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유강이 말하는 김성근 감독과의 인연
OSEN 이상학 기자
발행 2010.12.27 07: 19

"제 야구인생에 있어 은인 같은 분이죠".
한화 2년차 사이드암 허유강(24)은 SK와 경기 때마다 잊지 않는 게 있다. 바로 김성근 감독에게 인사를 드리는 일이다. 항상 밝은 미소를 머금고 다니는 허유강은 김성근 감독 앞에서도 미소를 잃지 않는다. 오히려 더 환해진다. 그런 허유강을 바라 보며 김 감독도 환하게 웃는다. 같은 팀도 아니고 나이차도 많이 난다. 이렇다 할 인연의 고리가 없어 보이는 노감독과 젊은 선수 사이에는 어떤 일이 있었던 것일까.
때는 허유강이 대학 1학년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경기고를 졸업하고 성균관대에 진학한 허유강은 야구에 대한 싫증을 느끼기 시작했다. 성균관대는 대학야구에서 훈련이 가장 많기로 유명하다. 질풍노도의 시기였던 허유강은 팀을 이탈하기에 이르렀다. 팀에서 나와 집에서 하루하루를 보냈다. 감독, 코치들은 물론 교수들에게서도 전화가 계속 걸려왔지만 그는 "야구를 하지 않겠다"고 단호하게 말했다.

그러던 어느 날. 허유강은 "어머니께서 전화 한 번 해보라고 번호를 하나 주셨다. 나는 당연히 싫다고 했다. 그때 감독·코치·교수님들이 한창 전화올 때였다. 그런데 어머니께서 야구와 관련된 게 아니니까 딱 한 번만 전화해 보라고 하셔서 전화를 했다"고 떠올렸다. 난생 처음 보는 전화번호를 눌렀다. 수화기를 넘어 들리는 목소리는 놀랍게도 김성근 감독. 말문이 막힌 허유강은 김 감독이 "한 번 보자"는 말을 거절할 수 없었다.
당시 야인이었던 김 감독은 인스트럭터 자격으로 대학, 고교를 넘나들며 왕성하게 활동할 때였다. 허유강을 처음 본 것은 경기고 시절이었고 때마침 성균관대 인스트럭터로 와있던 시기였다. 김 감독과 서울시청 앞 커피숍에서 만나기로 약속했지만 허유강의 마음은 갈팡질팡이었다. 그는 "전화했을 때 감독님 특유의 목소리가 들려 정말 당황했다. 약속 장소에 갈까 말까 망설였는데 그러는 사이 2~3시간이 지났다. 한번만 보자고 해서 굳게 마음먹고 갔다"고 떠올렸다.
놀랍게도 그 때까지 김 감독은 커피숍을 지키고 있었다. 허유강은 "감독님께서 10분만 더 있다가 가려고 하셨다"며 웃었다. 그 자리에서 김 감독은 허유강을 설득했다. 허유강은 자신을 위해 3시간 넘게 기다린 노감독을 모른 척 할 수가 없었다. "워낙 설득력있게 말씀을 하셔서 그대로 넘어가고 말았다. 곧바로 야구부에 들어가 야구공을 다시 잡았다"는 것이 허유강의 말이다. 그 길로 방황을 접고 야구에 전념한 허유강은 대학리그에서 알아주는 잠수함 투수로 성장했고, 한화에 2차 2번으로 지명돼 프로 유니폼까지 입었다.
허유강은 "경기고 출신이라 감독님께서 나를 '경기'라고 부르신다"며 "감독님께서 예쁘게 봐주신 것 같다. 대학 때 직접 많은 지도를 받았는데 그때마다 손목을 잘 사용한다고 칭찬해주셨다. 야구선수로서 이런 손목을 가지기 힘들다고 하셨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밖에서 볼 때에는 감독님이 무서울지 모른다. 운동할 때에는 정말 포스가 있으시다. 하지만 운동 외적으로는 개그도 많이 하시고 정말 따뜻하신 분이다. 선수들만 알 수 있는 그런 정이 있다. 지금도 감독님이 크게 어렵게 느껴지지는 않는다"며 웃어보였다.
"감독님 덕분에 다시 야구를 할 수 있었다"며 늘 김성근 감독에 대한 고마움을 마음 속 한곳에 간직하고 있는 허유강. 과연 내년에는 김 감독 앞에서 성장한 제자의 모습을 보여줄 수 있을지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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