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韓농구, 토가시 유키 같은 가드는 왜 안 나올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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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SEN=마카오, 서정환 기자] 토가시 유키(24·치바)처럼 개인기가 좋고 창의적인 패스를 하는 가드는 더는 볼 수 없을까.

추일승 감독이 이끄는 고양 오리온은 23일 마카오 스튜디오 시티에서 벌어진 ‘2017 슈퍼에잇’ 4강전에서 치바 제츠(일본)에게 68-83으로 패했다. 오리온은 24일 류큐 골든킹스와 3,4위전을 치르게 됐다. 결승전은 치바 대 저장(중국)의 대결로 24일 열린다.

▲ 오리온 가드진을 농락한 토가시

일본대표팀 주전가드 토가시에게 완전히 당했다고 봐도 과언이 아닌 경기였다. 오리온은 초반 발이 빠르고 체력이 좋은 조효현을 붙여 토가시를 어느 정도 막는데 성공했다. 토가시는 1쿼터 7득점을 했지만, 어시스트는 하나였다. 오리온이 1쿼터를 20-18로 리드하면서 주도권을 잡았다.

하지만 2쿼터 토가시가 각성하면서 경기내용이 확 달라졌다. 토가시는 ‘붙으면 파고 떨어지면 던지는’ 농구의 정석을 선보였다. 오리온 중 가장 발이 빠른 조효현도 토가시의 현란한 방향전환에 속아 갈피를 잡기 어려웠다. 토가시는 직접 드리블을 치다 갑자기 올라가 던지는 스탑&점퍼가 굉장히 빠르고 정확했다. 이 슛으로 3점슛까지 자유자재로 구사했다. 한국 선수들이 이렇게 슛을 던지면 감독에게 욕을 먹기 딱 좋다.

돌파도 막기 어려웠다. 흑인선수와 비슷한 리듬의 드리블 타이밍을 재기 힘든데다 스피드가 워낙 빨랐다. 토가시의 키가 167cm에 불과해 180cm대 가드들의 어깨밖에 오지 않는다. 덕분에 토가시는 상대수비의 시야에서 갑자기 사라지는 듯 한 효과를 얻고 있다. 그야말로 작은 선수가 유리한 역발상이다.

돌파에 성공한 토가시는 센터가 도움수비를 들어오면 ‘플로터’ 일명 풋내기슛으로 상대를 농락했다. 높게 던져 아름다운 포물선을 그린 공이 림에 빨려들자 마카오 관중들이 탄성을 내질렀다.

오리온은 김진유를 붙여 토가시를 거칠게 다뤘다. 계속 몸을 맞대고 파울까지 불사했다. 하지만 토가시를 막기 어려웠다. 자신에게 수비가 붙자 토가시는 3쿼터 패스에 주력했다. 토가시가 내준 패스가 족족 3점슛으로 연결됐다. 치바팀 전체가 살아났다. 드리블로 상대를 현혹한 뒤 센터에게 내주는 비하인드 패스는 그야말로 예술이었다. 이날 치바는 3점슛 33개를 시도해 15개를 꽂으면서 성공률 45%로 외곽에서 오리온(3점슛 9/28, 32%)을 압도했다. 토가시는 3쿼터까지 25점을 올렸다. 

경기 후 치바의 캘빈 올드햄 코치는 “토가시가 전반에는 부진했지만, 후반에는 리듬을 찾았다. 아주 잘했다. 포인트가드로서 막기 어려운 선수다. 감독이 주문하지 않아도 동료들을 위해 기회를 만드는 선수다. 돌파도 잘하고, 외곽슛도 좋다. 결승전에서 토가시가 더블팀을 당해도 큰 걱정은 하지 않는다”고 평했다.

동료 이시이 코스케는 “토가시는 같이 뛰기 좋은 선수다. 슛, 패스, 드라이브, 볼핸들링 등 재능이 넘치는 선수다. 무엇보다 자기만 잘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선수들을 좋게 만들어 팀 전체가 살아나게 하는 선수”라고 극찬했다.

