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태우의 SK랩북] ‘심야의 2군 자청’ 윤희상의 치열했던 터닝포인트
OSEN 김태우 기자
발행 2018.08.01 13: 00

지난 6월 13일. 광주 KIA 원정에 임하고 있었던 코칭스태프가 아침부터 머리를 맞대고 있었다. 2군으로 보내야 하는 선수, 대신해 1군으로 올려야 할 선수를 결정해야 했다.
당초 12일 경기 직후 결정 사항까지만 해도 2군으로 보낼 대상자는 2명 정도였다. 그런데 12일 늦은 저녁, 한 선수가 “2군으로 가겠다”고 자청하면서 일이 커졌다. 결국 1·2군 순환을 원점에서 논의한 결과 이날 총 8명의 선수가 1군 엔트리에서 이름을 맞바꿨다. 이렇게 판을 키운 선수는 우완 베테랑 윤희상(33)이었다. 야심한 밤에 “2군으로 보내 달라. 정비를 하겠다”고 코칭스태프에 사정한 선수가 바로 그였다.
쉽지 않았던 불펜 전환, 계기가 필요했다

윤희상은 오랜 기간 SK의 선발진을 지킨 중추였다. 2012년에는 10승을 기록했고, 비교적 근래인 2016년에도 9승을 따냈다. 그러나 손가락 및 팔꿈치 부상을 당한 뒤 스태미너가 현격하게 떨어져 있었다. 구단은 윤희상에게 보직에 대한 선택권을 일임했고, 한참을 고민한 윤희상은 2018년이 밝기 전 “불펜으로 가겠다”고 통보했다. 윤희상이 팀을 위한 대승적인 결정을 내린 것이다.
약했던 SK 불펜에 대형 호재로 보는 시각이 지배적이었다. 구단 관계자들은 “윤희상이 불펜에서 1이닝만 전력으로 던진다면 140㎞대 후반의 공을 던질 수 있다. 다양한 변화구를 갖췄고 경험까지 많아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반색했다. 트레이 힐만 SK 감독의 생각도 마찬가지였다. 윤희상을 마무리 박정배로 이어지는 8회 셋업맨을 기용하겠다는 구상을 굳혔다. 2018년 SK의 키 플레이어 중 하나였다.
그러나 그 키가 자꾸 맞지 않았고 오류가 속출했다. 3~4월 14경기에서 평균자책점 5.56로 부진하게 출발했다. “아직 불펜의 특성에 적응이 덜 되어서 그렇다. 시간이 지나면 나아질 것”이라며 낙관하는 시선이 많았지만 이는 점차 불안감으로 바뀌었다. 5월 6경기에서 평균자책점이 12.27로 치솟으며 필승조 보직을 내놨다. 힐만 감독은 더 이상 윤희상을 위기 상황에서 쓰지 못했다.
그렇다고 해서 2군에 내리지는 않았다. 힐만 감독은 그 사유에 대해 구체적인 설명을 피하기 일쑤였다. 구단 안팎에서는 “자신을 희생하며 불펜으로 온 선수에 대한 배려가 있었을 수도 있다”, “윤희상 정도의 베테랑은 1군에 머물면서도 정비가 가능하다”고 추측했을 뿐이었다. 그렇게 크게 이기고 있거나, 크게 지는 경기에만 나서다보니 출전 빈도도 뚝 떨어졌다. 5월 2일부터 18일까지 17일 동안 윤희상은 딱 세 차례 등판에 그쳤다.
그런 윤희상이 스스로를 더 냉정하게 돌아볼 수 있었던 경기가 6월 12일 광주 KIA전이었다. 접전 상황이 아닌 경기에서 점차 성적을 끌어올리고 있었던 윤희상은 이날 1이닝 동안 홈런 하나를 포함해 3안타를 허용하며 3실점했다. 그러자 숙소로 돌아간 윤희상은 스스로 결단을 내렸다. 전화기를 들었고, 2군에 가겠다고 했다. 윤희상은 당시 상황을 떠올리며 “그대로 있으면 도저히 안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담담하게 그 배경을 설명했다.
치열했던 25일, 배움에는 학번도 없었다
손혁 투수코치는 “밖에서 봤을 때와 안에서 봤을 때, 이미지 차이가 가장 큰 선수가 윤희상이었다. 생각도 깊고, 논리도 질서정연한 선수”라고 인성에 대해 치켜세운다. 자존심도 강하지만 생각도 많은 선수다. 코치들의 조언이 아닌, 스스로 결정을 내릴 수 있을 정도로 사고는 확장되어 있었다. 윤희상은 “부진할 때도 코치님들과 감독님께서 계속 격려를 해주셨다. 고맙긴 했지만, 이대로 계속 가면 시즌 끝까지 부진한 투구가 이어질 것 같았다”고 했다.
