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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구여왕' 박종분, 딸 김가영 DNA 절반은 나의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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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SEN=인천, 강필주 기자] 지난 10월말 당구 아마추어 최강자를 가리는 '2017 벤투스컵 코리아 당구왕 왕중왕전' 4구 여자부 대회에서 2년 연속 우승을 차지한 출전자가 관심을 끌었다. 63세라는 나이도 나이였지만 '김가영 어머니'라는 소개가 흥미로웠다.

김가영(34)이 누군가. 초등학교 4학년 때 큐를 잡은 김가영은 '작은마녀'라 불리며 세계적인 톱 클래스 반열에 오른 여성 포켓볼 선수다. 세계여자포켓나인볼 챔피언십 2연패(2004년과 2006년)를 달성한 첫 아시아인이기도 했다.

특히 2006년 도하아시안게임에 이어 2010년 광저우 대회에서도 은메달을 목에 건 김가영은 지금도 꾸준하게 미국여자프로당구(WPBA) 투어 우승 경력을 쌓아가고 있다. 2009년 홍콩 동아시안게임에서는 금메달을 차지하기도 했다.

그런 그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어머니이면서, 김가영의 어머니가 아닌 '선수 박종분'으로 살며 대회 챔피언 자리까지 오를 수 있었던 비결이 궁금했다. OSEN은 지난 11일 인천에서 박종분 씨를 만난 '모전여전'을 몸소 증명한 이야기를 들어봤다.

▲ 결혼과 동시에 시작된 운명

김가영 가족은 이미 당구가족으로 유명하다. 4구 기준으로 아버지 김용기(67) 씨가 2000점, 박종분 씨가 300점이다. 김가영은 500, 김가영의 동생 김민정 씨가 200점. 모두 3000점의 구력을 지닌 대단한 가족이다.

"1980년 결혼했고 다음해 바로 당구장을 시작했다. 오래 당구장을 하면서 자연스럽게 당구와 인연을 맺게 됐다"는 박 씨는 "남녀가 할 일을 구분해서는 안 된다는 남편의 소신에 따라 큐를 잡았다"고 말했다. 혼자 오는 손님들을 상대해야 하는 업주로서 어쩔 수 없는 운명이었다.

박 씨는 "가영이가 태어났지만 봐줄 사람이 없어 항상 당구장에서 함께 했다. 아예 가영이를 등에 업은 채 손님들과 대적했다. 계속 치다보니 조금씩 실력이 늘었다. 가영이가 등에 없으면 중심이 잡히지 않아 당구가 잘 안 될 때도 있었다"고 웃으며 회상에 잠기기도 했다.

▲ 배구선수 꿈꿨던 당구장 주인

유도선수 출신인 남편 김용기 씨는 "나는 운동신경이 없다. 운동신경은 아내가 더 좋다. 엄마 쪽 피를 물려 받은 건 가영이가 아니라 둘째 민정이다. 당구는 승부욕과 멘탈이 중요한 스포츠"라고 설명했다. 옆에 있던 김가영도 "맞다. 나는 엄마의 운동신경을 많이 받지 못했다. 온통 아빠의 관찰력·승부욕을 물려받았다"고 맞짱구 쳤다.

박 씨도 못이기는 척 인정했다. "나의 어릴 적 꿈은 배구선수였다. 곧잘 했다. 키만 더 컸어도 그렇게 됐을지 모르겠다"고 수줍게 웃어보인 그는 "가영이는 어릴 때부터 끝장을 보는 성격이었다. 하나라도 안 되면 혼자 될 때까지 계속 연습하곤 했다. 대신 훌라후프, 공기놀이 등 잡기는 내가 다 가르쳤다"고 회상했다.

▲ 21년째 300점

당구장 주인이 되면 '짜다'는 소리를 듣기 마련. 박 씨도 마찬가지다. "당구장 수입으로 집안을 꾸려야 했다. 그래서 손님과의 게임비 내기에서 지지 않으려고 승부에 집착했다. 남편에게 지지 않는 비법을 전수받기도 했다"는 박 씨는 "차츰 자신감이 붙자 재미도 있고 더 잘하고 싶다는 욕심도 생겼다"고 말했다.

