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같은 드라마"..'리틀 드러머 걸' 박찬욱의 의미있는 도전(종합)[Oh!쎈 현장]
OSEN 김보라 기자
발행 2019.03.20 19: 20

 “‘영화로 편집할까?’라는 생각도 해봤는데 도저히 120분으로 줄일 수 없었다. 그러면 (편집량이 많아서)작품이 훼손될 거 같았다. 애초에 영화 제작도 생각했지만 아니다 싶었다.”
박찬욱 감독은 20일 오후 서울 이촌동 용산 CGV아이파크몰에서 영국드라마 ‘리틀 드러머 걸: 감독판’(감독 박찬욱, 수입배급 (주)왓챠, 제작 BBC・AMC・The Ink Factory・Endeavor Content・모호필름)의 시사회 자리를 열고 영화가 아닌 드라마를 만든 이유에 대해 전했다.
이달 29일 국내 최초로 왓챠플레이를 통해 6편 전편을 공개하기에 앞서 오늘 언론에 1~2회 분을 선 공개한 것이다. 왓챠플레이는 가입자 500만여 명, 작품 평가 데이터 약 5억 개를 보유한 월정액 VOD 스트리밍 서비스. 영화, 드라마, 애니메이션, 예능, 다큐 콘텐츠 등 5만여 작품을 무제한으로 감상할 수 있으며 방대한 데이터를 기반으로 개인의 취향에 맞는 작품을 추천받을 수 있다. 박 감독은 처음으로 도전한 드라마를 왓챠플레이를 통해 국내에 선보이기로 결정했다.

박 감독은 “영국에서 매주 1편, 미국에서 2편씩 공개했었다. 왓챠에서는 한꺼번에 공개 되니 원하는 사람은 한 번에 다 볼 수 있다(웃음). 요즘에는 시리즈 드라마를 몰아서 한 번에 보지 않나. 저는 만든 사람 입장에서 (하나씩 보는 것보다)그게 더 좋은 거 같다. (보통 드라마는)’다음회는 어떻게 될까?’라며 궁금해하는데 그것도 좋지만 제가 영화를 하던 사람이라서 그런지 몰라도 한 번에 보는 게 더 흥미로운 경험이 되지 않을까 싶었다”라고 시리즈 드라마를 한 번에 공개한 것에 대한 생각을 전했다. 
‘리틀 드러머 걸’은 1979년 이스라엘 정보국의 비밀 작전에 연루되어 스파이가 된 배우 찰리(플로렌스 퓨)와 그녀를 둘러싼 비밀 요원들의 숨 막히는 이야기를 그린 첩보 스릴러. 
존 르 카레 작가의 동명의 소설을 원작으로 한 ‘리틀 드러머 걸’은 스토리 텔링과 미장센으로 전 세계 관객들을 사로잡아온 박찬욱 감독의 첫 미니시리즈 연출작이다. 미국과 영국에서 공개한 본편이 아닌, 한국용 감독판은 박찬욱 감독의 연출의도를 한층 더 살렸다고 볼 수 있다.
“미국 AMC는 노출에 엄격하고, 영국 BBC는 폭력에 엄격하다. 근데 저는 둘 다 못 한다(웃음). 하하. 물론 알고 찍었고 이번 작품에서 그런 것들이 심한 건 아닌데 찍다 보면 언뜻 보이는 게 있다. (외국에서 선보였던)본편과 달리 감독판에서는 편집하지 않고 그대로 살릴 수 있었다.”
박찬욱 감독은 “제작사, 연출자, 방송사 등 모든 작품을 할 때 서로 의견 차이가 있을 수 있다. 여태까지 저는 토론과 타협, 양보, 설득, 혹은 설득을 당하며 원만하게 마무리를 지어왔는데 이번에는 후반 작업 시간이 짧다는 게 문제였다”며 본편에서 자신의 의도를 충분히 살리지 못했다고 했다. 그러면서 “편집을 오래해야 조율을 할 수 있는 부분이 있는데 이번엔 시간상 정신 없이 편집하고 방송하기 바빴다. 제가 아쉬운 점이 있었는데 감독판은 제 뜻대로 해서 만들 수 있었다”라고 본편 이후 감독판을 내놓은 이유에 대해 설명했다.
감독판은 지난 2018년 영국 BBC와 미국 AMC에서 방송된 ‘리틀 드러머 걸’의 방송판과 비교해 방송 심의 기준과 상영시간 제한에 따라 제외된 다수의 장면을 포함하고 있다. 음악과 색, 카메라 앵글 하나까지 박찬욱 감독의 연출 의도를 온전히 담아내 차별화 된 버전으로 기대를 더하고 있다. 
이번 작품에는 영화 ‘이미테이션 게임’(2015), ‘팅커 테일러 솔저 스파이’(2012), ‘디 아워스’(2003), ‘빌리 엘리어트’(2001) 등에 참여한 프로덕션 디자이너 마리아 듀코빅이 합류했다.
박찬욱 감독은 “(국내든 미국이든 유럽이든) 영화인들의 생각은 다 비슷하더라. 유능함의 차이인 것 같다"며 “저는 미술감독과의 협업이 중요한데 한국에서는 류성희 미술감독과 줄곧 했었다. 이번에 저는 ‘팅커 테일러 솔저 스파이’를 한 미술 감독을 데려다 달라’고 요청했었다. 저와 취향이 비슷하고 의견이 잘 맞아서 아주 행복하게 일했다”는 소감을 전했다.
