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구전설'들도 좌절했던 외인공백, KGC가 넘을까
OSEN 서정환 기자
발행 2017.05.02 06: 03

KGC가 누구도 해내지 못했던 우승에 도전한다.
20주년을 맞은 프로농구 역사에서 챔피언결정전 중 외국선수 공백이 생겼던 팀은 모두 우승에 실패했다. 외국선수 2인 보유제에서 한 명이 제대로 하지 못했을 때 이를 극복하고 우승한 팀은 없었다. 그만큼 농구에서 외국선수가 차지하는 비중은 절대적이다. 하지만 올 시즌 KGC에게는 예외일 수 있다.
안양 KGC인삼공사는 2016-17 KCC 프로농구 챔피언결정전에서 서울 삼성에 3승 2패로 앞서 있다. KGC는 2일 삼성의 안방 잠실에서 창단 첫 통합우승에 도전한다. KGC는 1차전 키퍼 사익스(23)가 발목을 다친 뒤 2차전부터 결장하고 있다. KGC는 사익스 없이 2승 2패를 기록하며 우승을 눈앞에 두고 있다. 6차전부터 대체선수 마이클 테일러(31)가 등장하지만, 비중은 크지 않을 전망. KGC가 우승한다면 사익스 공백을 딛고 우승했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 저스틴 피닉스의 태업으로 날아간 기아의 2연패
모비스의 전신 기아는 1997년 원년시즌 강동희, 허재, 김영만, 김유택, 클리프 리드의 막강멤버를 내세워 나래를 4승 1패로 꺾고 우승했다. 리드는 신장이 190cm에 불과했지만 ‘찰스 바클리’처럼 덩크슛하고 리바운드를 잡던 괴물이었다. 그는 평균 22.4점, 10.7리바운드로 초대 KBL의 왕으로 군림했다.
리드와 재계약을 맺은 기아는 1997-98시즌에도 가장 강력한 우승후보였다. 문제는 그의 파트너 저스틴 피닉스였다. 당시 팀당 외국선수를 2명 보유하고, 두 선수가 40분 내내 동시에 뛰던 시절이다. 외국선수 한 명이 없는 공백은 매우 치명적이었다.
기아는 98년 챔프전에서 이상민, 조성원, 추승균, 조니 맥도웰, 제이 웹의 현대와 만났다. 결국 피닉스가 말썽을 부렸다. 피닉스는 챔프전에서 종아리가 아프다며 거의 뛰지 않았다. 2,4차전은 아예 뛰지 않았다. 피닉스는 평균 4점, 1.4리바운드로 팀에 거의 도움이 되지 못하는 수준이었다. 반면 현대의 제이 웹(19점, 11.9리바운드)과 맥도웰(26점, 9.6리바운드)은 매 경기 40점, 20리바운드 이상을 합작하며 기아골밑을 폭격했다.
그럼에도 기아는 5차전까지 오히려 3승 2패로 앞섰다. 슈퍼스타 허재의 파워였다. 허재는 눈두덩이 찢어져 피가 나고, 오른손목이 골절돼도 붕대를 감고 나왔다. 최고의 수비수 추승균이 정말 수비를 못하는 선수처럼 보였다.
피닉스는 6,7차전 마지못해 뛰었지만 민폐만 끼쳤다. 당시만 해도 한국에 프로라고 보기에 경력이 수준미달인 외국선수들이 많이 왔다. 피닉스도 그 중 한명이었다. 한국리그도 널리 알려지지 않았고, 외국선수를 다루는 노하우도 많이 떨어졌다. 대체선수를 영입할 여력도 없었다.
결국 현대가 6,7차전을 잡으며 역전 우승을 달성했다. 허재는 시리즈 평균 23점, 4.3리바운드, 6.4어시스트, 3.6스틸, 3점슛 3.6개(성공률 37.9%)를 기록했다. 허재는 아직도 준우승을 하고도 MVP를 받은 유일한 선수로 남아있다. 아무도 이견을 달 수 없을 정도로 압도적인 활약이었다. 하지만 피닉스가 제대로 뛰었다면 역사는 달라졌을지도 모른다.
공교롭게 19년 전 현대의 역전우승을 이끌었던 이상민이 지금 감독으로 똑같은 상황을 맞았다. 이 감독은 “사실 너무 오래전이라 선수 때의 기억은 별로 없다. 그 때도 우리는 외국선수 두 명이 모두 뛰었고, 상대는 거의 한 명만 뛰었다. 지금도 마찬가지 상황인데 크레익이 잘해줘야 한다. 역전 우승을 했던 비결은 특별히 없었던 것 같다”며 추억에 젖었다.
