다”라며 “의식하지 않고 타격할 수 있다”라고 밝혔다. 박용택은 “물론 이 헬멧을 불편하게 느끼는 선수들도 있지만 나는 아니다. 정규시즌에도 계속 쓸 생각이다”라고 덧붙였다.
최준석도 마찬가지 이유였다. 그는 “만약 피하지 않았으면 그대로 얼굴에 맞았을 공이 지난해 유독 많았다. 강속구 투수가 많아진 데다 투수들이 몸쪽 승부를 피하지 않는다”라며 “실제 물리적인 안정에 심리적 효과를 더하기 위해 이 헬멧을 쓰기로 결심했다”라고 설명했다. 최준석은 되레 ‘검투사 헬멧 예찬론자’가 됐다. 그는 “오히려 타석에서 집중이 더 잘된다. 시야가 불편한 건 전혀 없다”라며 “적응을 위해 스프링캠프 때부터 썼다. 이제 적응 끝났다. 비싸게 제작했으니 돈값했으면 좋겠다”라고 너스레를 떨었다.
‘젊은 검투사’도 있다. 지난해 끔찍한 헤드샷으로 팬들의 마음을 아프게 했던 최재원은 올 시즌도 검투사 헬멧을 유지한다. 그는 “이 헬멧을 쓰면 투수들이 약하게 볼까 걱정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런데 신경 안 쓴다. 팔꿈치 보호대나 정강이 보호대 많이 하지 않나? 그런 것과 똑같이 생각한다”라고 말했다. 이어 그는 “내가 예민한 타입이 아니라 그런지 편한 것도, 불편한 것도 없다. 타석은 물론 루상에서도 마찬가지다. 그냥 신체를 보호하는 일부다”라고 설명했다.
전현직 검투사들의 의견을 종합하면, 검투사 헬멧은 타석에서 방해되지 않는다. 물리적으로, 그리고 심리적으로 안정감을 주기 때문에 오히려 도움이 된다. 그러나 자칫 검투사 헬멧에 의존할 수 있다.
김태완이 밝혔듯 검투사 헬멧을 쓰는 건 선수들의 자유다. 다만, 끔찍한 헤드샷 탓에 검투사 헬멧을 쓰는 이가 더는 없어야 한다는 건 팬들의 바람이다. /ing@ose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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