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정환의 사자후] 韓농구 10년 이상 괴롭힐 ‘괴물’ 하치무라 루이
OSEN 서정환 기자
발행 2018.06.17 05: 57

‘일본농구 역사상 NBA에 가장 가까운 선수!’ 일본 언론이 평가하는 하치무라 루이(20, 곤자가대)다.
허재 감독이 이끄는 남자농구대표팀은 지난 15일 일본 도쿄에서 치른 일본대표팀과 평가전에서 80-88로 패했다. 대표팀은 17일 오후 1시 30분 센다이로 장소를 옮겨 일본대표팀과 2차전을 치른다.
▲ 한국대표팀 상대 충격적인 성인대표 데뷔전

평가전이라 승패에 큰 의미는 없었다. SK의 우승주역 김선형과 최준용은 출전하지 않았다. 허재 감독은 나머지 10명에게 모두 기회를 줬다. 이정현(9점, 3점슛 2개), 2어시스트), 이승현(5점, 9리바운드) 등 대표팀의 기존 핵심멤버들은 여전히 좋은 기량을 보였다. 리카르도 라틀리프(22점, 17리바운드) 의존증은 여전하지만 다른 선수들과의 호흡은 나아졌다.
이대성(14점)은 공수에서 적극성이 돋보였으나 실책도 4개를 범했다. 허웅도 12점으로 슛이 터졌다. 허훈은 8점, 4어시스트를 기록했다. 다만 부상으로 빠진 김종규 오세근 이종현 등 빅맨들을 대체해 선발된 최진수 김준일 정효근은 실망스러운 모습을 보였다.
일본대표팀은 골밑이 확 달라졌다. 기존에 골밑에서 뛰던 아이라 브라운을 배제하고 새롭게 닉 파지카스를 귀화시켰다. 또 미국 곤자가대학에서 뛰고 있는 흑인 혼혈 하치무라 루이(20)가 공식적으로 성인대표팀에 데뷔했다.
하치무라는 203cm, 103kg의 좋은 체격에 뛰어난 탄력과 개인기를 겸비했다. 큰 덩치에 어울리지 않게 유연한 몸놀림과 드리블 능력도 갖췄다. 하치무라가 유로스텝을 밟으며 한국수비를 제친 뒤 레이업슛을 올려놓는 장면은 인상적이었다. 하치무라는 김준일의 골밑슛을 블록하며 운동능력을 바탕으로 한 수비도 돋보였다.
하치무라는 17점, 7리바운드, 4어시스트, 2블록슛으로 활약했다. 아무리 한국에서 주전급 빅맨들이 빠졌다고 하지만, 라틀리프와 이승현이 버틴 골밑에서 그를 막을 자가 없었다. 한국에서 비슷한 신장의 선수들은 스피드가 현저히 떨어졌고, 작은 선수들은 몸싸움이 되지 않았다. 하치무라는 앞으로 10년 이상 한국농구를 괴롭힐 재목임이 확인됐다.
▲ 혼혈선수 영입과 美유학정책이 만든 ‘괴물’
하치무라 루이는 갑자기 나타난 ‘괴물’이 아니다. 일본이 정책적으로 육성한 선수라고 봐야 한다. 일본은 1억 명이 넘는 인구에도 불구하고 2m 이상 장신자가 많이 나오지 않는 편이다. 이에 일본은 정책적으로 혼혈선수 및 아프리카출신 흑인선수를 조기에 영입해 육성하고 있다.
FIBA에서는 청소년대표 경력이 없는 만 16세 이하 선수가 귀화를 해서 성인대표가 되면 귀화선수로 보지 않는다. 이에 일본의 중학교에서 전략적으로 다수의 아프리카 유망주를 귀화시켜 농구선수로 키우고 있는 추세다. 유명한 농구 명문은 대부분 아프리카출신 선수를 데리고 있다.  
하치무라 루이는 아프리카 베냉 출신 아버지와 일본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혼혈이다. 그는 1998년 일본 도야마현에서 태어나 쭉 일본에서 자랐다. 도야마 시립중학교, 미야기현 명성고등학교를 거치면서 일본 아마추어 농구를 제패했다. 그는 2015년 윈터컵 결승전에서 34점, 19리바운드를 기록하며 대회 3연패를 달성한다. 
