삽질에 사라질 뻔한 고대 성곽도시
OSEN 강희수 기자
발행 2011.05.26 17: 11

유네스코 세계 문화유산
중국 산시성 핑야오 고성
[이브닝신문/OSEN=타이위안(중국)=김중기기자] 지난 16일 인천에서 중국 산시성(山西省) 타이위안으로 가는 하늘길이 열렸다. 그 첫 비행기를 타고 중국 고대 성곽도시 중 하나인 핑야오 고성에 갔다.

타이위안에서 버스로 약 1시간 20분 걸리는 핑야오 고성은 1997년 유네스코가 지정한 세계문화유산이다. 도시의 건설은 기원전 800년 경 주나라로 거슬러 올라간다. 현재 성벽은 1370년 명나라 때 새로 쌓은 것이다. 높이 12m 둘레 6.4km의 성벽이 사각형 모양으로 도시를 에워쌌다. 이성계가 조선을 건국하기 22년 전이다.
아낌없이 주는 성벽
성문 앞 주차장에 내리자마자, 지도를 팔려는 상인들이 모여든다. “뚜오샤오 치앤.”(얼마예요?) 상인이 손가락 2개를 편다. 전기 모터카에 몸을 실었다. 성 안의 주 교통수단은 자전거와 모터카다. 성벽 군데군데 황토가 드러났다. 명ㆍ청시대 서민들은 이 벽돌들을 집짓기 재료로 사용했다.
‘아낌없이 주는 성벽’은 20세기 들어 최대 위기를 맞는다. 가이드에 따르면 중국이 개혁개방노선을 택한 1978년경 아파트를 짓기 위해 성벽을 허물기로 했다. 이때 한 대학교수가 나섰다. 그는 ‘후대에 큰 잘못을 저지르는 일’이라며 곳곳에 탄원서를 내고, 결국 중국 정부마저 설득시켰다. 지금은 전 세계에서 1년에 100만명이 넘는 관광객이 핑야오 고성을 찾는다. 고성 하나가 주민 9만명은 물론 핑야오 45만 인구를 먹여 살리고 있다.
핑야오 고성은 계획도시로 설계됐다. 대동맥 구실을 하는 큰길과 작은 길들이 서로 직각으로 교차하며 네모반듯한 블록을 이룬다. 중심가에서는 누각 하나가 랜드마크 역할을 한다. 스러우라 불리는 이 누각은 성에서 가장 높은 건물로 1756년 지금의 모습으로 지어졌다. 좁은 통로를 따라 꼭대기에 오르면 성곽 전체가 한눈에 들어온다.
청나라 첫 은행 ‘표호’
상가에서는 흥정을 해보라. 여성용 손거울을 파는 노점상에게 가격을 물었다. 그는 코팅한 가격 리스트를 보여주며 25위안(4200원)이라고 했다. 다른 노점상들도 비슷한 가격표를 가지고 있는 듯했다. 동행한 타 매체 기자는 “더 비싸게는 안 받겠다는 약속인 것 같다”며 “너무 심하게 깎지는 말라”고 당부했다. 5위안(840원)을 깎아 20위안(3400원)에 거울을 구입했다. 어느 수제 꽃신 가게에서는 기자가 흥정을 시도하자마자 영어로 ‘에누리 사절’(No discount)이라고 쓰인 팻말을 가리켰다.
지금은 관광지로 변신했지만 핑야오 고성은 청나라 때만 해도 상하이에 버금가는 상업 중심지였다. 19세기 중국 최초의 은행 표호가 여기서 탄생했다. 당시 금ㆍ은을 결제수단으로 지니고 다니던 상인들은 도적의 위협으로 애를 먹었다. 이에 핑야오를 본거지로 둔 중국 최대 상단 진상(晉商)은 지점망과 신용을 바탕으로 어음을 발행했다. 상인들은 종이 한 장으로 자신이 맡긴 금ㆍ은을 중국 어디서나 돌려받을 수 있게 됐다. 당시 진상의 자금력은 아편전쟁 배상금을 청나라 대신 물어줬다는 말이 있을 정도다. 가장 오래된 표호인 ‘르승창’이 박물관으로 남아 있다.
골목골목 자전거로 누벼라
르승창 말고도 불교, 도교사원 등 역사적 건축물 18개가 도시에 퍼져있다. 다 들어가려면 120위안(2만원)을 내고 통표를 끊어야 한다. 하지만 사전 지식이 없다면 똑같은 건축물일 뿐이다. 일반 여행자는 골목골목을 다니며 ‘명ㆍ청시대 한족 문화가 가장 잘 보존된 고성’이라는 수식어를 온몸으로 느껴보는 편이 낫다. 큰길가 자전거 대여소에서 하루 10위안(1700원)에 아침 7시부터 밤 12시까지 자전거를 빌려 준다. 단 보증금 100위안(1만7000원)을 준비해야 한다. 이 돈은 자전거를 반납할 때 돌려받는다.
반가운 한글 간판이 눈에 들어왔다. ‘벚꽃마을’(Sakura Cafe bar), 우리나라 여성이 주인이다. 그는 중국인과 결혼 후 여행자 카페로 제2의 삶을 일궜다. 윈난에 낸 가게가 ‘세계여행 안내서’ 론리플래닛에 실리면서 대박이 터졌고 리장과 핑야오에도 분점을 냈다. 모두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성곽도시다.
도로를 막은 철제 바리케이드를 넘어 거주지구로 들어서면 분위기는 180도 달라진다. 울긋불긋 홍등으로 장식한 거리 대신 먼지를 품은 집들이 나타난다. 웃통을 벗은 청년들이 집수리를 하고 있다. 시멘트는 쓸 수 없다. 벽돌과 황토뿐이다. 세계문화유산에 살려면 지켜야 할 게 많다. 한 청년이 사진을 찍지 말라고 손짓한다. 이미 수십만 명의 관광객들이 그들을 향해 셔터를 눌렀을 것이다.
돌아오는 길, 객잔 뒤편 공연장에는 전통공연을 보려는 사람들로 발 딛을 틈이 없다. 핑야오 고성의 밤이 시작된다.
◆아시아나 전세기 10월28일까지 운항
인천과 중국 타이위안을 왕복하는 아시아나 전세기는 10월28일까지 매주 월, 금요일 운항한다. 전세기 한국사업자는 레드팡닷컴(02-6925-2569)이며 전국 여행사에서 관련 상품을 연합판매 하고 있다.
한식의 유래지 몐산
개자추 무덤이 있네
 
