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영식 보성고 교사, ‘40년-108번뇌’ 근대문학책 전시회를 열다
OSEN 홍윤표 기자
발행 2017.08.16 12: 08

[OSEN=홍윤표 선임기자]오영식(62) 보성고 국어교사가 정년퇴임 기념 근대문학책 전시회를 열고 있다. 이름 하여 ‘보성학교 오영식 선생, 정년퇴임 기념 소장 도서 전시회, 40년-108번뇌’전이다.
전시회의 이름은 40년이 넘는 책 수집 경력과 더불어 40년 가까운 교직생활로 한 평생을 보낸 그의 이력을 상징하면서 책 수집에 따르는 온갖 번뇌(즐거움과 괴로움)를 아우르는 것이다. 공교롭게도 책 전시회에는 육당 최남선의 『백팔번뇌』(1926년)도 출품돼 있다.
서울 인사동 고전문화중심(옛 화봉갤러리)에서 지난 11일부터 시작, 8월 26일까지 열릴 예정인 이 책 전시회는 그동안 오영식 선생이 애면글면 모아온 근대한국문학을 중심으로 한 출판물 3만여 권의 장서 가운데 그 정수라고 할 만한 각 분야의 서적을 추려 265권을 내놓은 것이다. 개화기부터 일제 강점기를 거쳐 해방공간에 이르기까지 근대문학 출판물을 중심으로 한 다양한 분야의 책들이 그의 ‘소굴 같은’ 책 창고를 벗어나 ‘화려한 나들이’에 나섰다. 전시된 책들은 그동안 그의 수집 열정, 피와 땀을 어림짐작하고도 남음이 있는, 보는 이들로 하여금 경이와 찬탄을 보내기에 충분한 희귀, 귀중본들로 꾸려져 있다.

전시는 최초 출판물, 유일본, 사전과 한국학, 개화기 출판물, 주시경과 이해조, 이광수와 최남선, 한국의 잡지, 잡지 속 문학작품, 시집, 소설집, 수필, 희곡, 평론집, 아동문학관련 등 그 양과 질에서 상상을 뛰어넘는다. 여태껏 근대문학 관련 책 전시회가 숱하게 열렸지만 이번 ‘40년-108번뇌’전처럼 뚜렷한 주제와 확실한 방향성을 가진 전시회는 보기 어려웠다.
출품된 책 하나하나가 한국근대문학과 출판의 역사를 한 눈에 더듬어 볼 수 있게 하는 소중한 자료다.
한국근대문학 최초 수필집으로 인정받고 있는 김억의『사상산필(沙上散筆)』(1925년), 유길준의 『서유견문』을 비롯해 ‘유일본으로 추정 되는(그의 표현에 따르면 앞으로 동종본이 나타나 유일본이 아니길 바라는)’ 김명순의『애인의 선물』(1929년?), 잡지『신청년 3호』(1920년)과『신문예 2호』(1924년), 문세영의 『조선어사전』(1938년), 이광수의 『무정』(1934년, 박문서관 7판)과『유정』(1935년), 최남선의 3대 기행(紀行) 저서인『심춘순례』(1926년),『백두산근참기』(1927년), 『금강예찬』(1928년)도 등장한다.
『신한청년』(1920년),『조선시단』(1928년),『보성(普聲』(1925년) 같은 희귀잡지는 물론 잡지 같은 신문, 신문 같은 잡지로 알려져 있는『새한민보』창간호(1947년)과『민중조선』창간호(1945년),『조선스포-쓰』2호(1946년) 등 해방공간에서 발행된 귀중한 잡지들도 볼 수 있다.
문학책 전시회 단골 등장 시집인 김동환의『국경의 밤』(1925년), 『정지용시집』(1935년), 가람 이병기와 쌍벽을 이루었던 월북시인 조운의『조운시조집』(1947년), 윤동주의『하늘과 바람과 시』(1948년) 초판본도 빠지지 않았다. 소설 가운데는 월북 소설가 김남천의 표지 장정이 아름다운『사랑의 수족관』(1949년, 정현웅 장정)이 눈길을 끈다.
