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익래의 위즈랜드] '국적 비난'도 의연한 주권, 그가 꿈꾸는 태극마크
OSEN 최익래 기자
발행 2018.01.21 15: 01

신데렐라의 등장이었다.
2014년 kt는 신생팀 특별 지명으로 청주고등학교 주권의 이름을 불렀다. 고교 3년 통산 54경기서 23승15패, 평균자책점 2.25로 '에이스'의 면모를 뽐냈기에 당연했다. 첫 시즌 15경기 등판에 그쳤던 주권은 2016년 완전히 날아올랐다. 28경기서 6승8패, 평균자책점 5.10. 기록 이면의 임팩트가 강했다. 주권은 5월27일 수원 넥센전서 9이닝 4피안타 무사사구 5탈삼진 무실점 완봉승을 거뒀다. 신생팀 kt 역사상 첫 완봉승. 거기에 KBO리그 역사상 데뷔 첫 승이 무사사구 완봉승인 건 주권이 처음이었다. 데뷔 첫 승이 완봉승인 것도 토종 선수로는 이명우(2004년 롯데) 이후 12년만이었다. 화려한 등장이었다.
2017년은 아쉬움이 짙었다. 초반, 선발 로테이션 한축을 맡았던 그는 4월 5경기서 평균자책점 11.40에 그쳤다. 이후 선발과 불펜을 오갔고, 39경기 평균자책점 6.61에 머물렀다.

# "버두치 리스트? WBC? 부진은 내 탓"
결과가 좋지 않자 원인에 대한 분석과 추측이 쏟아졌다. 가장 많이 나온 이야기는 '버두치 리스트'였다. 만 25세 이하 투수가 전년도에 비해 30이닝 이상 더 던지면 부상 혹은 부진이 찾아올 가능성이 높다는 이론. 2015년 24⅓이닝 투구에 그쳤던 주권은 2016년 134이닝을 던졌다. 버두치 리스트의 경보에 들어맞는 투수였다.
또 다른 분석은 2017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출전. 중국 출신 주권은 초등학생 때 귀화했다. 그러나 WBC 규정상 중국 대표 출전도 가능했다. 주권은 1경기에 등판해 3이닝 2실점을 기록했다. 가벼운 투구였지만 스프링캠프에 제대로 참여하지 못한 게 아니냐는 의혹이 따랐다. 시범경기 벌투 논란도 있었다. 주권은 지난해 3월23일 넥센전서 4이닝 15실점을 기록했다. KBO 시범경기 1경기 최다 실점. 92구를 던지며 벌투 논란이 일었다.
갖가지 추측. 그러나 주권은 모든 화살을 자신에게 돌렸다. 부진 이유를 묻자 그는 "거만했다"고 딱 잘라 말했다. 그는 "2016년 성적이 좀 괜찮다고 우쭐대는 게 있었다. 까불대는 성격이라 더 그랬던 것 같다"고 자책했다. 버두치 리스트나 WBC, 시범경기 벌투는 원인이 아니라고 선을 그었다. 주권은 "스프링캠프 준비를 제대로 못했다. 2015년에 보여준 게 없으니 2016년 봄에 100%를 쏟아부었다. 그러나 2017년 봄은 뭔가 아꼈던 것 같다. 준비 시작은 늦었는데, WBC 때문에 제일 먼저 빠졌다. 결국 내 탓이다"라고 강조했다.
거기에 각종 의혹이 이어지며 멘탈까지 흔들렸다. 그는 "원래 주위 얘기에 신경 안 쓰는 편인데, 너무 의혹이 많았다. 어느샌가 나조차 '정말 그런 건가'라고 생각했다. 생각이 더 많아졌고 슬럼프가 찾아왔다. 그 얘기를 들었으면 안 됐다"고 후회했다.
