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사참사 2년] ① 상처만 남긴 창사참사, 벌써 잊었나?
OSEN 서정환 기자
발행 2017.05.25 11: 35

한국농구는 아직도 정신력·사명감 등을 강조하고 있다. 유망주들을 키울 수 있는 구체적인 시스템은 없다.
남자농구대표팀은 오는 6월 3일 일본 나가노에서 개최되는 2017 FIBA Asia Cup 동아시아 예선대회 출전을 앞두고 진천선수촌에서 훈련을 하고 있다. 허재 대표팀 전임감독은 “요즘 선수들이 대표팀에 사명감이 없다”고 쓴소리를 했다. 정예선수들이 부상 및 개인사유를 이유로 소집에 불응한 것을 비판한 것.
일부 농구팬들도 ‘허재 감독이 속 시원하게 말 잘했다’ ‘요즘 선수들은 정신력이 떨어진다’며 동조하고 있다. 과연 그럴까. 동아시아 예선대회가 그렇게 중요한 대회일까. OSEN에서 ‘창사참사 2주년’을 맞아 5차례 특집기사를 준비한다. 남자농구 대표팀 운영에 대해 짚어보는 시간을 갖는다.

▲ 실리보다 타이틀에 집착하는 대표팀 운영
국제농구연맹(FIBA)는 대륙별 선수권 대회를 폐지했다. 과거 아시아에서 올림픽이나 농구월드컵에 나가려면 2년 마다 열리는 아시아선수권대회 우승이 필수조건이었다. 이제 그렇지 않다. 오는 11월부터 시행되는 홈&어웨이 예선에서 좋은 성적을 내야 농구월드컵에 갈 수 있다. 농구월드컵 아시아 1위 팀이 2020년 도쿄올림픽에 간다. 기존 아시아선수권은 ‘FIBA 아시아컵’으로 명칭 변경되며 권위가 격하됐다. 우승을 하면 명예는 있겠지만, 세계대회 출전권은 주어지지 않는다.
‘몰아치기’ 공부로 반짝 성적을 낼 수 있는 시대는 지났다. 비시즌에만 대표팀 경기를 하는 것이 아니다. 일년 내내 프로리그 기간에도 상시 소집이 된다. 이제 대표팀 운영 전반에 걸쳐 긴 호흡과 장기플랜이 필요한 시대가 됐다. 하지만 한국농구는 아직도 구시대적인 사고방식에 갇혀 있다. 허재 전임 감독의 대표팀 운영실태를 살펴봐도 그렇다.
2017 FIBA Asia Cup 동아시아 예선대회는 말 그대로 아시아컵에 출전하기 위한 동아시아지역 예선대회다. 참가국 6개 팀 중 5위 안에만 들면 아시아컵에 갈 수 있다. 한국은 일본, 마카오와 함께 A조다. B조는 중국, 대만, 홍콩이다. 한국은 대학선발만 나가도 최소 4위가 보장된다. 우승 타이틀에 집착하기보다 유망주 발굴로 실리를 찾는 것이 낫다.
허재 감독은 지난 4월 예비명단부터 잘못 짰다. 양동근, 조성민, 김주성 등 노장들은 배제하며 세대교체에 대한 최소한의 의지는 보였다. 다만 이정현, 오세근, 박찬희 등 FA 계약을 앞두고 있는 프로선수들을 포함시켰다. 플레이오프에서 격전을 치른 이들은 곧바로 계약문제와 마주했다. 비시즌 운동을 제대로 할 수 있을 리가 없다. 특히 챔프전까지 치른 이정현과 오세근이 제대로 쉬지도 못하고 바로 대표팀에 합류하는 것은 누가 봐도 혹사다.
대표팀을 고사한 선수들 역시 정당한 진단서 등을 제출했다. 어차피 부상으로 뛸 수 없는 상태다. 허재 감독이 지금처럼 시도 때도 없이 1진을 선발하길 원한다면, 정작 중요한 대회에 체력저하, 부상 등의 문제가 생길 수 있다. 또 선수들의 소속팀과도 차출을 두고 마찰을 빚을 수밖에 없다. 
유망주 육성에 대한 의지가 있는지도 의문이다. 대표팀은 상비군 제도가 없다. 대표팀 예비명단에 대학생은 허훈과 전현우 단 두 명뿐이다. 허훈은 처음부터 대표팀 최종명단에 들었다. 송교창과 전현우는 예비명단에만 있었다. 이후 4월 21일 김선형, 김시래, 최준용, 최부경, 김종규가 대표팀을 고사했다. 두경민, 이대성, 변기훈, 박인태, 송교창이 대체로 뽑혔다. 변기훈이 발목수술을 결정하며 5월 23일 전현우가 선발됐다.
