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윤표의 휘뚜루 마뚜루]‘장외 평균자책점 1위’ 임찬규, "아직 완전치 않다"
OSEN 홍윤표 기자
발행 2017.05.08 12: 35

‘새는 알에서 나오려고 투쟁한다. 알은 세계이다. 태어나려는 자는 하나의 세계를 깨트려야 한다.’
헤르만 헤세의 『데미안』에 나오는, 저 유명한 글귀이다.
5월 8일 현재 프로야구 KBO리그의 투수들 가운데 평균자책점 1위는 양현종(29. KIA 타이거즈)이다. 양현종은 평균자책점(1.52)과 승리(6승) 부문에서 선두에 올라있다. 그런데 평균자책점 부문에서는 소리 없는 추격자가 있다. 임찬규(25. LG 트윈스)가 그 주인공이다.

임찬규는 올 시즌 LG의 선발 한 축을 맡아 5게임에 나가 27⅔이닝을 던져 2승1패, 평균자책점 1.30을 기록하고 있다. 규정투구이닝(32이닝)에 조금 못 미치고 있지만 ‘장외 평균자책점’ 1위다. 제도권 진입은 시간문제일 뿐인 임찬규가 최고 투수 반열에 올라 있는 양현종과 평균자책점 선두를 다툰다는 사실은 자못 놀라운 일이다.
고무적인 것은, 임찬규의 성적이 ‘나날이 좋아지고 있다’는 점이다. 임찬규는 최근 두 경기(4월 27일 SK 와이번스, 5월 3일 NC 다이노스)에서 잇달아 7이닝 이상 소화해내면서 무실점으로 잘 던졌다. 무엇보다 볼넷을 남발하던 예전의 모습은 오간 데 없이 안정된 제구력을 구사했다.
임찬규는 여느 투수들과 달리 혹독한 ‘성장통’을 치러야했다. 2011년 휘문고를 졸업하고 1차 지명으로 LG 유니폼을 입었던 그는 곧바로 1군 무대에 섰고, 주위의 기대를 한 몸에 받았지만 두 차례의 좀체 잊기 어려운 시련을 겪었다.
2011년 6월 8일, 임찬규는 한화 이글스 전(잠실구장) 9회 초 주자를 3루에 두고 마무리 투수로 나섰지만 엉겁결에 ‘퀵 리턴 피치(quick return pitch)’로 보크를 범했다. 그 장면에서 심판들이 그냥 지나치는 바람에 논란을 불러 일으켰고, 그날 심판진 4명은 오심으로 줄줄이 징계를 당했다.
임찬규는 그해 11월에 기자와 만난 자리에서 “그 후에 ‘임 보크’라는 소리를 들으며 누리꾼 사이에서 엄청난 욕을 먹었어요. 나는 잘못한 것이 없는데(보크를 범한 것이 규칙위반일 뿐이지 죄는 아니니까요)…”라며 볼멘소리를 했다. 일리가 있는 말이었다. 만약 심판이 임찬규의 보크를 제대로 잡아내 바른 판정을 했더라면 임찬규가 괜한 욕을 먹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임찬규는 6월 17일 잠실 SK전에서는 4-1로 앞선 상황에서 등판, ⅓이닝 동안 4타자 연속 볼넷 포함 사사구를 5개나 내주고 5실점, 패전투수가 되고 말았다. 임찬규는 “야구를 하면서 처음으로 마운드에서 내려가고 싶었다. 첫 시즌이었지만 몇 년 치 사건을 모두 경험해봤다”고 당시에 괴로운 심정을 털어놓기도 했다.
그로부터 6년의 세월이 흘러 임찬규는 옛 일을 잊고 새로운 모습으로 마운드에 당당히 나서고 있다. 그의 시련은 군 복무(경찰야구단) 시절 오른 팔꿈치 수술로 이어지긴 했지만 그 일은, 충분히 쉬는 시간을 온전히 갖게 돼 전화위복으로 작용했다. 임찬규는 경찰야구단에 다녀온 뒤 몰라보게 달라졌다.
송구홍 LG 단장은 “(임찬규가) 내면적으로 한층 성숙해졌다. 과거엔 덤벙덤벙 대던 점이 있었지만 복무를 마치고 온 후 야구를 대하는 자세가 굉장히 달라졌다. 아주 진지하고 절실해졌다.”고 전했다.
임찬규는 이젠 웃으며 옛일을 돌아볼 마음의 여유도 생겼다.
“보크를 범 할 때는(2011년 6월 7일의 일) 당황했지만 팀이 이겨서 금세 잊었는데, 볼넷으로 4타자를 내보냈을 때는 팀도 져서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다. 그 이후 ‘투 볼’이나 ‘스리 볼’만 되면 볼넷에 대한 두려움으로 트라우마가 생겼다. 그런 증상이 2년 더 계속됐다.”
임찬규의 오늘이 거저 얻어진 것은 물론 아니다. 임찬규는 무던히, 부단하게 노력했다. 팔꿈치 수술 후 쉬는 동안 건강을 되찾았고 팔 힘도 좋아졌지만 투구 공백으로 인해 예전의 감각을 찾기 어려웠다.
“신인 때의 좋았던 투구 밸런스를 잊어버렸다. 그래서 옛 투구 영상을 되풀이해 보면서 감각을 되찾으려고 애썼다. 그 과정에서 감독님, 투수코치님들의 도움을 많이 받았다. 아직도 완성 단계가 아니고 갈 길이 멀다”고 조심스러워했다.
임찬규는 가정형편이 어려워 대학진학을 포기하고 곧바로 프로로 들어왔다.
“2차 10번을 받더라도 프로팀에 가야겠다고 마음먹었어요. 어릴 적 우상으로 생각했던 최동원 선배님처럼 되는 것이 제 꿈이에요.”
그 동안 마땅한 4, 5선발을 찾지 못해 애를 먹었던 LG는 양상문 감독이 임찬규에게 전폭적인 신뢰를 보내면서 10개 구단 가운데 가장 강력한 선발진을 구축하고 있다. 임찬규의 활약 여부에 따라 올해 LG의 우승 염원이 풀릴 수도 있다.
임찬규는 다시 LG 마운드의 희망봉으로 떠올랐다.
2011년 입단 첫해에 임찬규를 적극 기용했던 박종훈 전 감독(현 한화 단장)은 당시에 “임찬규는 자질과 배짱을 갖춘 투수이다. 오랜만에 LG가 좋은 투수를 얻었다. 다만 지금은 두려움을 알아가는 과정이다. 좋은 투수로 성장하기 위한 ‘성장통’을 앓고 있다고 생각한다.”고 술회한 적이 있다.
여러 시행착오를 딛고 임찬규는 힘차게 앞으로 나아가고 있다.
‘한 사람 한 사람의 삶은 자기 자신에게로 이르는 길이다. 우리가 서로를 이해할 수는 있다. 그러나 의미를 해서갈 수 있는 것은 누구나 자기 자신 뿐이다.’ 고 헤르만 헤세는『데미안』에서 기술했다. ‘나를 찾아가는 길’에 우리는 누구나 서 있다.
/홍윤표 OSEN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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