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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윤표의 휘뚜루 마뚜루]‘손기정의 일장기 말살의거’ 주역 이길용과 한국야구


이길용(1899~?)은 우리나라 체육기자의 선구자, 개척자였다. 언론인 김을한(1905~1992)은 『그리운 사람들』(1961년 삼중당)이라는 책에서 이길용에 대해 “그의 일생은 이 나라 운동경기사(運動競技史)였다. 파하(波荷. 이길용의 호)야말로 우리나라 최초의 본격 운동 기자였다.”고 회고했다.

지난 8월 25일은 동아일보 기자였던 이길용이 1936년 베를린올림픽 마라톤 우승자인 손기정(1912~2002)의 시상식 사진의 가슴에 붙어있던 일장기를 ‘지워 없애는’ 사건으로 인해 해직 당하고 옥고를 치르게 된 날이었다. 이른바 ‘일장기말살의거’ 81주년을 맞았던 그날, 서울 중구 만리동 손기정 기념공원에서 그의 뜻을 기리기 위한 흉상 제막식이 열렸다.

한국체육기자연맹(회장 정희돈)과 한국체육언론인회(회장 이종세)가 공동으로 추진했던 ‘이길용 기자 흉상 제막식’을 계기로 그가 걸어왔던 길을 되돌아보고 그가 끼친 한국근대체육발달사의 발자취를 더듬어 보는 것은 그 나름대로 뜻 있는 일일 것이다.


김을한은 앞서 언급한 책에서 이르기를 “정구고 축구고 야구고 그가 참관한 기사는 가장 신뢰할 수 있는 것으로 인정되었다. 거의 일생동안 그가 수집한 운동 기록은 우리나라의 가장 귀중한 운동경기 기사가 될 것이므로 해방이 되면서부터 나는 여러 번 파하(이길용)를 보고 그것을 출판하라고 권고하였는데 불행히 6.25 전란을 당하여 그 귀중한 자료의 일부가 없어지고 파하 자신도 납치되고 말았으니 더욱이나 아까운 생각을 금할 수가 없다”고 못내 애석해 했다.

김을한의 글에서 확인한 것처럼 이길용은 한국 근대체육 초창기 운동기자로서 전문성을 추구한 탁월한 기자이자 각종 운동 경기를 나름대로의 방식으로 정리, 체계화를 시도했던, 이를테면 ‘체육사학자“로서의 면모도 드러냈다.

이길용은 올림픽 같은 국제대회부터 정구, 야구, 마라톤, 핸드볼 같은 개별 운동 종목에 이르기까지 그 역사적 기원과 세부적인 운동방법에 이르기까지 심층 탐구를 꾀한 글을 숱하게 발표했다. 그의 글 가운데 특히 야구와 관련한 것들은 한국야구의 도입과 보급, 전개과정에 대한 것들이 많아서 한국야구사의 체계를 세우는데 밑거름이 되고 있다.

이길용의 업적은 일부 종목에 그치지 않고 폭넓게 이루어졌지만 그 가운데 야구는 동아일보 1930년 4월2일부터 4월16일까지 14회에 걸쳐 연재했던 ‘조선야구사’와 『학생』제2권 제6호(1930년 5월, 개벽사)의 ‘야구 보는 법’, ‘파하생(波荷生)’으로 게재됐던 『신동아』창간호(1931년 11월호)의 ‘미국구계진문편편(米國球界珍問片片)’, 같은 호에 실린 ‘야구의 기원(野球의 起源)’ 등이 있다.

이길용은 ‘조선야구사’에서 한국야구의 도입을 1904년으로 명문화했다. 한국야구의 기원은 실증적인 사료가 없어 여전히 논란의 여지가 있지만, 아직까지는 이길용의 ‘1904년설’이 정설로 간주되고 있다. 이길용의 조선야구사가 밑거름이 돼 일본인 오시마 가츠타로(大島 勝太郞)의 『조선야구사(朝鮮野球史)』(1932년)가 나왔고, 해방 후 김창문의 『체육대감』(1957년)의 바탕도 됐다.

‘발로 뛰는 기자’였던 이길용은 1931년 8월에는 직접 일본으로 건너가 고시엔(甲子園) 야구대회 관전기인 ‘갑자원 기행(甲子園紀行)’을 르포 형식으로 동아일보에 연재(1931년 8월 28~9월 13일)하기도 했다.