박찬욱 감독은 “제가 소설이나 원작이 있는 작품을 각색해 영화화한 적 많았다. 제가 쓴 것보다 오히려 더 많았던 거 같다. ’올드보이’는 일본 만화, ‘공동경비구역 JSA’과 ‘박쥐’도 소설을 바꾸었다. ‘아가씨’도 영국 소설이었다. 오히려 원작이 있는 작품을 많이 했다”며 “각색할 때 주의를 기울인 것은 이게 첩보 스릴러라고는 하지만, 제가 이것을 읽고 좋았던 부분을 살리고 싶었다. 첩보 스릴러인 동시에 로맨스가 있다. 그 특징이 사라지지 않게, 그 요소가 다른 것에 섞여서 희석되지 않게 하는 게 중요했다. 흔한 첩보 스릴러의 자극적인 요소에 (로맨스가)묻히지 않게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했다”고 작품의 방향성을 강조했다.
박 감독은 원작 소설의 시대는 1980년대 초이지만 드라마에서는 1970년대로 옮겼다. 그 이유에 대해 “이 작품에서 유럽의 극좌파 테러 조직이, ’붉은 여단’ 같은 조직 같은, 팔레스타인과 연계한 것인데 그러기 위해선 70년대가 주무대다. 작가도 취재를 많이 했던 때가 그 시기였기 때문에 79년대로 옮겼다”고 배경을 설명했다.
그러면서 중점을 둔 부분에 대해 “그 시대 분위기를 살리기 위해 미술감독과 특히 많은 얘기를 했다. 70년대를 다룬 영화나 드라마를 보면 히피 느낌이 아직 남아있지 않나. 보헤미안 룩 같은 자유분방함이 있다. 79년은 80년대로 넘어가는 때이니, 중간쯤의 독특한 걸 찾아보고 싶었다. 그밖에 자동차나 녹음기 등 요즘엔 볼 수 없는 구식 제품, 향수를 자아내는 설정, 소품이 많이 등장해서 저로서는 참 재미있게 일을 했다”고 웃으며 말했다.
영화 ‘레이디 맥베스’(감독 윌리엄 올드로이드, 2017)에서 압도적인 눈빛과 매력적인 연기를 선보이며 런던 비평가협회상 수상, 유럽영화상 여우주연상에 노미네이트 되는 등 세계가 주목하는 신예로 떠오른 플로렌스 퓨가 박찬욱 감독의 새로운 뮤즈로 ‘리틀 드러머 걸: 감독판’에 합류했다. 플로렌스 퓨가 연기한 찰리는 연극 무대와 오디션장을 전전하며 자신의 이름을 알릴 기회를 잡기 위해 노력하던 중 의문의 남자에 이끌려 스파이라는 일생일대의 역할을 받아들이게 되는 인물이다.
플로렌스 퓨는 ‘배우’와 ‘스파이'라는 이중적인 정체성 사이에서 사랑, 분노, 연민 등 복합적인 감정을 겪는 인물의 모습을 도발적 매력과 탄탄한 연기력으로 완벽하게 소화했다. 평범한 삶으로부터 일탈을 꿈꾸던 무명 배우에서 전 세계를 무대로 한 첩보 작전의 주인공이 된 찰리의 변화는 플로렌스 퓨의 입체적인 연기가 더해져 극에 긴장감을 불어넣는다.
박찬욱 감독과 호흡을 맞춘 배우들은 주체적이고 매혹적인 여성 캐릭터를 완벽하게 소화하며 언론과 관객의 호평을 이끌어낸 바 있다. 이에 ‘리틀 드러머 걸: 감독판’에서 찰리 역을 맡은 플로렌스 퓨가 솔직하고 대담한 면모, 과감하고 강인한 매력을 선보이며 박찬욱 감독의 작품 속 독보적인 여성 캐릭터의 계보를 이어갈 것으로 기대된다.
박찬욱 감독은 드라마 ‘리틀 드러머 걸’을 하면서 가장 힘들었던 부분이 로케이션 촬영이라고 했다. “재미도 있었지만 영국, 체코 등지에서 여러 가지 특징을 파악해 극중에선 마치 여러 나라인 것처럼 꾸며야 했다”며 “최소한의 이동경로로 다양한 지역색을 표현하고 싶었다. 제작 비용을 줄이면서 최소한의 지역에서 다양한 색을 내는 게 도전이었다”고 말했다.
세계적으로 이름을 알린 박찬욱 감독의 연출에 스파이 찰리 역의 플로렌스 퓨, 정체를 숨긴 채 그녀에게 접근한 비밀 요원 가디 베커 역의 알렉산더 스카스가드, 작전을 기획한 정보국 고위 요원 마틴 쿠르츠 역의 마이클 섀넌까지 실력파 배우들의 강렬한 연기가 더해졌다. 이달 29일 왓챠플레이를 통해 첫 공개되는 ‘리틀 드러머 걸’이 안방극장에 반향을 일으킬지 주목된다./purplish@osen.co.kr
[사진] 영화 포스터, ⓒGettyimages(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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