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쎈 인터뷰] '넥센식 벌크업'은 박효준의 멘탈을 살찌웠다
OSEN 최익래 기자
발행 2017.05.24 08: 32

'벌크업(bulk up)'. 부피가 늘어나는 것을 뜻하는 단어다. 야구를 비롯한 스포츠에서는 근육량을 늘리는 과정을 일컫는 말이다. 그러나 뉴욕 양키스 산하 싱글A팀 찰스턴에서 뛰고 있는 박효준(21)은 벌크업으로 근육 대신 정신을 살찌웠다.
박효준은 야탑고등학교 3학년이던 2014년 7월 계약금 116만 달러를 받고 양키스에 입단했다. 한국 고교 유망주가 메이저리그 최고 명문 구단인 양키스와 계약한 사실은 당시 큰 화제를 모았다.
입단 첫해였던 2015년 풀라스키(루키 리그)에서 뛰었던 박효준은 56경기서 타율 2할3푼9리, 5홈런 30타점을 기록했다. 이어 찰스턴(싱글A)로 한 단계 승격한 박효준은 고배를 맛봤다. 지난해 그의 성적은 116경기 출장, 타율 2할2푼5리, 2홈런, 34타점으로 좋지 못하다.

박효준은 "솔직히 말하면 지난해는 몸과 마음 모두 힘들었던 시기다"라고 운을 뗐다. 이어 그는 "원래 체력에는 자신 있었다. 만약 누가 나에게 '365일 내내 경기에 나서야 한다'라고 한다면, 난 괜찮다고 대답했을 것이다. 그러나 100경기 이상 경기에 나서는 건 쉽지 않은 일이다. 그걸 경험했다. 육체적인 부분은 물론 정신적인 면까지 강해져야 할 필요성을 절실히 느꼈다"라고 회상했다.
그때 박효준의 손을 잡은 건 김하성(넥센)이었다. 김하성은 박효준의 야탑고등학교 1년 선배. 김하성의 배려 하나는 올 시즌 박효준을 완전히 바꿔놨다. "이지풍 넥센 트레이너 코치의 '벌크업 효과'는 원체 유명하지 않나. 나 역시 한 번쯤 이야기를 나누고 도움받고 싶었다. 그때 때마침 야탑고등학교 1년 선배인 (김)하성이 형이 다리를 놓아주었다"라고 밝혔다. 김하성의 소개로 이지풍 코치를 만난 박효준은 비시즌 넥센 선수단과 함께 훈련을 진행하게 됐다. 이 코치와 넥센 구단 측의 '통 큰 배려'가 있었기 때문이다. 우물쭈물하던 박효준을 향해 이지풍 코치가 먼저 손을 내밀었다.
박효준은 이택근, 채태인 등 쟁쟁한 베테랑과 함께 몸을 만들었다. 하지만 달라진 건 몸 뿐이 아니었다. 박효준이 근육을 붙인 곳은 외려 멘탈이었다. "이택근 선배가 해준 말이 아직도 기억에 선명하다. '편하게, 즐겁게 야구하라. 야구할 때는 야구에 집중하는 게 맞지만 그 외에는 편하게 쉬면서 야구에 집중해야 한다. 그날의 성적은 야구장에 두고 오는 게 맞다" 이택근의 말이다. "너무 야구에만 빠져있으면 오히려 스트레스를 받는다. 그 스트레스를 어떻게 해소하는지가 성적과 직결되는 것 같다." 역시 박효준과 마찬가지로 고교 졸업 후 곧장 미국으로 건너갔던 채태인의 이야기다.
기라성같은 선배들이 던진 한마디는 박효준을 바꿨다. 박효준은 "지난해까지 성적이 안 좋을 때면 스트레스가 상당했다. 하지만 이제 내려놓기로 마음먹었다. 야구장에 있을 때는 누구보다 야구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한다고 자부한다. 그러나 그 외에는 많이 내려놨다. 야구선수가 아닌 것처럼 평범해진다. 영화나 드라마를 보고, 한식당을 간다. 루틴이 완전히 바뀌었다"라고 강조했다. 친화력 역시 박효준의 달라진 루틴이 낳은 변화 중 하나다. 그는 "팀 동료들과 간단한 식사자리를 가지기도 한다. 물론 야구장에서도 호흡이 잘 맞는 동료들이지만 밖에서 만나 이야기를 나눠보면 주고받지 못했던 주제들이 튀어나온다. 그 점에 더 가까워진 것 같다"라고 밝혔다.
