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태우의 SK랩북] 윤정우가 쏘아올린 공, 강화의 환호와 함께 날았다
OSEN 김태우 기자
발행 2018.07.07 08: 00

자신감이 붙은 방망이가 힘차게 돌았다. 맞는 순간 홈런임을 직감할 수 있었던 큰 타구였다. 홈런을 날린 선수는 어떻게 보면 담담하게, 또 어떻게 보면 힘차게 그라운드를 돌았다. 그간의 마음고생을 시원하게 날려버리는 한 방이었다. 주인공은 윤정우(30)였다.
같은 순간, 인천SK행복드림구장과 차로 1시간 떨어진 적막한 강화도에서도 환호가 울려 퍼졌다. 환호의 주인공은 SK 퓨처스팀(2군) 코칭스태프였다. 이날 코칭스태프는 염경엽 단장이 주재한 3시간 이상의 집중 토론을 마치고 늦은 저녁 식사를 하던 중이었다. 식사를 하는 와중에서도 경기 중계에 눈을 떼지 못했던 코칭스태프는 윤정우의 홈런 한 방에 벌써 배가 불렀다. 6일 저녁, SK 1군과 2군의 풍경이다.
포기하지 않은 윤정우, 그 노력을 보상받다

윤정우는 LG 시절부터 유망주로 불렸다. 호쾌한 타격은 물론 빠른 발까지 갖추고 있어 기대가 컸다. 그러나 무릎 수술을 받으면서 야구 인생이 꼬였다. KIA로 이적해 한때 주목을 받기도 했으나 유효기간이 너무 짧았다. 그렇게 지난해 4월 SK와 KIA의 4대4 트레이드 당시 SK 유니폼을 입었다. 노수광 이홍구(이상 SK), 이명기 김민식(이상 KIA)에 모든 시선이 쏠려 있었던 트레이드였다. 윤정우에 큰 관심을 보인 사람은 별로 없었다.
실제 윤정우는 트레이드 이후 계속 2군에만 머물렀다. 2군 타격 성적은 좋았지만, 그 이상의 매력을 어필하지 못했다. 여기에 무릎 상태가 계속 윤정우를 괴롭히면서 1군 진입에 실패했다. 윤정우는 트레이드로 오고간 8명의 선수 중 유일하게 1군 무대를 밟지 못하고 시즌을 마감했다. 자신감은 있었던 윤정우에게는 큰 상처였다.
승부를 걸었다. 지난해 11월 무릎에 고정되어 있던 핀을 제거하는 수술을 받았다. 계속된 통증이 움츠려들었던 몸과 마음을 회복하기 위해 모든 노력을 다했다. 더 이상 물러설 곳이 없다는 각오로 무릎에 대한 두려움을 떨쳐냈다. 그 결과는 퓨처스리그에서의 대활약이었다. 비록 1군 전지훈련은 가지 못했지만, 실적은 혁혁했다. 49경기에서 타율 3할4푼1리를 기록했고, 4개의 홈런과 36타점, 그리고 14개의 도루를 기록했다. 하지만 1군에서의 부름은 없었다.
2군 생활은 기술과의 싸움도 있지만, 현재 처해있는 상황에 대한 불안감과 싸우는 승부다. 자신과의 싸움이라는 말이 딱 들어맞는다. 좋은 성적을 내도 1군에서의 관심이 없으면 자연히 의욕이 처진다. 때로는 불만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그래서 야구를 포기하는 선수들도 생각보다 많다. 윤정우도 자칫 잘못하면 그런 코스로 갈 뻔했다. 하지만 1군에 대한 꿈, 그리고 마지막 승부라는 시즌 전 다짐을 포기할 수 없었다.
윤정우는 “힘이 빠진 것이 없다면 거짓말이었을 것이다. 핀도 제거하는 수술을 받았고, 1군에 보여줄 수 있는 것은 기록밖에 없다고 생각해 열심히 했다. 그렇게 4~5월 동안 집중하면서 야구를 했는데 기회가 없었다”고 떠올렸다. 그러나 버티고 버틴 결과 6월 말 승격할 수 있었고, 첫 5경기에서 타율 5할5푼6리라는 인상적인 성적을 남겼다. 윤정우는 “양현종(KIA)을 상대하기 전 밤새 영상을 돌려보기도 했다. 이렇게 힘들었던 기억도 추억이 될 수 있을 것 같다”고 빙그레 웃었다.
