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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시집 100년 기념 전시회, 『진달래꽃』부터 『입속의 검은 잎』까지…화봉문고에서 4월1일부터 열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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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살아온 것은 거의 기적적이었다

오랫동안 나는 곰팡이 피어 아무도 들여다보지 않는 질서……’

(기형도 유고시집 『입속의 검은 잎』 중 ‘오래된 서적(書籍)’에서 발췌 인용)

한국 근·현대 시사를 관통하는 기념비적인 시집들이 한꺼번에 봄나들이에 나섰다.

『오뇌의 무도』(1921년)부터 『입속의 검은 잎』(1989년)까지 한국시문학에 큰 영향을 끼친 시인들의 주요 시집을 총망라한 전시회가 근대서지학회(회장 오영식) 주최로 4월 1일부터 한 달간 서울 인사동 화봉문고 전시실에서 열린다.

이번 전시회는 근대서지학회가 한국 최초의 현대시집이자 번역시집인 김억의 『오뇌의 무도』 출간 100주년을 맞아 기획한 것이다. 전시하는 시집은 모두 100권. 시집의 선정은 근대서지학회 회원이기도 한 유성호(한양대), 이경수(중앙대), 정우택(성균관대) 등 한국현대시연구와 비평에 일가를 이룬 국문과 교수들과 도종환, 손택수 시인 등을 포함한 전문가 수십 명의 자문과 고증을 거쳐 마련했다.

희귀한 시집들을 한자리에 모았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이번 전시회는 충분한 전시 가치를 지닌다. 일제강점기와 해방공간의 시집들(80권)이 중심이 되기는 했으나 1950년대 이후 1980년대까지 주요 시집들(20권)도 선을 보인다.

게다가 관람자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 전문가들의 추천이 많은 시집부터 일련번호를 매겨 전시하는 것도 눈길을 끈다. 가장 많은 추천을 받은 김소월의 『진달래꽃』(1925년)이 맨 앞에 자리 잡았고, 그 뒤를 이어 백석의 『사슴』(1936년), 윤동주 유고시집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1948년), 한용운의 『님의 침묵』(1926년), 정지용의 『정지용 시집』, 서정주의 『화사집』이 차례로 등장한다.

자못 이례적으로 김수영의 첫 개인시집 『달나라의 장난』(1959년)은 1950년대 시집인데도 불구, 전문가들로부터 7번째로 많은 천거를 받아 이육사의 『육사시집-노랑나븨도 오쟎는 무덤 위에 이끼만 푸르리라』를 앞질렀다.

무엇보다 그동안 소장자들의 서가 깊숙이 들어 있던 이른바 월북 시인들의 시집들이 대거 출현하게 돼 반가운 마음이 앞선다. 1988년 ‘해금’ 이전까지 그 이름을 언급하는 것조차 꺼렸던 정지용 (『정지용시집』, 『백록담』), 김기림 (『기상도』, 『바다와 나비』), 임화 (『현해탄』, 『찬가』), 오장환 (『헌사』, 『병든 서울』, 『나 사는 곳』), 김상훈 (『대열』), 조명희 ( 『봄잔디밧 위에)』, 임학수 (『석류』) 등 무려 20권이 넘는 좀체 볼 수 없는 시집들도 한눈에 살펴볼 수 있다.

소설가 황순원의 시집 『방가』(1934년)와 1950년대 이후에는 청록파 시인 3인 합동시집 『청록집』(1946년)과 조지훈의 『풀잎 단장』과 박목월의 『산도화』, 박두진의 『해』도 선택을 받았다. 1970, 80년대 시집들은 앞으로도 기회가 있을 것으로 판단, 소수만 부름을 받았다. 그 가운데 신동엽의 생전 유일 시집 『아사녀』와 김지하의 첫 시집 『황토』, 신경림의 『농무』가 들어 있고, 많은 이들의 굄을 받아온 요절 시인 기형도의 유고시집 『입속의 검은 잎』도 전시된다.

오영식 근대서지학회 회장은 “한국시집 100살 생일을 맞아 자그마한 잔칫상을 마련했다.”면서 “너무 조촐한 자리이기에 100년을 버텨온 시집과 시인들에게 송구한 마음이 앞섭니다만, 코로나가 여전히 기승을 부리는 상황에서 관련 단체들의 비협조로 이러한 오프라인 행사를 마련하는 것이 예사롭지는 않았다”고 전시회 마련의 어려움을 털어놓았다.

그는 “1970, 80년대에 국립중앙도서관 등이 이러한 전시회를 가끔 열기는 했고 육당 최남선의 신체시 ‘海에게서 少年에게’ 발표 90주년을 기념해 동서문학관이 연 일제하 한국시 100인전 이후로는 근대시집 관련 대규모 기획전시가 없었다”면서 “2009년에 결성된 근대서지학회는 근래 들어 3·1운동 백 주년, 개벽 창간 백 주년 등의 주년(週年)은 모두 흘려보냈지만 한국시집 100년만은 놓치고 싶지 않았다. 가장 큰 이유는 앞의 두 행사에 비해 한국시집 100년 전시는 근대서지학회만 할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라고 배경을 설명했다.

100년이라는 세월 동안 희귀시집들이 여기저기로 뿔뿔이 흩어진 탓에 이제는 한 기관이나 개인의 소장본만으로는 근현대시집의 전체상을 오롯이 보여주는 것이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 되고 말았다. 따라서 수십 년간 근대서지 자료를 수집해오고 그것의 공유에 공감한 회원들의 울력을 확보한 근대서지학회만이 가능한 전시회라 생각했다는 게 오 회장의 보충설명이었다.

㈜화봉문고 여승구 회장과 소명출판 박성모 대표가 적극 협력, 전시회가 가능해졌고 학회 엄동섭 총무(창현고 국어교사)의 헌신적인 노력 덕분에 잔칫상을 마련한 것에 오 회장은 기꺼워했다.

최근 경매 시장에서 국내에 10권 안팎만 남아 있는 것으로 추정되는 『진달래꽃』은 1억 원 이상, 『사슴』은 7000만 원이라는 거액에 낙찰된 사례가 있을 정도로 ‘귀하신 몸’이고 윤동주 시집 같은 희귀본도 수천만 원을 호가하는 판이다. 이런 귀한 시집의 원본들을 한자리에서 볼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눈 호강을 한껏 하게 되는 셈이다.

오영식 회장의 말처럼 “걸음을 하시는 분들 모두, 모처럼 만나는 원본 시집의 깊은 향기에 흠뻑 젖어보시길” 바란다.

아쉬운 점은 올해가 한국근현대문학사상 현대시집 발간 100주년이라는 중요한 이정표가 세워진 해인데도 문화체육관광부가 이런 행사에 도통 무관심하다는 것이다. 그런 면에서 그 존재의 이유를 되묻지 않을 수 없다. 코로나 바이러스 사태로 전시회가 주말은 건너뛰고 평일에만 열리는 것은 어쩔 수 없는 노릇이다.

글/홍윤표 OSEN 선임기자

사진(이미지)/근대서지학회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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