우리나라 신문, 잡지연구의 권위자인 정진석 외국어대명예교수 『책 잡지 신문 자료의 수호자-지식의 보물창고를 지키고 탐로를 개척한 삶들』(2015년)이라는 저서를 통해 오영식 선생을 일러 “서지학의 발전을 이끄는 활동가”이자 “40년 넘는 경력의 서지작업 전문가, 수집가, 서지학자”로 지칭하면서 “근대서지학회(2010년 창립. 회장 전경수 전 서울대 교수)가 창립될 때 주도적인 노릇을 했고, 그 후의 운영, 편집실무, 정기학술발표회까지 도맡아 기획하고 추진”하는 인물로 평한 바 있다.
그의 지적대로 오영식 선생은 근대서지학회 창립의 산파역을 맡아 서지전문 반년간지인 『근대서지』(소명출판, 대표 박성모) 편집위원장으로 수집가와 자료 부족에 애를 태우는 연구자들을 연결, 한국근대문학의 실증적인 고찰과 재해석을 앞장서 이끌고 있다.
전시회에 즈음해 조영복 광운대 동북아문화산업학부 교수는 “오영식 선생님이 여느 장서가와 다른 점이 있다면, 한국문학연구자들과 끊임없이 ‘대화’를 나누고 계시다는 점이다. 그 ‘대화’는 원본 자료를 제공하는 것부터, 새로운 자료를 발굴해 관련 연구자들에게 이메일로 ‘퀵배송’하는 것, 자료의 정확한 연대(기)를 알려주는 것, 부정확하고 오류 가득한 자료들이 방치된 채 계속 연구자들에게 인용되는 것들을 바로 잡아주는 것 등에 이른다.”고 상찬했다.
한기형 성균관대 교수는 “우리나라처럼 격동의 시간을 겪은 사회는 뭐든지 제대로 남아있기가 어렵다. 만일 평생 시간과 정력을 쏟아 책을 수집하고 정리해온 분들이 없었다면, 책을 통해 우리 시대의 기원과 그 변화상을 살피기는 더욱 어려웠을 것”이라면서 “이 귀한 일을 해온 많지 않은 분 가운데 한 사람이 바로 오영식 선생이다. ‘40년-108번뇌’의 제목이 전달하는 느낌이 의미심장하니 그 고생과 또 한편의 기쁨이 어떠했을지 대강은 짐작이 간다. 전시된 책은 그 종류와 내용에서 근대 한국이 이룩한 지식문화의 전체상에 육박한다. 제목만 익숙하던 책들의 실물을 대하며 지식의 ‘물질성’을 체험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도 새삼 깨닫게 된다. 한국 근대문화의 정화를 살피는 좋은 기회”를 놓치지 않기를 바랐다.
1988년에 대한출판문화협회가 주는 모범장서가상, 1989년부터 서지관련 개인 서지관련 잡지인『佛巖通信』을 발간 12호까지 냈던 그의 이력도 독특하지만 대단히 폐쇄적인 대개의 수집가들과 달리 그 자신의 수집품은 학문적인 영구를 위해 학자들에게 아낌없이 공개, 제공하고 있다. 숨어 있던 근대문학 자료를 발굴, 왜곡된 한국근, 현대 문학을 바로잡아오고 있는 오영식 선생은 『해방기 간행도서 총목록』(2009, 소명출판)과『김광균문학전집』(2014. 소명출판),『정현웅전집』(2010. 청년사) 등 서지적인 성과물도 냈다.
오영식 선생은 16일, 정년 퇴임식으로 36년간 교편을 잡았던 보성학교를 떠나게 됐다. 화봉문고(회장 여승구)는 같은 날 오영식 선생을 제4회 화봉학술문화상 수상자로 선정, 시상식을 갖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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