마음을 고쳐먹자 성적도 달라지고 있다. 박효준은 올 시즌(한국시간 23일 기준) 33경기에 출전해 타율 3할1푼, 출루율 3할9푼5리, OPS(출루율+장타율) 0.852, 3홈런, 18타점을 기록 중이다. 박효준은 "올해 성적이 괜찮다는 얘기는 주위에서 많이 듣는다. 지인들부터 감독이나 코치까지 다들 그렇게 말해준다. 하지만 만족스럽지는 않다"라고 겸손하게 답했다. 이어 박효준은 "그렇지만 지난해까지 내 모습과 달라진 점은 분명하다. 첫 2년은 내가 하고 싶던 야구를 제대로 못했다. 변명같지만 스트레스가 참 많았다. 그걸 내려 놓으면서 '내가 하고 싶던 야구'가 조금씩 나오는 것 같다. 야구장에 가는 게 너무 재밌다. 더 즐기고 싶다"라고 설명했다.
대표적인 변화는 '눈 야구'다. 박효준은 지난해 517타석에서 120개의 삼진을 빼앗겼다. 반면, 볼넷은 고작 67개에 불과했다. 사실상 삼진이 볼넷의 두 배 꼴이었다. 올 시즌은 다르다. 박효준은 147타석에서 23개의 삼진을 내줬지만 볼넷도 17개를 골라냈다. 절대적으로 삼진률 자체도 떨어진데다 볼넷과 비율을 일정히 유지하고 있는 것이다.
박효준은 "아마추어 때부터 선구안에는 자신 있었다. 지난해까지 삼진이 많았던 건 소심했기 때문이다. 야구를 즐기지 못하면서 칠 공도 놓쳤다. 삼진 증가는 자연스러웠다"라며 "편하게 즐기다보니 삼진도 줄고 성적이 올라오는 것 같다"라고 자체 분석했다.
올 시즌 박효준은 유격수로 176이닝, 2루수로 109⅓이닝을 소화 중이다. 실책은 14개로 다소 많지만 박효준의 자신감에 영향은 없다. 그는 "매일 경기 후 비디오를 돌려본다. 단순히 실책 개수에 연연하지 않는다. 코칭스태프들도 내 수비에 높은 평가를 내리고 있다"라고 자평했다.
양키스의 키스톤은 유망주들이 그야말로 즐비하다. 양키스의 '귀한 몸' 글레이버 토레스(21)는 올 시즌 전까지 싱글A에서 뛰었지만 최근 트리플A까지 '쾌속 승진'했다. 메이저리그 공식 홈페이지 'MLB.com'이 선정한 2017년 유망주 순위 전체 3위에 오르기도 했다.
박효준에게는 직격탄이 될 수 있다. 그러나 긍정 마인드는 흔들리지 않았다. 박효준은 "의식이 아예 안 된다면 그건 거짓말이다. 하지만 내가 할 일을 다하는 게 먼저다"라고 밝혔다. 이어 그의 입에서는 다소 놀라울 만한 이야기가 흘러나왔다. 박효준은 "예전에는 '얼른 야구를 잘해서 빨리 올라가야지'라는 생각뿐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다르다. 내 야구 실력이 성장하는 게 더 먼저다. 물론 그러기 위해서는 큰 무대에서 뛰는 게 보탬이 되겠지만, 야구를 정말 잘하고 싶다. 나를 발전, 성장시키면 어느 수준에 도달하게 되지 않을까. 물론 운도 따라야겠지만 말이다"라고 기대했다. 이제 막 21살이 된 선수라기에는 성숙한 발언이었다.
때문에 박효준의 올 시즌 목표는 숫자 너머에 있다. 그는 "전보다 확실히 발전됐다라는 걸 나 스스로 느끼는 게 목표다. 시즌이 끝났을 때 싱글A에 머물든, 더블A로 승격하든 크게 상관없을 것 같다"라고 덧붙였다.
'화려하지는 않더라도 꾸준한 선수'. 박효준이 그리는 자신의 먼 미래 모습이다. 그 목표를 향해 더디지만 차분히 걸어가고 있는 박효준. 그의 목표가 이뤄지는 데 2017시즌을 앞둔 겨울은 어떤 역할을 하게 될지 궁금하다. /ing@osen.co.kr
[사진 및 동영상] 박효준 본인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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