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야구 36년 ‘미스터 올스타’를 빛낸 ‘당대의 드림카’
OSEN 강희수 기자
발행 2017.07.15 09: 39

1982년 출범해 가장 사랑받는 국민스포츠로 성장한 프로야구는 항상 ‘꿈과 희망’이라는 문구를 달고 다닌다. 정치적으로든 경제적으로든 프로야구는 늘 ‘꿈과 희망’이었다. 출범 이후 35년이 지난 프로야구이지만 지금도 ‘꿈’ 또는 ‘드림’이라는 문구는 프로야구와 함께 하고 있다.
‘꿈’이라는 단어가 프로야구처럼 자연스럽게 쓰이는 현실 영역이 하나 더 있다. 자동차다. ‘어른들의 장난감’으로 불리기도 하는 자동차는 나이가 들수록 더 구체화 되는 ‘꿈’이다. 사회 진출을 준비하는 이들은 ‘어떤 일을 할 것인가’라는 고민과 함께 ‘장차 어떤 차를 탈’ 것인 지, 드림카를 설계하게 된다. 
하루하루 피말리는 승부를 펼치는 프로야구이지만 이기고 지는 것보다 ‘행사’ 자체에 더 의미를 두는 축제도 있다. 올해는 대구 삼성라이온즈파크에서 열리고 있는 ‘프로야구 올스타전’이다. 한 시즌의 반환점에서 잠시 숨을 돌리며 갖는 이 축제는 두 개의 꿈이 하나 되는 만남의 장이기도 하다. 꿈의 올스타 ‘미스터 올스타’에게 당대의 ‘드림카’가 부상으로 주어지는 순간이 그 지점이다. 

2017 타이어뱅크 KBO 올스타전의 MVP에게 돌아가는 부상은 기아자동차 ‘스팅어’다. 자동차 보유가 보편화 되면서 한 동안 ‘꿈’이라고 하기엔 왠지 아쉬웠던 차가 부상으로 등장했지만 ‘스팅어’는 좀 다르다. 3800만 원 상당의 가격도 가격이지만 스팅어는 처음부터 ‘남자의 질주 본능을 깨우라’는 콘셉트 아래 개발 된 퍼포먼스 세단이기 때문이다.
정지상태에서 시속 100km까지 도달하는데 걸리는 시간 4.9초, 최고 속도 270km/h라는 스펙만으로도 차를 아끼는 이들의 가슴을 두근거리게 한다. 물론 세상에는 어마어마한 슈퍼카들이 존재한다. 하지만 슈퍼카가 ‘행운이 곁들여진 드림카’라면 스팅어는 ‘현실 속의 드림카’다. 웬만해서는 이루기 힘든 꿈보다는 좀더 애쓰면 성취할 수 있는 꿈이 현실에서는 더 소중하다.
기아자동차가 고가의 스팅어를 올스타전 MVP 즉 ‘미스터 올스타’에게 선물로 내놓는 데는 두 개의 ‘꿈’을 연결해 스팅어의 드림카 이미지를 굳히고자 하는 의도가 엿보인다.
스팅어도 기아자동차에서 만든 차이지만 최근 몇 년간의 미스터올스타 부상은 기아차의 독무대였다. 기아차는 2009년부터 올해까지 9년째 부상을 후원하고 있다. 차종은 대부분 중형 세단 ‘K5’ 였다. 2009년 ‘포르테 하이브리드’, 2012년 ‘쏘렌토R’ 외에는 줄곧 K5가 미스터올스타의 축하상품이 됐다.
K5는 ‘디자인 기아’의 상징을 안고 있는 차다. 지금은 현대기아차 디자인 총괄 사장을 맡고 있는 피터 슈라이어가 기아자동차의 디자인 경영 방침에 맞춰 출시한 첫 번째 ‘K시리즈’가 K5다. 피터 슈라이어는 아우디와 폭스바겐의 책임 디자이너로 일하다 2006년 기아자동차에 영입 된 뒤 2010년 K5로 ‘디자인 기아’의 뼈대를 잡았다. 물론 그 이전에 출시 된 차의 디자인에도 간여하기는 했지만 피터 슈라이어의 기아차 디자인 철학이 온전하게 묻어난 차는 K5에서부터 시작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K5가 6년간이나 올스타전 MVP 부상으로 장기집권 한 데는 이런 상징성이 배경에 있다.