# 김진욱 감독 향한 미안함과 고마움
그러나 김진욱 감독은 '토종 프랜차이즈' 주권 향한 기대를 거두지 않았다. 10월 3일 KIA와 정규시즌 홈 최종전. 김진욱 감독은 2주 전부터 선발투수로 주권을 예고했다. 한참 빠른 행보였다. 당시 김 감독은 "상징성이 있는 경기다. (주)권이가 부진했지만 결국 2018년 선발진 축을 맡아줘야 하는 선수다"라고 이유를 설명했다.
주권에게 2017년은 '김진욱 감독에게 고마움과 죄송한 해'였다. 그는 "감독님은 내가 아무리 부진해도 어떤 질타나 꾸중을 안 하셨다. 싫은 소리 하시는 것도 아닌데 내가 괜히 눈치를 봤다"라고 돌아봤다. 시즌 최종전 선발은 주권에게 '감사함'이었다. 그는 "기대를 해주셨는데 최종전까지 부진했다"라며 "그 감사함이 동기부여가 많이 됐다. 올해는 정말 보여드리겠다"고 다짐했다.
주권도 '지풍 매직'의 수혜를 입기 위해 구슬땀을 흘리고 있다. kt는 지난 시즌 종료 후 이지풍 트레이닝 코치를 영입했다. KBO리그에 '벌크업 열풍'을 일으킨 장본인. 주권은 이지풍 코치 주도 아래 웨이트 트레이닝을 진행 중이다. 2kg 이상 근육이 늘었다. 주권은 "캐치볼을 하는데 느낌 괜찮다. 힘이 확실히 붙는 것 같다"라며 "팔꿈치와 어깨에는 이상이 전혀 없다. 이제 2016년의 봄처럼 잃을 게 없다. 다시 모든 걸 쏟아붓겠다"고 다짐했다.
# 비난에도 의연한 주권, 태극마크를 꿈꾼다
다시 WBC 얘기. 존 맥라렌 중국 대표팀 감독은 2016년 부임 직후부터 주권에게 러브콜을 보냈다. 주권은 이를 한사코 고사했다. 표면적인 이유는 2017시즌 준비에 차질을 빚을까 염려해서였다. '중국 대표팀 경기에 뛴다고 도움될 게 있을까'하는 생각도 있었다.
주권이 망설였던 속내는 팬들의 여론이었다. 중국 지린성 출신 주권은 초등학교 4학년 때인 2005년 어머니와 함께 한국에 왔다. 귀화하며 명백히 한국인이 됐다. 야구의 룰조차 모르던 주권은 남들보다 늦은 실력에도 두각을 드러냈고, KBO리그 귀화 선수 1호가 됐다. 일부 몰지각한 팬들은 여전히 주권의 국적을 까내린다. WBC 대표팀에서 중국 대표팀 유니폼을 입고 나서며 불이 붙었다.
하지만 주권은 크게 동요하지 않는다. 그는 "귀화 관련해 안 좋은 얘기는 어렸을 때 다 겪었다. 큰 자극은 없다. 그러려니 한다"며 "오히려 한국 처음 왔을 때 걱정이 많았는데, 비하는커녕 더 다가와줬다. 주변 사람들이 다 착했다"고 회상했다.
중국 대표팀 출전은 태극마크에 대한 열정을 깨웠다. 주권은 "국제 무대는 확실히 팀에서 던지는 것과 달랐다"라며 "이제는 태극마크를 달고 싶다. 비록 아직은 내 실력이 부족하지만, 하루빨리 성장해 한국 대표팀에서 뛰고 싶다. 중국 대표팀 때와는 느낌이 또 다를 것 같다"는 소망을 밝혔다.
주권은 인터뷰 말미, kt 팬들 향한 진심을 털어놨다. "기대를 많이 해주셨던 걸 알고 있다. 그래서 더 죄송하다. 여전히 격려해주시는 분도, 아쉬운 목소리를 내주시는 분도 모두 감사드린다. 2017년의 실망을 두 번 다시 안겨드리지 않겠다. 꾸준한 모습 보여드리겠다". 거만함을 뉘우치고 독기를 품은 주권. kt와 팬들은 2018년 그의 재도약을 기대하고 있다. /kt 담당 기자 ing@ose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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