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익래의 위즈랜드] 故 마르테 1주기, kt는 여전히 그를 기리는 중
OSEN 최익래 기자
발행 2018.01.22 13: 45

2017년 1월 22일. 비보가 날아들었다. kt에서 2년간 뛰었던 앤디 마르테가 사망했다는 소식이었다.
믿을 수 없는 이야기였다. 비보 몇 달 전까지만 해도 kt 유니폼을 입고 수원 kt위즈파크를 누볐던 그였기 때문이다.
마르테는 1983년생 우투우타 내야수로 지난 2000년 애틀랜타 브레이브스와 계약하며 유망주로 주목받았다. 2005년 메이저리그 무대에 데뷔했으나 기대만큼 성장하진 못했다. 마이너리그 생활을 이어가던 그는 2015년 kt 유니폼을 입는다. KBO리그 첫 해, 마르테는 115경기 타율 3할4푼8리 148안타 20홈런 89타점으로 멩타를 휘두르며 재계약에 성공했다.

그러나 두 번째 시즌이었던 지난해 허리 부상 때문에 91경기 타율 2할6푼5리 86안타 22홈런 74타점으로 고전했다. 허리 디스크 수술로 8월 중순 시즌을 마무리했고, kt와 재계약에는 실패했다. 당시 kt 측은 "부상만 아니었으면 우리와 오래 함께 할 선수였다"며 아쉬워했다. 팀을 떠났지만 구단에 감사 편지를 통해 동료 선수들과 팬들에게 작별을 고할 만큼 성실하고 진중한 자세로 신뢰받는 선수였다.
마르테는 고국인 도미니카공화국에서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났다. kt에서는 황망함을 감추지 못하며 자체적으로 분향소를 마련했다. 2017시즌 홈 개막전서는 마르테를 추모하는 드론 시구를 진행하기도 했다. 그만큼 마르테는 외국인 타자 이상의 존재였다.
kt 선수단은 여전히 그를 기억하고 있었다. 신명철 코치는 kt 1군 진입 첫해 주장을 맡았다. kt 첫 외국인 타자였던 마르테를 선명히 기억할 수밖에 없다. 신명철 코치는 "특별했던 친구"로 그를 기억했다. 신 코치는 "창단 첫 해 주장을 맡아 여러 모로 신경쓸 일이 많았다. 먼저 다가와 격려를 해줬다. 팀을 이끄는 데 많은 도움 준 친구다"라며 "일반적인 외국인 선수와 달랐다. 개인보다 팀을 생각하고, 늘 동료와 함께하려고 애썼다"고 밝혔다.
코치가 된 시점에서는 마르테가 더욱 그립다. 신명철 코치는 "마르테 같은 인성과 실력을 가진 선수들만 있다면 코치할 '맛'이 날 것 같다"고 설명했다. 이어 그는 "아무쪼록 마르테도 우리와 좋은 추억을 기억할 거로 믿는다. 하늘나라에서도 우리와 함께해주길 바란다"고 밝혔다.
마르테와 함께 뛴 시절 '새내기'였던 내야수 심우준은 "물심양면으로 도와줬다. 장비도 많이 챙겨준 형이었다"라며 "생각만 해도 슬프다"고 입을 열었다. 심지어 심우준은 꿈에서도 마르테를 만났다. 심우준은 "사고 직후 마르테 생각을 굉장히 많이 했다. 꿈에도 두 번 정도 나왔다. 나도 모르는새 많이 의지했던 것 같다"고 안타까움을 드러냈다.
'현 캡틴' 박경수는 "단순히 외인을 떠나 그만한 선수가 없었다"라며 마르테를 추억했다. 그는 "원정 경기 가면 따로 식사도 많이 했다. 외국인 선수가 그렇게 먼저 다가오는 경우는 잦지 않다. 단점이 없는 친구였다"라며 "솔직히 말하면 아직도 마르테가 떠난 사실이 실감나진 않는다"고 아쉬워했다.
박경수는 구단에 한 가지 제안을 했다. 마르테 유가족들을 경기장에 초대하자는 것. 박경수는 "마르테의 아내와 아이들이 kt 야구를 굉장히 좋아했다. 선수들도 마르테의 가족들을 그리워하고 있다. 한 번쯤 모셔서 시구라도 한다면 의미가 클 것 같다"라며 "여러가지가 맞아떨어져야 하는 일이다. 내 제안을 구단에서도 괜찮다고 여겼다. 스프링캠프 끝나면 함께 추진할 생각이다"라고 밝혔다.
10년 이상 kt 스포츠단에서 근무하며 수많은 외인들을 본 kt 관계자는 "완벽히 한국인이었다. 구단에서 뭔가를 요청하면 먼저 '더 필요한 거 없나'고 되물었던 선수다. 10년간 만난 외국인 선수 중 단연 최고였다"며 애도를 표했다.
마르테는 kt가 1군에 자리매김하는 데 성적으로, 인성으로 크게 기여했다. 비록 그는 kt 곁을 떠났지만 남은 이들은 마르테를 여전히 추억 중이다. /kt 담당 기자 ing@ose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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