박 씨의 현재 4구 실력은 21년째 제자리 걸음인 300점이다. 김용기 씨는 "아내는 기술적으로 한 고비만 넘기면 더 잘할 수 있다. 그런데 그걸 안한다"면서 "승부보다는 주위 사람과 어울리는 것을 더 좋아한다. 기술을 가르쳐도 막상 경기에 들어가면 자기 방식만 고집한다"고 허탈하게 웃었다.

박 씨는 이 말에 일부 인정하면서도 억울하다며 하소연한다. "모아치는 것이 되지 않아 함부로 점수를 올리지 못하겠다"는 그는 "사람들과 어울리며 즐겁게 당구를 치려고 한다. 그래도 마음 저 깊은 곳에서는 승부욕이 불타오른다. 게임비를 받아야 하니까"라며 현실적인 이야기로 웃음을 만들어내기도 했다.

▲ 대회는 즐기는 것

세계적인 당구선수 김가영이 보는 선수 박종분은 어떨까. 김가영은 "좀더 욕심을 가졌으면 한다. 한두 단계만 넘어서면 기량적으로 프로선수급 실력이 될 텐데 그걸 안한다"면서도 "하지만 긍정적인 마인드는 정말 배우고 싶다. 어떤 상황에서도 항상 밝다. 엄마를 보면 나 역시 위로 받는다. 어떨 땐 원인 분석보다 휴식이 필요할 때가 있다"고 평가했다.

김가영은 엄마 박종분에 대한 생각도 밝혔다 김가영은 "이렇게 보고 있으면 언제나 좋다. 우승 여부를 떠나 나이가 있는데도 불구하고 젊은 선수들과 당당하게 붙어 이기는 모습을 보면 자랑스럽기까지 하다"면서 "엄마가 당구 전도사가 되고 있는 것 같다. 이렇게 나이가 들어도 할 수 있는 운동이란 것을 몸소 보여주고 싶지 않나"라고 진지한 표정을 지었다.

남편 김 씨는 "2005년부터 2013년까지 9년 동안 당구장을 접고 다른 사업을 한 적이 있었다. 하지만 아내가 워낙 당구를 좋아해서 다시 당구장을 하기로 했다. 당구를 통해 사람들과 어울리고 즐기는 걸 보면서 당구장을 다시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털어놓기도 했다.

▲ 당구는 생활 속에서 즐기는 것

작년과 올해 여자 아마추어로는 최고 자리에 오른 박 씨의 앞으로 목표는 무엇일까. 그는 가끔 자신을 알아보는 팬들로부터 악수 요청을 받을 정도로 얼굴도 제법 알려진 상태다. 그런 자신이 쑥스럽고 신기하기도 하지만 나쁘지 않은 경험으로 받아들이고 있는 그다.

김가영은 "좀더 욕심을 가졌으면 좋겠다. 조금 더 연습해서 선수로 등록해 활동하는 것도 보고 싶다"고 엄마에게 살짝 바람(?)을 넣었다. 올해 자신의 이름으로 아카데미를 오픈한 김가영은 박 씨로부터 영감을 얻었다. 자신의 어머니처럼 오래 즐길 수 있고 남녀노소 누구나 함께 경쟁할 수 있는 스포츠가 당구라는 점을 알리고 싶어한 것이다.

정작 박 씨는 "거창한 목표는 없다. 당구가 하루하루 즐겁고 좋은 만큼 이 순간을 즐기면서 사는 것이 목표라면 목표다. 대회가 있으면 또 나가겠다"면서도 "그래도 손주가 있으면 봐줘야 하니까 준비하고 있다. 손주와 함께 당구를 치고 싶기도 하다. 강요하고 싶진 않지만 더 나이 먹기 전에"라며 아직 솔로로 남아있는 김가영을 슬쩍 쳐다보며 어느새 엄마 박종분으로 돌아왔다.

박 씨는 요즘도 가끔 "당구 안해"를 외친다. 남편이 요구하는 과도한 눈높이에 저항(?)하다보면 투정이 나올 수밖에 없다. 그렇지만 이내 "이것만 하면 더 잘할 수 있다"는 생각에 다시 큐를 잡는다. "아직도 기술을 배우면 힘든 줄 모르고 친다"는 박 씨의 말이 왜 김가영의 어머니인지 느낄 수 있게 해줬다. /letmeout@osen.co.kr

[사진] 인천=박재만 기자 /pjmpp@ose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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