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품 조연’ 정진기, 실력으로 만들어가는 기적
OSEN 김태우 기자
발행 2017.06.25 08: 05

“힘이 좋다. 흔히 말해 하드웨어 등 그릇이 좋은 선수다. 공·수·주를 모두 갖추고 있다”
지난해 11월 열린 SK의 가고시마 캠프 당시 정경배 타격코치는 이제 막 군 복무를 마치고 돌아온 정진기(25)의 가능성에 대해 즐거운 표정을 지었다. 아직 부족한 면이 있는 선수지만, 이만한 하드웨어의 출현 자체가 흔하지 않은 일이라는 것이었다. 탄탄한 체구에 빠른 발, 그리고 한층 더 업그레이드 된 힘까지 가지고 돌아온 정진기는 ‘SK판 강한 2번’의 선두주자로 뽑혔다.
그런 정진기는 올해 팀의 기대감을 높이고 있다. 치열한 SK의 외야 경쟁에서 승리, 올 시즌 팀의 개막 로스터 한 자리를 꿰찬 정진기는 시즌이 반환점을 돈 현 시점까지도 단 한 번 2군에 가지 않은 채 자리를 지키고 있다. “올해는 1군에서 뛰는 것이 목표”라고 했던 정진기는 1군에 꾸준히 남아있는 것에 대해 “기적 같은 일”이라고 미소 짓는다. 스스로도 믿기지 않는 모습이다.

실력이 있기에 가능한 일이다. 물론 정진기의 기록은 외견상 그렇게 화려하지 않을 수도 있다. 24일까지 시즌 56경기에 나가 타율은 2할6푼9리, 출루율은 3할2푼1리에 그쳤다. 두 지표 모두 리그 평균 이하다. 그러나 이런 성적에도 불구하고 꾸준히 1군에 남아 있을 수 있는 이유가 있을 터. 외야 전 포지션을 소화할 수 있는 수비 활용성은 물론 쏠쏠한 한 방까지 보여주고 있어서다.
당초 정진기는 중장거리 타자로 평가됐다. 야수 출신 해설위원들은 갭히터 스타일로 보는 경우가 많았다. 발이 빠르기에 좌우중간을 가르는 2~3루타가 많을 것으로 봤다. 그런데 뚜껑을 열어보니 홈런포가 기대 이상이다. 정진기는 시즌 141타석에서 8방의 대포를 날려 장타율이 0.500에 이른다. 순장타율(ISO)은 0.231로 높은 편이다. 트레이 힐만 감독은 타율보다는 OPS(출루율+장타율)형 타자를 선호한다. 정진기는 이런 팀 사정까지 등에 업고 입지를 다지고 있다.
전형적인 주전 선수는 아니지만 선발로 나갔을 때 좋은 인상을 심어주고 있는 것도 ‘생존 비법’이다. 정진기는 교체로 나갔을 때의 타율이 2할3푼3리다. 그러나 선발로 나간 26경기에서는 타율 2할8푼, 8홈런, 20타점, OPS 0.893을 기록했다. 1군 잔류의 자격이 있음을 충분히 증명한 것이다. 정진기가 말하는 기적은 실력으로 만들어지고 있는 셈이다.
아직 긴장의 끈을 놓지 않고 있는 정진기는 발전 중이다. 가고시마 캠프 당시부터 정진기의 가능성을 확인하고 일찌감치 교정이 들어간 정 코치는 아직은 변화구 대처 능력이 떨어진다고 보고 있다. 경험이 부족한 타자로서는 어쩔 수 없는 일이다. 그럼에도 적극적인 스윙을 주문한다. 정 코치는 정진기에게 항상 “바보처럼 죽지 말아라”고 강조한다. 자기 스윙을 하면서 1군 투수들의 공에 타이밍을 맞히고, 그 속에서 깨닫는 것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확고한 주전 선수는 아니지만 1군에서 통할 실력이 있다는 것을 보여준 것은 소득이다. 2군행에 대한 압박 없이 좀 더 편안하게 시즌에 임할 수 있는 여건이 마련됐다. 출발이 좋은 셈이다. 정진기는 “코치님께서 타격폼이 나빠지면 금방금방 잡아주신다. 겨울에 폼을 바꾼 뒤 여러 가지로 돌아서 왔는데 지금은 이 폼이 점점 편안해지고 있다”고 말하면서 “항상 긍정적인 생각으로 타석에 임하겠다”고 다짐했다. 그 긍정적인 생각은 SK의 미래도 긍정적으로 바꿔놓고 있다. /skullboy@ose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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