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h!쎈 레터] 최은희와 신상옥, 세기의 러브스토리도 함께 묻히다
OSEN 박진영 기자
발행 2018.04.17 07: 21

20세기 한국 영화계를 대표한 여배우 최은희가 지난 16일 타계한 가운데 그의 남편이었던 신상옥 감독과의 세기의 러브스토리 역시 재조명되고 있다. 영화보다 더 파란만장하고 드라마틱한 삶을 살아았던 두 사람의 러브스토리는 이제 전설처럼 대중들의 기억과 가슴 속에 남을테다. 
故최은희는 지난 16일 오후 5시 30분 타계했다. 고인의 장남 신정균 감독에 따르면 고인은 부군 신상옥 감독이 2006년 4월 타계한 뒤 허리 수술을 받는 등 건강이 쇠약해져 오랜 기간 투병 생활을 해왔다. 그리고 병원에 신장 투석을 받으러 갔다가 결국 세상을 떠나게 됐다. 향년 92세. 
세상을 떠난 고인의 안타까운 소식과 함께 가장 많이 주목을 받고 있는 건 역시나 영화보다 더 영화같았던 고인의 파란만장한 일대기다. 그 중에서도 故 신상옥 감독과의 러브스토리가 다시 한 번 회자되고 있다. 

1926년 11월 경기도 광주에서 태어난 고인은 극단 '아랑'의 연구생을 지나 1942년 연극 '청춘극장'으로 연기자의 길로 들어섰다. 이어 1947년 영화 '새로운 맹서'로 스크린에 데뷔, 서구적인 미모와 동양적인 기품을 동시에 지닌 배우로 단숨에 주목을 받았다. 
‘새로운 맹서’를 촬영하며 김학성 촬영감독과 인연을 맺어 18세에 결혼을 했으나 한국 전쟁 당시 피란길에서 헤어지며 파국을 맞이했다. 이후 1953년 다큐멘터리 영화 '코리아'에 출연하며 신 감독과 사랑에 빠진 고인은 이듬해 조촐한 결혼식을 올렸다. 
두 사람은 70년대까지 무려 130여 편의 영화를 함께 하며 전성기를 누렸다. 작품으로는 '꿈', '지옥화', '춘희', '로맨스 빠빠', '백사부인', '성춘향', '사랑방 손님과 어머니' 등이 있다. 하지만 1976년 두 사람은 이혼을 하며 23년간의 결혼 생활에 마침표를 찍었다. 
영화계에서 엄청난 영향력을 뽐내던 고인은 1978년 1월 홀로 홍콩에 갔다가 북한 공작원에게 납치됐다. 이후 신 감독도 그해 7월 납북돼 1983년 북한에서 재회했다. 두 사람은 북한에서 신필름 영화 촬영소 총장을 맡으며 '돌아오지 않는 밀사', '사랑 사랑 내 사랑' 등 모두 17편의 영화를 찍었다. 고인은 북한에서 만든 영화 '소금'으로 1985년 모스크바 영화제에서 여우주연상을 받았는데, 이는 한국인 최초 해외영화제 수상으로 기록되어 있다. 
신 감독과 고인은 김정일의 신뢰를 얻은 뒤 1986년 3월 오스트리아 빈 방문 중에 미국 대사관에 진입해 망명에 성공했다. 이후 10년이 넘는 동안 망명 생활을 하다 1999년 영구 귀국했다. 고인은 2006년 '영원한 동반자'였던 신 감독을 먼저 하늘나라로 떠나보냈다. 
고인 역시 10여 년이 지난 후 신 감독과 함께 영면하게 됐다. 고인의 빈소는 서울성모장례식장에 차려졌으며, 발인은 19일이다. 장지는 안성천주교 공원묘지로 결정됐다. /parkjy@ose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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