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S] 작년에 이어 팀만 바뀌어 '선발 야구' 실종
OSEN 박선양 기자
발행 2011.10.28 07: 47

선발 야구의 실종이다.
이번 한국 시리즈의 삼성 라이온즈는 지난 해 SK 와이번스의 모습을 꼭 닮아 있다.
2010년 한국 시리즈에서 SK는 삼성에 4전 전승을 거두는 동안 선발승이 한 번도 없었다. 1차전 선발 김광현이 4⅔이닝 만에 마운드를 내려간 이후 두 번째 투수 정우람이 2이닝을 지키고 승리를 따낸 데 이어 4차전까지 모두 두 번째 투수가 승리요건을 갖췄다.

이번 한국 시리즈에서는 SK가 삼성으로 바뀌어 1차전에서 선발 덕 매티스(4이닝)를 이어 마운드에 오른 차우찬이 3이닝 무실점으로 승리투수가 된 뒤 2차전에서는 장원삼의 5⅓이닝 무실점을 지킨 권오준이 ⅔이닝 2탈삼진 무실점으로 승리를 따냈다.
올해 한국 시리즈가 모두 끝난 것은 아니지만 류중일 감독이 "3차전에도 차우찬을 두 번째 투수로 낙점하고 있다"고 밝히면서 계속해서 선발 투수가 조금이라도 흔들리면 바로 마운드를 교체하는 '한 박자 빠른 투수 교체'가 이뤄질 전망이다. 2년 내내 선발승이 한 번도 없는 한국 시리즈가 될 가능성도 높아지고 있다.
▲ 선발 야구 실종, 어디서부터?
이같은 선발 야구의 실종은 SK로부터 시작됐다. SK는 2007년부터 5년 연속 한국 시리즈에 오르는 등 승승장구하면서 한국 야구의 패턴을 조금씩 바꿔놨다. 2007년부터 지휘봉을 잡은 김성근 전 SK 감독은 마운드를 키우면서 불펜 강화에 중점을 뒀다.
SK가 2007년 두산에 2패 후 4연승으로 우승을 차지하는 동안 구원승은 5차전 한 번 뿐이었다. 선발투수 6명 전원이 5이닝 이상 투구했다.
그러나 2008년에는 1패 후 4연승 동안 구원승이 3번(2,3,4차전)이나 됐다. 3경기 모두 선발이 5이닝 이전(4이닝, 4⅓이닝, 2⅓이닝)에 강판됐다. 반면 상대팀 두산은 1승 4패 모두 선발이 가져갔다. 두산 선발진은 2차전 김선우(4이닝)을 제외하고는 모두 5이닝 이상(5⅓이닝, 5⅔이닝, 7이닝, 6⅔이닝)을 소화했다.
이어 2009년에는 3승 4패 중에 구원승이 한 번, 구원패가 두 번이었다. 7경기 선발의 평균 소화 이닝은 약 5이닝에 그쳤다. 당시 우승팀인 KIA 선발 중 승패를 기록하지 못한 투수는 7차전 구톰슨 한 명 뿐이었던 것과 대조적이다. 7명의 투수 중 5명이 5이닝 이상을 던졌다. 아킬리노 로페즈는 5차전에서 9이닝 무실점 완봉승을 거두기도 했다.
지난해는 불펜 야구가 절정에 달했다. SK는 4연승 동안 선발승이 아예 없었다. 당시 SK 선발들은 4⅔이닝, 1⅔이닝, 2이닝, 4이닝 씩만을 소화해 선발이라기 보다 첫 번째 투수의 의미가 강했다. 반면 삼성은 1차전 권혁이 구원패를 기록한 이후 3연패를 모두 선발이 안았다.
4연패 탈락의 충격을 만회하기 위해 올해 삼성은 한국 시리즈 전부터 사실상 두 번째 선발을 공식화 했다. 선발급인 차우찬과 정인욱이 각각 1,2차전 두 번째 투수로 내정됐다. 2차전에서는 장원삼이 5⅓이닝을 소화하면서 정인욱은 등판하지 않았지만 차우찬은 1차전에서 5회부터 마운드에 올라 불펜으로서는 긴 3이닝을 던졌다. 지난해 SK에 당한 그대로의 방식으로 복수한 것이다.
▲ 비정상적인 마운드 운용…이기면 그만?
물론 한국 시리즈가 한 번의 실수에 승패가 좌우되는 큰 경기이기는 하지만 마운드를 지배하는 에이스가 없다는 것은 한국 시리즈에 대한 흥미를 반감시키는 주요 원인 중 하나다. 안타라도 맞으면 바로 투수 교체가 이뤄지니 긴장감이 높지 않다.
2년째 한국 시리즈에서 퀄리티 스타트를 달성하는 선발이 나오지 않고 있다. 마운드를 앞세워 총력전을 펼치는 SK와 삼성의 야구 스타일로 볼 때 앞으로도 퀄리티 스타트가 나올 것 같지 않다. 그렇다고 타격전도 아니다. 두 팀이 2차전까지 뽑아낸 점수는 총 5점에 불과하다. '한 점만 내고 지키자'는 식의 이것도 저것도 아닌 경기가 계속되고 있는 것이다.
이대로 삼성이 한국 시리즈 우승을 차지한다면 당분간 단기전에서는 계속 선발들이 기를 펴지 못하는 불펜 야구가 유행할 것으로 보인다. 물론 이기는 것도 중요하지만 야구는 기록의 스포츠다. 의미 없는 승리가 계속해서 나오는 것은 한국 야구의 발전을 위해서도 좋지 않다. 선수들에게 충분히 기회를 주고 능력을 펼칠 수 있게 하는 것이 바로 양팀 감독이 강조하는 '믿음의 야구'가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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