▲ 그 많던 천재가드들, 다 어디로 사라졌나

한국농구도 과거 강동희, 이상민, 김승현처럼 팀 전체를 살려주면서 창의적인 패스를 하는 가드들이 많았다. 하지만 언제서부턴가 계보가 끊어지고 말았다. 양동근처럼 체력과 체격을 앞세워 끈질기게 수비하고, 패턴을 중심으로 공격을 푸는 가드들이 대세를 이루게 됐다. 패스 한 방으로 경기를 좌지우지 할 수 있는 가드는 더 이상 나오지 않고 있다.

이상민 삼성 감독은 “가드는 타고나야 하는 부분이 있다. 가르쳐서 될 수 없는 부분”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토가시 유키 역시 타고난 재능도 있지만, 노력한 부분이 더해져 좋은 가드가 됐다는 것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특히 그는 고교시절 미국유학길에 오르면서 개인기 연마에 치중했다. 167cm로 중학생보다 작은 신장의 동양인으로 흑인선수들이 즐비한 D리그에 진출하기까지 남모를 노력이 엄청났다.

토가시는 실전에서도 플로터를 자유자재로 구사할 정도로 자기 기술로 만들었다. 드리블과 패스 역시 마찬가지다. 장신숲 사이를 헤쳐 나갈 수 있는 본인만의 노하우를 터득했다. 겉멋이 든 것이 아니라 수많은 시행착오를 통해 만들어낸 자신의 기술이라는 것.

한국농구는 선수의 개인기보다 팀의 조직력을 중시하는 경향이 강하다. 천기범 역시 부산중앙고 시절에는 ‘천재가드’ 소리를 들었다. 2012년 일본에서 열린 NBA캠프서 천기범은 토가시 유키보다도 관계자들의 주목을 더 받았다. 하지만 이후 두 선수의 격차는 벌어진 것이 사실이다. 연세대시절의 천기범은 고교시절처럼 북 치고 장구 칠 필요는 없었다. 각 포지션에서 국내최강의 멤버들이 있었기 때문. 하지만 천기범이 고교시절의 창의성을 이어가 꽃피우지 못한 것은 아쉬운 부분이다. 최창진도 마찬가지다.

천기범은 “토가시 선수는 재능이 뛰어나다. 일본 선수들은 장신을 앞에 두고 플로터를 던지는 스타일이다. 한국 가드들은 자기가 던지기보다 동료들을 살려주고 한다. 그냥 다른 유형의 가드라고 생각한다”고 답했다.

지도자들의 생각은 또 다르다. A구단 프로감독은 “토가시 유키 같은 선수가 우리 팀에 있다면, 그 선수에게 어느 정도 맡기고, 그 선수를 중심으로 전술을 짤 수 있다. 하지만 국내에 그만한 개인기와 패스를 가진 선수가 없다”고 지적했다.

과거 송도중고에서 좋은 가드들이 많이 나왔다. 故전규삼 옹의 특별한 프로그램 덕분이었다. 지금 스킬트레이닝의 시초라고 볼 수 있다. 덕분에 송도고 출신들은 개인기가 좋고, 창의적인 플레이를 하는 가드들이 많았다. 하지만 당장의 성적을 중시하는 현재 아마추어 농구풍토에서 이렇게 오랜 시간 공을 들여 선수를 키워내기란 쉽지 않다. 한국농구의 딜레마다.

그나마 최근 스킬트레이닝이 강조돼 프로선수는 물론 아마선수들도 사비를 들여가며 지도를 받고 있다. 개인기의 필요성이 강조되는 분위기는 긍정적이지만, 출발이 너무 늦었다. 20년 동안 영어 한마디도 안하다가 대학에서 알파벳부터 배우는 격이다. 개인기 연마도 언어처럼 조기교육이 중요하다는 말이다.

겨우 167cm의 신장을 가진 토가시 유키에게 한국농구는 왜 잇따라 무너졌을까. 선수를 대하고 키우는 근본적인 마인드부터 바뀌어야 한국농구도 다시 그런 선수를 배출할 수 있다. / jasonseo34@ose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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