미스터올스타 부상으로 자동차가 자리를 비운 시절도 있었다. 1999년부터 2008년까지 10년간이다. 1997년 한국 경제에 불어 닥친 IMF 외환위기로 우리나라 자동차 산업이 크게 재편 된 시기다. 1999년에는 롯데의 박정태가 20냥쭝짜리 골든볼을 받았고, 2000년 한화 송지만과 2001년 두산 우즈는 20냥쭝짜리 골든배트를 받았다. 그리고 이후 3년간은 현금 1000만 원이 부상이었다. IMF 외환위기가 대한민국 국민들에게 일깨워 준 두 가지 가치를 보는 듯하다. 당시 경제 위기는 ‘만고의 진리는 금’이며 ‘어떤 상황이 닥칠지 모르니 현금을 쥐고 있어야 한다’는 가르침을 줬다. 
2005년부터 2008년까지 4년간은 현금 1000만 원에 삼성 PAVV 대형 PDP 또는 LCD TV가 부상으로 활약했다. 삼성전자가 글로벌 기업으로 급성장하는 시기와 맞물린다.
1998년에는 딱 한번 올스타전 역사를 장식한 브랜드가 등장한다. 르노삼성자동의 SM520이다. 이 차는 지금도 거리에서 간간이 만날 수 있을 정도로 평판이 좋았던 차다. 자동차에 대한 남다른 열정을 갖고 있었던 이건희 회장이 닛산의 기술을 도입해 SM5를 출시했고,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그 해 열린 올스타전 MVP 부상으로 SM520이 이름을 올린 것만 봐도 당시 SM5의 기세가 어느 정도였는지를 알 수 있다. 하지만 그 쟁쟁했던 SM5도 IMF 경제위기와 그에 따른 자동차 산업 구조조정의 여파로 올스타전과는 인연을 이어가지 못했다.
프로야구 출범해인 1982년부터 1997년까지 16년 동안의 올스타전은 대우자동차와 현대자동차의 치열한 자존심 싸움터였다. 마케팅에서 누구보다 공격적이었던 대우가 10년 아성을 누리고 있는 사이 착실하게 내공을 다진 현대자동차가 역공을 펼치는 구도였다. 
프로야구 출범 첫해는 대우자동차의 전신인 새한자동차가 ‘맵시’를 부상으로 내놓았고, 1993년부터는 사명을 바꾼 대우자동차가 ‘로얄 프린스’로 미스터올스타를 축하했다. 이 시절에 등장하는 이름이 김용희 전 SK와이번스 감독이다. 김용희 당시 롯데 타자는 프로야구 올드팬들의 기억 속에 존재하는 미스터 올스타 그 자체다. 훤칠한 키에 준수한 외모, 그리고 언제나 반듯한 신사의 이미지는 올스타 중의 올스타로 김용희를 꼽는데 아무도 토를 달지 못하게 했다. 원년 미스터 올스타인 김용희는 1984년 올스타전에서 다시 한번 MVP에 오르며 36년 프로야구 사상 딱 둘밖에 없는 올스타전 MVP 2회 수상자가 됐다. ‘맵시-나’ 자동차에 올라 타 환한 미소를 짓고 있는 김용희의 사진은 당시 야구팬들에겐 ‘꿈을 이룬 우상’이었다.
이 시기 한국 중형 자동차 시장은 대우와 현대차의 격전기였다. 대우가 ‘로얄’ 시리즈로 선공을 날리고 현대가 ‘스텔라’로 잽을 던진 뒤 ‘쏘나타’로 맞받아치는 형국이었다. 70년대 경제 성장의 후광으로 ‘마이카 시대’라는 신조어가 통용 되던 시절, ‘로얄 프린스’와 ‘쏘나타’는 그때나 지금이나 빠듯하게 살아가는 월급쟁이들의 드림카였다. 기업과 명운을 함께 할 수밖에 없는 ‘당대의 드림카’들은 그러나 대우의 몰락과 현대차의 글로벌 성장이라는 운명과 맞물리면서 어떤 차는 추억 속으로, 어떤 차는 대중 속으로 지금도 달리고 있다. /100c@osen.co.kr
[사진] 위에서부터 2014년 미스터 올스타 박병호와 K5, 2017 미스터 올스타 부상 스팅어, 2010년 미스터 올스타 롯데 홍성흔과 K5, 2012년 미스터 올스타 롯데 황재균과 쏘렌토R, 2000년 송지만과 원년 미스터 올스타 김용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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