동아일보사가 일제 강점기인 1931년 11월 1일에 창간했던 『신동아』1934년 3월호에 실려 있는 ‘조선이 걸어 온 스포츠 발달사’ 제하의 8장의 사진은 이길용이 수집한 것으로 꾸몄다. 그 사진들은 ‘1903년 대한축구단의 축구경기 장면’과 ‘융희3년(1909년) 관립한성학교와 황성기독청년회 야구경기 장면’, ‘1912년 조선 최초의 도쿄 원정 야구단 모습’, ‘1926년 월남 이상재의 야구 시구’ 등 한국 체육 개화기의 중요한 자료들로 평가되는 것들이다.

가장 안타까운 노릇은 이길용의 ‘대한체육사’가 무산된 일이다. 이길용은 8.15 민족해방 이후 대한제국시기부터 한국의 체육계를 정리한 ‘대한체육사’ 집필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그 일환으로 대한체육사간행회를 조직했고, 간행회가 ‘기자 30년’이란 제목의 책도 발간할 계획이었다. (1950년 2월 동아일보)

하지만 이길용은 1950년 7월 민족상잔 전쟁 초기에 납북됐고 그가 수집한 방대한 자료는 흩어져 버렸고 그 일부는 김창문에게 넘겨져 1957년 출간된 『체육대감』으로 탈바꿈해 그나마 아쉬움을 달래게 됐다.

김창문이 이길용의 자료 도움을 받아 『체육대감』 편찬했다는 사실은 그 책의 마지막 부분, ‘편찬을 끝마치고’에 들어 있다.

“체육연감의 간행계획은 지금까지 알려지기는 두 번 있었다. 그 하나는 6․25 사변 전, 즉 1949년 10월에 당시 동아일보사에 재임하고 있던 이길용 씨가 대한체육사라는 이름으로 우리나라 운동경기가 수입된 이후의 기록을 상, 하 두 권으로 나누어 간행할 준비에 착수하였던 일이요, 또 하나는 대한체육기자회에서 1949년 4월에 8․15 해방 이후의 기록에 중점을 두어 해방체육연감이라는 이름으로 간행하고자 자료수집에 착수하였던 일이다. 전자는 사변 당시 이길용 씨의 납북으로 성취되지 못하고 후자는 수집된 자료가 사변 중 분실되어 중단되고 말았다.(중략)

1956년 4월에 반년이라는 세월을 두고 해방 후의 기록을 구할 수 있는 데까지 수집해놓고 ‘해방10년 종합 판’이라는 부제 밑에 체육연감을 간행하려할 즈음 6․25사변 당시 이북으로 납치되어간 이길용 씨가 간직했던 1920년 이후 1936년 중반기까지의 운동경기기록을 모아둔 스크랩북을 입수하기에 이르렀다.(중략)

남편이 납치되어간 뒤 마음의 어지러움도 무릅쓰고 상자에 넣어 고이 간직해 두었던 스크랩북을 선뜻 내어준 이길용 씨의 부인 정(鄭) 여사의 호의를 충심으로 감사히 여기며 이 스크랩북이 있으므로 해서 이만한 책이 되어 나왔다.’

『체육대감』은 8․15 민족해방 이후 한국 현대 스포츠 발달사를 채록, 종합해 체계적으로 총 정리한 최초의 책이다.『체육대감』에는 야구와 축구, 농구, 정구 등 구기종목과 육상, 특히 마라톤 관련 사진이 많이 실려 있다. 야구 사진 중에는 1905년 한국 최초 기독청년회(YMCA)와 관립한성고(경기고 전신)의 야구경기 장면, 1922년 조선체육회 주최 전조선야구대회 광경 등 초창기 한국야구관련 희귀한 사진 자료가 들어 있는데 그 모두 이길용이 수집한 것들이었다.

이길용의 자료는 그 후 산산이 흩어져 그 향방을 알 수 없게 됐다. 특히 희귀한 사진자료가 정처 없이 사라진 것은 안타깝기 짝이 없다.

이길용의 한국체육발전에 대한 업적은 크게 두 갈래 볼 수 있다. 우선 야구, 축구, 정구, 육상(마라톤) 등 개별 운동 종목 미시적 정리와 더불어 한국근대운동사의 총체적 이해와 접근이 그것이다. 이길용이 해방 이후 한국체육사 구상 도중 피랍, 성사를 보지 못한 것은 한국스포츠 발달, 발전 과정의 큰 아픔이자 손실일 것이다.

/홍윤표 OSEN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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