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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년 3인자’였던 두경민, 프로농구 최정상에 서다

[OSEN=서정환 기자] ‘대기만성’이다. 결국 가장 큰 그릇이 된 선수는 두경민이었다.

‘2017-2018 정관장 프로농구’ 시상식이 14일 그랜드 인터컨티넨탈 파르나스 서울에서 개최됐다. 6개월간의 대장정을 마친 10개 구단 선수들과 코칭스태프가 오랜만에 한 자리에 모였다.

가장 관심을 모은 국내선수 MVP는 DB를 정규리그 우승으로 이끈 두경민이 받았다. 그는 기자단투표 총 108표 중 84표의 압도적 지지로 오세근(20표)을 따돌리고 생애 첫 수상의 영광을 안았다.

두경민은 아마추어시절에도 늦게 빛을 본 케이스다. 양정고 시절 두경민의 이름을 기억하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정말 성이 특이해서 이름만 아는 정도였다. 가끔 미친 듯이 터지지만 연고대가 주목할 만한 전국구 유망주는 아니었다. 경희대 저학년 때도 비슷했다. 스피드와 운동능력은 뛰어나지만 경기를 읽는 눈은 거의 없었다. 동기인 김종규와 김민구가 대부분의 스포트라이트를 가져갔다.

나중에 두경민의 기량이 성장하면서 이른바 ‘빅3’라는 별명으로 불리기 시작했다. 경희대를 대학최강으로 이끌면서 자연스럽게 두경민에게도 점차 시선이 쏠리기 시작했다. 김민구가 리딩을 도맡으면서 두경민은 특유의 돌파능력과 3점슛으로 정상급가드 반열에 올라섰다. 골밑은 김종규가 맹폭했다. 이른바 무적 경희대의 탄생이었다.

프로에서 경희대 ‘빅3’를 잡기 위해 일부러 패배하는 현상까지 발생했다. 당시 한선교 총재가 나서 시즌 중 드래프트방식을 차기시즌부터 바꾸는 초유의 사태까지 벌어졌다. 그만큼 ‘빅3’는 10개 구단 누구나 탐을 내는 선수들이었다. 분명한 것은 두경민은 어쨌거나 ‘빅3’ 중에서 가치가 가장 떨어졌다.

2013 드래프트서 예상대로 김종규와 김민구, 두경민이 나란히 전체 1~3순위를 차지했다. 고의패배를 하지 않고 6강에 진출했던 삼성은 1.5% 확률로 박재현을 잡아 쾌재를 불렀다. 반면 5순위로 이재도를 지명한 kt 전창진 감독은 표정이 썩 밝지 않았다. 이재도도 물론 좋은 선수지만, ‘빅3’를 놓친 타격이 얼마나 큰지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였다.

프로 첫 시즌 김종규와 김민구는 신인상을 두고 치열하게 다퉜다. 김종규는 평균 10.7점, 5.9리바운드, 0.9블록슛을 기록하며 LG의 정규리그 우승에 공헌했다. 김민구는 평균 13.4점, 5.1리바운드, 4.6어시스트, 1.8스틸의 뛰어난 성적을 거두고도 KCC가 7위에 그쳐 신인상을 김종규에게 내줬다. 두경민도 데뷔시즌 10.1점으로 폭발력은 보여줬지만 경기마다 기복이 심했다.

국가대표팀에서도 김종규와 김민구가 훨씬 먼저 돋보였다. 김민구는 2013 FIBA 아시아선수권에서 한국선수 중 유일하게 베스트5에 선정됐다. 특히 준결승에서 개최국 필리핀을 상대로 한 27점은 아직도 필리핀 팬들의 뇌리에 강하게 박혀 있다. 경희대시절부터 붙박이 국대였던 김종규는 한국 골밑을 잘 지키고 있다. 쟁쟁한 선수들이 모두 모이는 국가대표팀에서 두경민의 자리는 없었다.

올 시즌 두경민은 이상범 감독을 만나 농구에 새로운 눈을 떴다. 그는 자신의 폭발력을 꾸준함으로 바꾸었고, 동료들을 활용하는 법도 늘었다. 단숨에 리그 정상급가드로 올라섰다. 두경민은 시즌 막판 태업논란까지 겪으면서 리더로서 정신적으로도 한 단계 성숙했다. 또한 처음 뽑힌 성인대표팀에 그는 뉴질랜드를 상대로 15점을 넣었다.

혹사와 잦은 부상으로 김종규는 수년째 기량이 정체됐다. 김민구는 음주운전사고로 예전의 기량을 상실했다. 하지만 두경민만큼은 혼자서 꾸준히 성장했고, 이제 동기들을 앞질러 프로농구 최정상까지 섰다. 여기까지가 끝은 아닐 것이다. 과연 두경민은 얼마나 더 큰 선수가 될 수 있을까. 우선 올 시즌 플레이오프가 남아있다. / jasonseo34@osen.co.kr

[사진] 최규한 기자 dreamer@ose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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