떠난 자식을 보는 듯한, 코치들의 애절한 마음
경기 후 윤정우는 서둘러 전화를 걸었다. 부모님도 아니고, 친한 친구도 아니었다. 윤정우의 목소리가 가장 먼저 향한 곳은 바로 강화도였다. 2군에 있던 시절 자신을 헌신적으로 돌본 백재호 퓨처스팀 타격코치와 김석연 수석코치 등 2군 지도자들에게 전화를 걸어 감사함을 표했다. 윤정우가 1군 진입에 대한 희망의 끈을 놓지 않았던 것은 선수의 강한 의지도 있지만, 지도자들의 치열한 노력도 큰 비중을 차지했다.
2군은 지루하다. 1군 만한 환호도 없고, 뭔가 신이 나지 않는 축 처진 분위기다. 어린 선수들은 반복되는 기본기 훈련에, 1군 경력이 있는 선수들은 긴장감이 떨어진 분위기에 지친다. 그런 생활이 오래 가다보면 누구나 심리적으로 무너지는 시기가 있기 마련이다. 그래서 2군 지도자들의 가장 큰 덕목은 기술의 이해도는 물론 선수의 심리를 파악하고 어루만지는 스킬이라는 말이 있다. 강압적인 지도 스타일은 반드시 반감을 부르게 되어 있다. 경계선을 지키면서도 따뜻함을 유지한다. 참 어려운 이야기다.
SK도 육성 시스템을 정비하면서 2군 지도자들도 함께 육성한다는 계획을 가지고 있다. 지난해부터는 심리 수업도 필수로 받고 있다. 모든 코칭스태프들이 멘탈 전문가들에게 8시간 이상의 교육을 받았다. 이후 코치들은 선수들에게 다가서는 방법이 많이 달라졌다고 이야기한다. 그런 효과가 여러 곳에서 나타나고 있다는 평가다. 분위기는 더 좋아졌고, 선수들의 동기부여도 더 살이 찌고 있다.
몇몇 코치들은 아예 강화SK퓨처스파크에서 숙식을 해결하기도 하고, 상당수는 강화도에서 생활하며 선수들과의 접점을 늘려가고 있다. 이렇게 애지중지한 선수들이 1군에 가면 초긴장상태가 되곤 한다. 1군과는 달리 다음 날 아침 일찍부터 일정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잘 해야 하는데…”라는 말을 수십번 외치며 1군 경기를 시청한다. 마치 자식을 큰 무대에 떠나보낸 부모의 심정이다. 선수들이 얼마나 열심히 노력했는지를 지도자들이 가장 잘 알기에 있을 수 있는 일이다.
다행히 2군 지도자들이 기뻐할 만한 일들이 조금씩 늘어나고 있다. 트레이 힐만 SK 감독은 5월까지만 해도 1·2군 선수 순환에 적극적이지 않았다. 기존 1군 선수들에게 먼저 기회를 줬다. 부상자 대체가 아니라면 강화에서 올라간 선수들도 별로 없었다. 그러나 팀 성적이 처지기 시작하자 2군 자원들을 좀 더 활용하고 있다. 그리고 2군에서 절치부심한 선수들이 1군에서 팀의 활력소가 되는 경우가 많이 늘어났다.
마운드에서는 이승진이 완전히 자리를 잡았고, 예상보다 긴 2군 생활을 한 박희수와 채병용의 활약도 좋다. 박희수는 복귀 후 4경기에서 실점이 없고 채병용은 6일 인천 한화전 이후 “현재 불펜투수 중 자신이 가진 구종을 가장 효율적으로 구사한다”는 힐만 감독의 공개 칭찬을 받기도 했다. 5일 고척 넥센전에서 2이닝 무실점을 기록한 전유수에 대해서도 “부임 후 가장 좋은 피칭을 했다”고 반색했다.
야수쪽에서도 박성한이 꾸준히 기회를 받고 있다. 윤정우와 김강민은 6일 경기에서 백투백 홈런을 기록하는 등 팀 승리에 큰 공헌을 했다. 모처럼 강화 코치실의 분위기가 밝아질 조짐이다. 이처럼 1군에 올라간 선수들의 던지는 공, 그리고 치는 공 하나 하나에는 선수들의 노력은 물론 2군의 염원까지 함께 한다. 단순한 공 하나로 보기에는, 지나쳐서는 안 될 너무나 많은 의미가 있다. SK 담당기자 /skullboy@ose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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