허재 감독이 애초에 유망주를 육성할 생각이 있었다면, 장신포워드 송교창은 반드시 뽑아서 시험해야 하는 선수였다. 허 감독은 처음에 “아직 기량이 떨어진다”는 이유로 송교창을 뽑지 않았다. 송교창은 프로농구 기량발전상을 수상한 검증된 선수다. 현재 대학선수들의 기량이 예년에 비해 매우 떨어지는 것은 사실이다. 다만 양홍석(중앙대1), 양재민처럼 가능성 있는 선수가 있다면, 바로 뽑아 시험을 해야 한다. 하지만 허재 감독의 의중에 육성은 없었다.
허재 감독이 이끈 남자농구대표팀은 지난해 9월 이란 테헤란에서 개최된 2016 FIBA 아시아챌린지에서 이란을 두 번 만나 모두 굴욕의 대참패를 당했다. 한국은 2차 조별리그 F조 이란과의 마지막 경기에서 47-85, 38점차 대패를 당했다. 한국은 결승에서 이란을 다시 만났지만 다시 한 번 47-77로 처참하게 무너졌다. 이란은 캄라니 등이 빠진 1.5군이었지만 한국은 당시 상황에서 최정예를 구축해 나갔다. 
당시 경기는 국내에 중계조차 되지 않았다. 대표팀은 ‘준우승’이라는 타이틀로 처참한 내용을 덮었다. 왜 졌는지에 대한 전력분석이나 반성도 없는 모양새다. 허재 감독은 이번에도 ‘B급 대회 우승 타이틀에 집착한다’는 지적을 피하지 못하고 있다.
▲ ‘손빨래’ 하고 ‘도시락’ 먹는 대표팀에서 뛰고 싶을까
한국은 2015년 중국 창사에서 열린 아시아선수권에서 6위에 그쳐 2016 리우올림픽 진출에 실패했다. 5,6위 결정전에서 레바논만 잡았어도 올림픽 최종예선까지는 갈 수 있었다. 하지만 한국은 레바논에게 87-88로 패해 최종 6위로 대회를 마쳤다. 선수들은 5위를 했을 때 최종예선 진출 가능성이 있다는 사실조차 제대로 모르고 뛰었다. 허재 감독이 이끌던 2009년 톈진선수권 7위에 이어 역대 두 번째로 저조한 성적이었다.
대표팀 감독도 없던 한국은 대회를 불과 세 달 앞두고 김동광 감독을 임시로 선임해 대회를 준비했다. 2014 인천 아시안게임 우승멤버를 7명 포함시켰으나 손발을 맞추기에 시간이 부족했다. 대표팀에 대한 지원도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 연습복도 늦게 나와 선수들이 소속팀 유니폼을 입고 훈련을 할 정도로 열악했다.
창사 현지에서도 계속 문제가 터졌다. 기자는 유일하게 2주 동안 대표팀과 동행하며 현장취재를 했다. ‘손빨래 사건’ ‘도시락 사건’ ‘이코노미 좌석사건’ 등이 연이어 터졌다. 대회초반 현지에서 대표팀을 관리해줄 농구협회 및 KBL 직원이 아무도 없어 벌어진 촌극이었다. 대표팀을 위해 도시락을 배달하고, 세탁업체까지 알선해 준 한인식당 사장이 연맹 또는 협회보다 큰 역할을 했다.
기자는 지난 3월 축구대표팀 월드컵 최종예선 취재를 위해 2년 만에 다시 창사를 찾았다. 최고급 5성 호텔에 머문 축구대표팀에는 '손빨래' 같은 촌극이 벌어지지 않았다. 
한인식당 사장은 “농구대표팀 스태프들이 하루가 멀다 하고 식당에 와서 술을 마셨다. 다음 날 중요한 경기를 앞두고 인사불성이 된 적도 있다. 택시를 탈 수 없을 정도로 취해 내게 직접 호텔까지 운전해줄 것을 요구해서 데려다 준적도 있다”고 털어놨다.
창사참사 2년이 지났지만 대표팀 사정은 크게 나아지지 않았다. 허재 전임 감독이 부임했지만, 대표팀 운영에 대한 뚜렷한 비전이나 철학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대표팀에 오직 사명감을 강조하며 희생을 강요하는 시대는 지났다. 선수들이 먼저 태극마크에 자긍심을 느낄 수 있도록 대표팀다운 지원을 해주는 것이 먼저가 아닐까. 한국농구는 2년 전 ‘창사참사’에서 전혀 배운 것이 없는 모양이다. / jasonseo34@ose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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