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선호의 야큐이야기]나고야 태양 뜨게 만든 호시노의 충고
OSEN 이선호 기자
발행 2018.01.06 12: 45

일본야구의 스타 호시노 센이치(71) 라쿠텐 부회장이 별세했다.
일본 언론들은 호시노 부회장이 지난 4일 새벽 암투병 끝에 사망했다고 6일 일제히 보도했다. 호시노 부회장은 췌장암 투병 중이었다. 작년 가족과 하와이 여행을 앞두고 갑자기 병세가 악화됐고 결국 병상에서 일어나지 못하고 눈을 감았다. 
호시노 부회장의 별세소식이 알려지자 일본 야구계는 애도 분위기에 휩싸였다. 고 호시노 부회장은  반요미우리파였지만 나가시마 시게요 요미우리 명예 종신감독, 오 사다하루 소프트뱅크 호크스 회장, 노무라 가쓰야 전 라쿠텐 감독과 함께 일본야구계에 상당한 영향력이 끼쳐왔던 인물이다. 

주니치의 에이스 출신으로 현역시절 근성있는 투구로 '불타는 남자'로 불리웠다. 특히 요미우리를 만나면 투지를 불태웠다. 요미우리가 자신을 지명하지 않는 점에 대한 반항심이었다. 실제로 146승 가운데 요미우리를 상대로 35승을 거두기도 했다. 
지난 1987년 주니치의 지휘봉을 잡고 철권 체제를 구축했다. 특히 마음에 들지 않는 플레이를 하는 선수에게는 더그아웃에서 주먹을 휘두르기도 했다. 그러면서도 아끼는 선수에게는 깊은 애정을 보여주었다. 사랑과 냉정함을 갖춘 투장으로 잘 알려져있다. 주니치를 떠나 한신타이거즈의 우승 숙원을 풀어주었고 라쿠텐 골든이글스를 지휘했다. 통산 4번의 리그 우승을 이끌었다. 
고 호시노 감독은 한국과 인연이 깊었다. 특히 선동렬 대표팀 감독과는 애정이 넘치는 사제지간으로 잘 알려져있다. 지난 1996년 선동렬 감독(당시 해태)의 주니치 영입을 주도했다. 첫 해는 일본야구에 적응을 못해 부진에 빠지자 뼈있는 충고로 부활을 시키기도 했다. 
당시 선 감독은 첫 해 33경기에 출전해 5승1패3세이브, 평균자책점 5.50의 낙제 성적표를 받았다. 국보투수의 자존심이 무너졌다. 한국야구를 대표해 반드시 성적을 올려야한다는 부담감이 컸다. 일본진출 직후 스프링캠프에서 훈련도중 모친의 별세로 중도 귀국하면서 훈련 부족도 이유였다.
첫 시즌이 끝나자 호시노 감독은 선 감독을 불러 "한국을 대표한다는 부담감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충고했다. 자극을 받은 선 감독은 루키들과 함께 가을 마무리캠프에 참가했다. 1997년에는 38세이브, 평균자책점 1.28의 수호신으로 화려하게 부활했고 1999년까지 98세이브를 거두었다.   
일본언론들은 나고야의 태양이라는 별칭을 붙여주었다. 선 감독은 "그때 호시노 감독님의 말이 나에게 큰 힘이 되었고 부담감을 덜 수 있었다"고 밝히기도 했다. 특히 1999년 센트럴리그 우승 당시 호시노 감독은 선 감독을 헹가래 투수로 지목했다. 
일본야구에서 헹가래 투수는 우승 과정에서 가장 큰 공을 세운 선수를 직접 감독이 지목한다. 우승하면 동료선수들이 마운드에서 헹가래를 해준다. 그만큼 호시노 감독은 선 감독에 대한 애정이 각별했다. 선 감독이 1999시즌을 마치고 요미우리와 메이저리그의 러브콜을 뿌리치고 은퇴한 이유도 호시노 감독에 대한 존경심이 컸기 때문이었다.
은퇴후에도 꾸준히 좋은 관계를 이어왔다. 선 감독이 KIA 사령탑 시절에는 스프링캠프지로 오키나와 킨베이스볼스타디움을 이용하도록 도움을 주기도 했다. 작년 2월 WBC 전지훈련에서는 호시노 감독을 먼발치에서 보고 달려가 인사하는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다. /sunny@ose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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