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부선 폭로 "딸 이미소 친부=유부남 재벌..엽총으로 죽도록 맞았다"[종합]
OSEN 박소영 기자
발행 2020.08.18 09: 22

배우 김부선이 자신의 파란만장했던 연애와 결혼, 딸과 딸의 친부에 대한 속내를 털어놨다.
김부선은 17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누구나 로망은 있다. 연예계 데뷔할 때 고향 선배는 내게 충고하길 여배우로 살아가려면 고독을 운명처럼 여기고 고독을 벗삼아야 한다고 했다. 즉.연예 같은 거 꿈도 꾸지 말라는 거다”라는 글을 적었다. 
이어 그는 “돌이켜 보면 선배 충고 틀렸다. 여배우로 성공하려면 세상 무서운 것도 경험하고 이놈 저놈 만나 다양한 사랑도 해보고 깨지고 부딪치고 피터지는 아픔도 겪어 봐야 찐 연기가 나오는 것이라고 충고 했어야했다. 그 시대는 그랬었다. 가장 순수하고 피가 뜨거웠던 끼 많은 날라리 20대 나는 외로웠다”라고 회상했다. 

김부선씨가 인터뷰를 하고 있다. /pjmpp@osen.co.kr

김부선은 영화 ‘애마부인3’로 큰 인기를 끌었지만 27살이던 1988년 미혼모로 딸 이미소를 출산, 홀로 키우고 있다. 과거 한 토크쇼에서 그는 “딸의 친부가 17년 만에 나타났다. 당시에 분식집을 하고 있었는데 그 사람이 나에게 '창피하게 이런 장사를 하냐'고 윽박 지르더라"라며 위자료 10억 원을 제시했다는 일화를 밝힌 바 있다. 
상대는 재벌이라고. 김부선은 “재벌가 남자를 만났고아이를 낳았고 잔인하게 버림받았다. 유부남이였다. 졸지에 미혼모가 된 것이다. 상상도 못한 일이 현실이 된 것이다. 본능에만 충실했다. 주연배우에서 단역배우로 순식간에 전락했다. 괜찮다 감사했다 이게 어디냐. 난 아이 굶기지 않고 살아내야하는 미혼모였으니까. 임신소식을 듣고 아이아빠는 그랬었다. ‘아이 낳지마라 난 책임못진다 정 낳겠다면 제주도 고향가서 낳고 뱃놈을 시키던 해녀를 시키던 하고 난 책임없다. 책임같은거 묻지마라’ 청천병력같았다”고 당시를 떠올렸다. 
이어 그는 “그와 보낸 그 시간들 그가 내게 말했던 달콤한 속삭임들과 내게했던 말들이 그 추억들이 호락호락하지 않는 섬처녀 신인배우를 꼬셔내기 위한 거짓이였다니. 아이아빠는 그렇게 임신 2개월 때 날 떠났다 그렇게 끝났다. 숨어지내다 만삭을 앞두고 고향으로 내려갔다. 어머니는 충격으로 종일 구토와 설사를 했고 세상에서 가장 무섭고 가장 사랑하는 내언니는 달리는 트럭속으로 날잡고 울면서 뛰어 들어갔다. 같이 죽자고 사랑하는 가족들을 배신하고 그렇게 눈물로 미소를 낳았다”고 부연했다. 
“미소아빠를 만나고 싶었다. 옛말에 씨도둑은 못 한다더니 닮아도 너무 닮았다”던 김부선은 “담배를 한대 피더니 어렵게 말을했다 ‘부선아 너는 처녀고 나는 유부남이잖아 난 이혼만은 죽어도 못해준다는 아내가 있고 아들이 둘이다 그들을 버릴수없다 미안하다 너가 이 아이 행복을 위해서 아기 미래를 위해서 아기 잊고 살아라 넌 새출발해라 결혼도 하고 잘 지내려면 돈이 필요할거다 엄마가 목돈 준다더라’. 그렇게 돈받고 아기보내고 처녀처럼 내숭떨고 살다 좋은남자만나 가정을 이루라는 말을 했었다 망연자실 이였다”고 고백했다. 
울부짖고 소리치며 사납게 달려들었다는 김부선에게 상대는 사냥용 엽총 개머리판으로 폭행했다고. 김부선은 “감히 누구에게 소리지르냐며 얼굴 형태를 알 수 없게 총으로 맞았고 쓰러진 내게 분이 안 풀렸는지 남자의 손과 등산화 신은 발로 나는 죽도록 맞았다. 간신히 도망쳤다”며 “눈만 뜨면 성북동 딸 친가와 아이 아빠 집을 오가며 짐승처럼 그들 집 앞에서 아기 달라고 내아기 내놓으라고 울부짖고 신음하고 소리쳤다. 15개월 후 악몽같은 시간이 지나 드디어 내아기를 보내준다며 그들은 항복했다”고 밝혔다. 
서약 내용은 이러했다. 1 위자료를 일체요구하지않는다 2 양육비를 일체요구하지 않는다 3 아이아빠를 다시만나 부적절한 관계를 맺으면 내가 오천만원을 지급한다 등. 김부선은 1990년 딸의 친부 측과 합의했고 지금까지 30년간 미혼모로 살고 있다고 했다. 딸의 친부는 미국으로 부부여행 떠났고 그곳에서 또다시 낯선 여인과 눈이 맞아 부인과 이혼하고 재혼했고 딸을 또 낳았다고. 
김부선은 “미혼모의 삶 나홀로 아이 양육하고 교육시키고 먹이고 입히고 산다는 거 결코 녹록치 않았다. 연예는 사치였다. 미소를 대학까지 보낸 후 내 삶은 책임과 긴장에서 조금 풀렸다. 딸과 조카 나 셋이 살다 조카애가 독립을 했고 근처에 아파트를 마련하여 나갔다. 미소도 함께 따라갔다”며 “내딸과 날 물고 뜯고 모함하고 저주하고 비난하는 사람들아. 너희들 중 죄없는 사람만 돌 던지라”고 호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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