산시성의 주요 산업은 광산업이다. 중국 석탄의 3분의 1이 매장돼 있다. 거대한 부를 축적한 광산업자들은 관광산업에 눈을 돌리기 시작했다. 한식의 유래가 된 몐산(2556m)도 그 중 하나다.
몐산 해발 1800여m에 개자추의 옷을 묻었다는 무덤이 있다. 개자추는 춘추시대 진나라 문공이 19년간 망명했을 때, 자신의 넓적다리 살을 베어 먹이며 곁을 지킨 신하다. 왕이 된 문공은 몐산에 은거한 개자추를 끌어내려 불을 지르지만 개자추는 “신하들이 벼슬을 놓고 다투는 게 부끄럽다”며 끝내 나오지 않고 3일 뒤 불에 탄 시신으로 발견된다. 한식은 개자추를 기리기 위해 3일 동안 찬 음식을 먹는 날에서 시작됐다.
해발 고도가 정확하다면 개자추 무덤은 설악산 대청봉(1708m)보다 더 높은 곳에 있는 셈이다. 하지만 올라가는 길은 전혀 힘들지 않다. 깎아지르는 절벽에 4차선 너비의 도로가 산중턱까지 나 있다. 차로 이동해 케이블카를 타면 바로 개자추 무덤이다. 동네 뒷산보다 오르기 쉬운 길이다. 13존의 등신불을 모신 정과사도 도로에서 엘리베이터를 타면 곧장 간다. 도교사원인 대라궁, 당태종이 만들었다는 1000척 높이 계단 텐차오도 마찬가지다. 이 모든 유적들은 광산부호가 1990년대 말부터 2000년대 초반에 걸쳐 18억위안(3000억원)을 투자해 복원됐다.
천혜의 절경과 문명의 편리함이 만났다. 다만 환경파괴가 우려된다. 몐산 전체 직원 수만 6000명이라고 한다, 절벽 도로 아래에 있는 직원 기숙사는 몐산의 발전 시설을 겸한다.
haahaha@ieve.kr /osenlife@osen.co.kr
<사진> 산시성은 북으로는 만리장성이 내몽골 자치구와 경계를 이루고 동쪽으로는 베이징을 감싼 허베이성과 맞닿아 있다.(사진 맨 위. 지도의 빨간 부분) 아래 사진 길 끝에 보이는 시루는 핑야오 고성에서 가장 높은 건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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