일본농구협회의 또 다른 정책은 적극적인 미국유학이다. 자국에서 가능성이 높은 농구유망주를 미국의 고등학교, 대학교로 진학시켜 업그레이드 시킨다는 계획이다. 일본에서 더 배울 것이 없었던 하치무라는 2016년 美NCAA 디비전1의 곤자가 대학에 진학했다. 일본대표팀 주전가드 도가시 유키도 고교시절 미국으로 유학을 갔고, D리그서 뛰기도 했다. 조지워싱턴 대학에서 포워드로 뛰고 있는 와타나베 유타(24, 206cm)도 비슷한 케이스다.
한국에서 미국대학농구 디비전1에서 뛰었던 남자선수는 최진수(메릴랜드대 중퇴)가 유일하다. 국내에서 도저히 적수가 없어 유학을 선택한 것은 일본유망주들과 같지만, 최진수는 중학교 시절 사비를 들여 미국으로 갔다. 일본농구협회서 정책적으로 키워 미국에 보낸 일본유망주들과는 성격이 다르다.
하치무라는 곤자가대학 1학년에 28경기서 평균 4.6분을 뛰면서 2.6점, 1.4리바운드를 기록했다. 외모와 달리 성격이 소극적인데다 영어를 전혀 못하는 상황에서 미국에 갔다고 한다. 일본에서만 성장한 그가 미국의 새로운 문화에 적응하는 것도 시간이 필요했다. 2학년인 2017-18시즌 하치무라는 11.6점, 4.7리바운드로 기량이 몰라보게 좋아졌다. 영어도 많이 늘었다고. 이제 NBA스카우트들도 주목하는 유망주가 됐다. 현실적으로 NBA 진출은 아직 쉽지 않지만, 3학년 시즌을 잘 보낸다면 가능성이 있다는 평가다.
▲ 앞으로 10년 이상 한국농구의 골칫거리
하치무라 루이는 귀화선수가 아니다. 따라서 일본은 또 한 명의 외국 출신 닉 파지카스(33·가와사키)를 귀화선수로 쓸 수 있다. 210cm의 파지카스는 운동능력은 매우 떨어지지만 특유의 부드러운 슛터치와 큰 신장을 무기로 득점과 리바운드가 특기다. 그는 2012년부터 일본프로농구서 뛰면서 MVP를 차지하는 등 잔뼈가 굵은 선수다. 파지카스는 한국전에서 28점, 13리바운드로 골밑을 장악했다. 라틀리프도 22점을 넣었지만 높이에서 버거워하는 모습이 역력했다.
하치무라는 앞으로 10년 이상 일본대표팀 에이스로 뛸 것이다. 여기에 귀화선수가 그의 파트너로 계속 손발을 맞추게 된다. 한국농구 입장에서는 여간 까다로운 골칫거리가 아니다.
이상범 감독은 DB를 맡기 전 일본 후쿠오카 오호리고교를 전국구 팀으로 키운 경험이 있다. 누구보다 일본 아마추어농구 사정에 정통한 지도자다. 이 감독은 “일본 고교농구는 이미 흑인선수들이 점령했다. 지금은 우리가 높이에서 앞서지만 김종규와 이종현이 은퇴하는 시점에서는 일본농구가 한국농구를 추월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이 감독은 "다만 일본은 아마추어 시절부터 너무 흑인선수들에게 의존해 토종센터들을 거의 육성하지 못하는 단점이 있다. 흑인선수들도 (아프리카에 비해) 일본의 환경이 너무 좋다보니 대학에 오면 게을러져서 정체되는 경우가 많다”고 덧붙였다.
일본에는 하치무라 루이 외에도 수 십 명의 흑인 유망주들이 있다. 이들이 일본농구협회의 기대대로 커준다면 몇 년 뒤 남녀국가대표팀 멤버로 성장해 지속적으로 아시아무대를 위협할 것이다. 하치무라 루이는 시작에 불과한 셈이다. / jasonseo34@ose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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