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남원의 Oh!수다] '살인자의 기억법' 설경구, 더 이상의 연기는 없다 
OSEN 손남원 기자
발행 2017.09.09 11: 01

진짜 설경구가 맞나 싶었다. 분명 '살인자의 기억법'(이하 '살기법') 포스터에 적힌 주연배우 이름은 설.경.구. 하지만 사진은 늙고 추레한 중늙은이 얼굴이다. 영화 '역도산'(2004)과 '공공의 적2'(2005) 촬영을 위해 불과 두 달 새에 수십kg을 찌우고 뺐던 그 배우, 연기파의 지존 설경구가 치매에 걸린 살인자로 돌아왔다.
지난 해 '불한당'을 들고와 한국영화 누아르 붐에 정점을 찍더니 어느새 스릴러다. 설경구의 필모그래피는 늘 이런 식이다. 한 가지 캐릭터에 안주하지 않고 모험과 도전을 불사하고 있다. 맡은 역할에 빠져들어 한 인생을 산 뒤에 개봉과 함께 떠나보낸다. '박하사탕'(1999)으로 충무로를 들었다놓은 이후로 쭉. 
'살인자의 기억'은 설경구에 의한, 설경구를 위한, 설경구의 영화다. 다소 길었던 침체기는 '불한당' 한재호 역으로 마침표를 찍었다. '살기법'은 제 2의 전성기를 여는 신호탄이다. 알츠하이머에 걸린 연쇄살인범이라니. 좀처럼 이미지를 떠올리기 힘든 병수 역을 설경구는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소화했다. 연기에 관한한, 그 이상의 배우를 찾기는 힘들다. 

설경구는 아날로그다. 그는 맡은 역할의 연기를 위해 분장이나 포토샵, CG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 아니, 온 몸으로 거부한다. "분장은 배우가 완성하는 것"이라는 지론을 갖고 있다. '살기법'에서도 그랬다. 은퇴한 연쇄살인마 병수에 그대로 빠져들었다. 50대 후반 캐릭터에 맞추기 위해 촬영전 스스로 늙어갔다.  운동과 식이요법을 병행하며 극한의 체중 조절을 감행한 결과물이다. 그에겐 새삼스러운 일이 아닐지 몰라도.
평단은 당연히 갈채를 보냈고 관객도 호응하고 있다. 영화관입장권 통합전산망 집계에 따르면 '살기법'은 8일 하루 동안 18만7971명 관객을 동원해 박스오피스 선두를 달렸다. 지난 6일 개봉 이후 3일 연속이다. 같은 날 막을 올린 2위 '그것'(10만명)과의 격차도 크다. 이번 주말을 지나면 100만 돌파는 거뜬할 것이란 전망이다. 극장가 비수기에 낯선 장르를 갖고 이 정도 스코어를 올리기는 쉽지않다.
뻔한 액션과 뻔한 감동, 그리고 뻔한 로맨스에 식상한 관객에게는 '살기법'을 추천한다. 시종일관 긴장의 끈을 늦추지 않는 스릴 속에 진한 부성애를 덧입혀 보는 재미를 배가시킨다. 그리고 그 중심에 설경구가 있다. /mcgwire@osen.co.kr
[사진] 쇼박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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