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전자’ 황재균, 20억과 바꾼 무거운 가방
OSEN 김태우 기자
발행 2017.03.31 05: 58

황재균(30·샌프란시스코)은 야구 인생에서 가장 생소하고도 바쁜 시기를 보내고 있다. 심지어 아침에 일어났을 때 오늘은 어떤 포지션에서 뛰게 될지, 언제 경기에 들어갈지도 모른다. 모든 것은 경기 직전에 가서야 알 수 있다.
고교 졸업 후 프로에 입단, 비교적 순탄하게 최정상급 자리까지 오른 황재균으로서는 정말 오래간만에 느끼는 분주함과 복잡함이다. 여기에 무대는 낯선 미국이다. 황재균의 KBO 리그 경력은 그렇게 큰 힘을 갖지 못한다. 그냥 나이가 많고 해외에서 뛰다 온 루키다. 말이 도전이지, 분명 쉽지 않은 길이다. 황재균의 지난겨울을 생각하면 그렇다.
프리에이전트(FA) 자격을 얻은 황재균은 야수 최대어 중 하나였다. 아직 젊은 나이에 장타력과 기동력을 모두 갖춘 3루수였다. 점점 발전하는 모습도 긍정적이었다. 그런 황재균에는 원 소속팀 롯데는 물론 내야 보강이 필요한 kt까지 관심을 보였다. 경쟁이 붙어 몸값도 올라갈 여건이었다. 한 관계자는 “지나간 일이지만 4년 총액 80억 원 이상은 기본으로 챙길 수 있었다”고 귀띔한다.

연간 20억 원은 누구에게나 큰돈이다. 황재균도 이를 부인하지 않는다. 그러나 황재균은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꿈이었던 메이저리그(MLB)에 도전하기로 했다. “지금이 아니면”이라는 생각에 발걸음을 뗐다. 그 20억 원과 맞바꾼 것은 마이너리그 보장 12만5000달러(1억4000만 원)짜리 계약이다. MLB에 올라가면 훨씬 더 많은 돈을 받을 수 있지만 미래는 예단할 수 없다.
20억 원을 포기한 것도 억울(?)할 법도 한데 들고 다니는 경기 가방까지 더 무거워졌다. 글러브 때문이다. 야수 포지션별로 특성이 있는 만큼 글러브 또한 조금씩 다르다. 황재균은 가방에 주 포지션인 3루수는 물론 1루수와 좌익수용 글러브를 모두 넣고 다닌다. 언제 어느 포지션에 들어갈지 모르기 때문에 다 챙겨 나와야 한다.
그러나 황재균은 항상 웃는다. 오히려 “야구가 정말 즐겁다”고 말한다. 경기 전 좌익수 연습을 할 때도 밝은 표정이다. 팀이 원하는 포지션에, 원하는 시점에서 군말 없이 나간다. 교체로 자주 나서는 탓에 타격감이나 경기 감각을 유지하기 쉽지 않은 상황에서도 불만이나 핑계는 없다. 오히려 새로운 경험을 즐기고 있다. 모든 것이 불투명한 현실을 이겨낼 수 있는 힘이다.
그런 황재균은 시범경기에서 자신의 가치를 확실하게 증명했다. 안타, 홈런, 타점, OPS 모두 팀 내 선두권이다. 그럼에도 개막을 MLB에서 할지는 장담할 수 없다. 오히려 마이너리그 계약을 맺은 탓에 시즌 시작은 트리플A에서 할 가능성이 높아졌다. 구단은 황재균이 좀 더 멀티플레이어로 준비되길 원한다. MLB에서는 기회가 제한적인 만큼 차라리 많은 경기에 나설 수 있는 트리플A에서 시즌을 시작하는 게 낫다는 판단이다.
황재균도 이러한 현실을 알고 있다. 그러나 뒤는 돌아보지 않는다. 황재균은 “이렇게 좋은 성적을 내고도 마이너리그에 가면 아쉽겠다”라는 질문에 “어쩔 수 없는 일 아니겠는가”고 애써 웃음을 보였다. 어느 정도는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는 듯한 인상이었다.
하지만 편안한 안방을 박차고 나와 새로운 것에 부딪힌 경험은 그의 야구인생에 소중한 자산이 될 것은 분명해 보인다. 당장 좌익수 포지션이 몸에 익는다면 황재균의 가치는 훨씬 더 높아질 수 있다. 올해 포기한 20억 원을 2~3년 뒤 이자까지 쳐 돌려받을 수 있을지 주목된다. /skullboy@ose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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