좀 더 멀리보고 자신의 투구 패턴을 바꾸기 위해 남들이 다 꺼려하는 ‘강화행’ 버스 티켓을 스스로 끊었다. 윤희상은 “내가 150㎞ 이상의 압도적인 패스트볼을 던질 수 있는 선수는 아니다. 여기에 타자들이 낮게 떨어지는 포크볼에 속지 않더라. 포크볼에 방망이가 나오지 않으니 볼카운트가 몰리고 힘든 상황이 이어졌다. 변화를 줘야 할 시기라고 생각했다”고 자신을 냉정하게 몰아붙였다. 만 33세의 베테랑이 원점부터 다시 시작을 선언한 것이다.
윤희상은 동료들의 장점을 눈여겨봤다. 배움에는 학번도 없었다. 윤희상의 눈에 들어온 것은 10년 후배인 이승진(23)이었다. 이승진은 자연적으로 휘는 커터성 패스트볼에 커브의 낙차가 좋다. 윤희상은 패스트볼+포크볼 조합의 자신의 투구 패턴에 이 특성을 가미할 수 있다면 승부가 될 수 있을 것이라 판단했다. 그래서 지독하게 파고든 것이 컷패스트볼과 커브였다.
윤희상은 “부진할 때 승진이의 레퍼토리가 눈에 들어왔다. 커터와 커브 조합이었는데 이를 보면서 내가 정말 많이 배웠다. 승진이에게 고마울 따름”이라면서 “공 꼬리만 살짝 휘는 커터를 연마하기 위해 공을 들였다”고 강화에서의 25일을 회상했다. 2군 코칭스태프의 배려 속에 윤희상은 묵묵하게 앞으로 나아가고 있었다. 
슬라이더나 커브는 원래 던지던 선수였지만, 주무기는 아니었다. 포크볼에 비하면 아무래도 완성도가 떨어지는 구종이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윤희상은 2군 등판에서 이를 집중적으로 시험했다. 어느 날은 패스트볼 전체를 커터로 던져보기도 하고, 어느 날은 커브를 집중적으로 던져보기도 했다. 등판이 거듭될수록 감이 좋아졌고 공에 힘도 붙었다. 김경태 SK 퓨처스팀 투수코치도 “이번에 1군에 가면 다시 2군에 내려오면 안 되는 선수”라고 공을 들였다.
화려한 반전, 내려놨더니 채워졌다
그런 윤희상은 7월 8일 1군에 재승격됐다. 완전히 달라져 있었다. 포심패스트볼 위주가 아닌, 130㎞대 후반의 컷패스트볼을 주로 던졌다. 여기에 포크볼을 자주 던지기보다는 커브를 적절하게 섞으며 타자들의 타이밍을 뺏었다. 1군에 내려가기 전 윤희상과, 다시 1군에 올라온 윤희상은 레퍼토리 측면에서 완전히 다른 투수가 되어 있었다.
그 결과는 7월 호투였다. 윤희상은 7월 한 달 동안 압도적인 성적을 냈다. 7월 7경기에서 실점은 단 하나도 없었다. 심지어 승계주자에 실점을 허용한 일도 없었다. 10⅓이닝을 던지며 맞은 안타는 단 3개. 피안타율은 9푼1리에 불과한 반면, 탈삼진은 14개를 기록했다. 커터와 커브라는 새 구종이 상대 타자들의 머리를 복잡하게 할 때, 140㎞대 후반의 제구 잘 된 포심패스트볼과 예리함을 되찾은 포크볼이 타자들의 방망이를 헛돌게 했다.
부진했을 때는 팬들의 비난과 비판의 중심에 서 있었던 선수였다. “왜 2군에 보내지 않는 것인가”라는 말부터, 심지어 “이제 끝났다”는 비아냥까지 들었다. 사실 자청하지 않았다면 힐만 감독의 성향상 윤희상은 계속 1군에 남을 수도 있었다. 그러나 윤희상은 지금은 자존심을 세울 때가 아니라고 믿었다. 팀의 부담을 덜어주기 위해, 그리고 불펜으로 전향한 자신의 미래를 위해 한 번은 비우고 갈 때라고 생각했다.
생각 깊은 베테랑은 그렇게 강해졌다. 최근에는 다시 자신의 보직과 명예를 되찾는 분위기다. 중요한 순간에 힐만 감독은 윤희상 호출을 주저하지 않는다. SK의 불펜 구상이 시즌 전으로 회귀하고 있다는 것은 대단히 긍정적이다. 물론 이런 좋은 페이스가 시즌이 끝날 때까지 이어질 것이라 보기는 어렵다. 위기도 있고, 고비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심야에 전화기를 주저없이 들었던 윤희상은 한 차례 답을 찾아냈다. 그 경험은 또 다른 답을 찾을 수 있도록 도와줄 것이다. SK 담당기자 /skullboy@osen.co.kr

Copyright ⓒ OSEN.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