이상민 감독은 맥도웰을 확실하게 컨트롤했다. 이 감독은 “비시즌 마카오 경기서 일부러 맥도웰에게 경기 내내 한 번도 패스를 하지 않았다. 그 날 밤 맥도웰이 찾아와서 한국말로 ‘상민 미안해’라고 하더라. 그 다음부터 말을 잘 들었다”며 웃었다.
5차전에서 크레익은 턴오버 잔치를 하며 자폭했다. 삼성은 크레익을 다룰 수 있는 가드가 없다. 이상민 감독은 크레익을 보면서 맥도웰을 그리워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 ‘전설의 식물’ 외국선수 찰스 존스
차라리 태업이 낫다. 뛰어도 전혀 도움이 안 되는 선수도 있었다. 프로농구 역사에서 ‘식물 선수’를 거론할 때 절대 빠지지 않는 찰스 존스다. 청주 SK는 황성인, 조상현, 로데릭 하니발, 재키 존스, 서장훈의 막강 멤버로 2000년 현대의 3연패를 저지했다. 석주일도 있긴 있었다.
SK는 2002년 다시 한 번 우승에 도전했다. 황성인이 상무에 가고 임재현이 주전가드였다. 우승주역 외국선수 콤비는 없었다. 에릭 마틴과 찰스 존스가 뛰었다. 마틴은 재키 존스만큼 슛은 없었지만, 리바운드는 발군이었다. 다만 시즌 막판 합류한 존스는 하니발과 같은 농구센스가 전혀 없었다. 최인선 감독은 챔프전서 존스를 포인트가드로 시험했다. 하지만 대실패였다. 결국 존스는 1차전서 7분 36초 뛰고, 2점을 올린 뒤 더 이상 챔프전에서 뛰지 못했다. 몸은 멀쩡했지만 뇌가 많이 아팠다.
2002년 SK의 챔프전 상대는 김승현, 김병철, 전희철, 마르커스 힉스, 라이언 페리맨의 대구 오리온스였다. 힉스는 괴물 같은 탄력으로 리그를 지배했다. 그는 챔프전 평균 31.3점, 11리바운드, 4.1블록슛으로 오리온스에 창단 첫 우승을 안겼다. 힉스는 외국선수 최초 챔프전 MVP에 등극했다. 리바운드왕 페리맨은 평균 12.1개의 리바운드를 잡았다.
SK는 외국선수 한 명을 빼고도 7차전까지 잘 싸웠다. 외국선수나 다름없는 서장훈의 전성기였다. 그는 챔프전 평균 19.6점, 9.7리바운드로 엄청났다. 마틴이 리바운드는 10.6개씩 거들어줬지만 슛이 없었다. 서장훈 혼자 골밑에서 아무리 잘 싸워도 부담이 너무 컸다. SK는 5차전서 조상현의 버저비터 3점슛이 꽂혀 오히려 3승 2패로 시리즈를 리드했다. 하지만 대구에서 열린 6,7차전을 내리 내주며 우승에 실패했다. 이게 다 존스 때문이다.
▲ 사익스, KGC 동료들과 마음만은 함께 뛴다
외국선수 한 명이 부진했던 시리즈는 공통점이 있다. 한 팀에 허재, 서장훈 등 슈퍼스타가 있어 5차전까지는 3승 2패로 리드했다는 것. 그럼에도 기아와 SK는 6,7차전을 내주며 준우승에 그쳤다. 공교롭게 두 팀 모두 최인선 감독이 이끌었다. 외국선수 한 명이 이렇게 중요하다. 그런 의미에서 사익스의 부재 속에 3승 2패로 앞서고 있는 KGC는 과연 전통의 팀들과는 다른 결과를 낼까.
비록 사익스는 코트에 없지만, 마음만은 같이 뛴다. KGC가 대체선수 마이클 테일러를 영입하며 사익스는 벤치에도 앉을 수 없게 됐다. 사익스는 5차전 관중석에서 동료들을 지켜봤다. 하프타임에는 라커룸에 함께 들어가 똑같이 행동하고 있다. 5차전서 이정현은 결정적 3점슛을 넣고 사익스를 향해 세리머니를 했다. 동료들도 사익스를 생각하며 한 발 더 뛰고 있다.
데이비드 사이먼은 “사익스가 없으니까 동료들이 한 발 더 뛴다고 생각한다. 마음만은 늘 함께 뛰고 있다. 사익스를 위해 6차전에서 끝내겠다”고 선언했다. KGC는 우승을 하면 사익스는 물론 테일러에게도 우승반지를 챙겨줄 예정이다. 물론 우승을 달성했을 때 이야기다. / jasonseo34@osen.co.kr
[사진] 피닉스, 맥도웰, 웹, 존스, 페리맨, 힉스(위부터) / KBL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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