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이 찾아오는 2월 말, 서울 삼청동으로 들어가는 길목의 한 카페에서 배우 공효진을 만났다. 스타일리시한 국내 대표 패셔니스타이자 매번 흡인력 있는 연기로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는 공효진을 만난다는 것은 궁금하면서도 설레는 일이다. 시크하면서도 털털한, 가감없이 솔직한 생각들을 늘어놓는 공효진은 그간 봐왔던 화면 속의 그녀의 모습과 꼭 닮았다.
살짝 인상을 찌푸리며 '논란의 시대'에 사는 요즘에 대한 한탄 섞인 푸념을 하다가도, 한 순간 눈가에 가득 웃음을 머금은 채 지그시 상대방을 바라보며 질문을 경청하는 모습에서는 왜 그녀가 '공블리(공효진+러블리)'라 불리는 지 새삼 느낄 수 있었다. 하정우와 주연을 맡은 영화 '러브픽션'(전계수 감독, 2월 29일 개봉)의 희진으로 돌아온 공효진은 스스로를 '쉼표가 다른 배우'라고 말했다. 이것은 '공효진표 연기'라 부르는 것에 대한 하나의 대답이기도 하다.
- 영화 '러브픽션' 보고 만족스러웠나?
▲ 만족한다. 시나리오가 정말 재미있었는데, 영화의 길이상 조금씩 잘려나가야 한 게 아무래도 좀 아쉽긴 하지만, 그래도 재미있더라. 짧은 신 귀여운 신들이 몇 개 잘려나갔다. 예를 들어 주월(하정우)이 희진(공효진)에게 고백한 다음 희진도 마음을 열게 되고, 환희에 찬 주월이 좀도둑을 만나는 신이 있었다. 도둑이 "가진 거 다 내놔!?"이러면 주월이 "난 가진 게 사랑밖에 없는데"라고 대답하는 장면 등이다.
- '최고의 사랑'을 찍고 바로 '러브픽션'을 촬영했다. 체력적을 힘들지는 않았나?
▲ 그런 이유로 개인적으로는 몸이 많이 말랐을 상태다. 보면서 '아우 말랐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내가 너무 마른 것만 보이니까. 그런데 어쨌든 영화를 찍는 것은 내게 또 다른 재충전의 시간이다. '러브픽션'은 굉장히 수월하게 찍었다. 커트들이 현란하지 않고, 단조로운 편이라 별 고생없이 찍었다.
- 베드신에서 등장한 '겨털(겨드랑이 털)'이 네티즌 사이에서 굉장히 화제다. 이렇게 파장이 클 줄 알았나? 여배우로서 용기도 필요했을 것 같은데?
▲ 생각보다 (영화 출연) 결정을 빨리 했고, 찍을 때도 걱정이 없었다. 검색어 1위를 하니 좀 놀라긴 했다. 아무래도 사람들이 이 영화에 대한 호기심이나 궁금증이 많아서 그런거 같다. 다행인 것 같다. 주변에서는 2~3개월 지나면 '겨블리'가 될 거라고도 하더라. 하하.
- 겨털말고 감독이 공효진 씨에게 특별히 요구한 것이 있나?
▲ 자유롭고 당당하고 자신감 넘치는 모습을 원하셨다. 삶에 여유로운 모습, 감정에 여유가 있는 사람.
- 희진과 실제 공효진 씨의 모습이 많이 닮았을 것 같은데?
▲ 어떤 면은 그런 것 같다. 작품을 찍을 때마다 매번 현재의 나와 비슷하다고 생각한다. 격동의 시대 아닌가. 매번 다 내가 달라진다. 29세가 넘어서면 그 때부터는 격동의 시기라고 생각한다. 어제한 말이 다르고 오늘 한 말이 다르고 그러지 않나. 내 나이의 나를 대변해주는 것 같다. 알게 모르게 영화 속 인물의 성향을 따라가고 있기도 하고. 완벽한 내 모습은 내 안의 어떤 것을 부각시키고 어떤 것은 감추는 것이 아닌가란 생각이 든다. '러브픽션'을 찍으면서 갑자기 구애정이 튀어나올 때도 있었지만 다른 사람인 척 하고 사는 것도 재미있다. 내가 나인데 나 같지 않은 척 하는 것. 그게 배우니까 문제가 되지 않는 삶을 살고 있지 않나. 배우는 그렇기에 즐거운 삶인 것 같다. 여러 사람을 사랑해 보기도 하고, 큰 기쁨도 슬픔도 겪어보고 정말 흥미로운 직업이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배우를 꿈꾸는 게 아닐까.
- '러브픽션'은 무엇을 얘기하려는 영화인가? 남자가 어느 순간 여자한테 실망하고 질리는 모습? 아니면 사랑은 다 변하기 마련이라는 것을 보여주는 것인가?
▲ (가만히 생각하더니) 이 영화가 남자를 꾸짖는 영화는 아니다. 사랑을 하고 그 사랑이 식기도 하고 다시 불타기도 하고. 고대에서부터 사랑이란 존재가 위대한 감정 중의 가장 위대한 것으로 꼽히지 않나. 하지만 옛날 사랑에 대한 생각과 지금 시대의 사랑은 또 다른 것 같다. 감정도 우스워질 때가 있고, 그냥 순간적이기도 하고, 어떻게 보면 한 순간에도 식어버릴 수 있는 흔해빠진 것이 또 사랑이 될 수가 있는 것 같다. 이 영화는 사랑에 대한 감정을 현재 현실에 맞게 솔직하게 만든 영화라서 보는 분들이 신선해 하실 수 있을 것 같다. 사실은 지금까지 사랑에 대한 감정과 얘기를 미화시키고, 유화된 게 많지 않았나. 그런데 사실상 사랑이란 감정은 자주 찾아오고 자주 떠나고 자주 변하고 있다. 이것은 물론 사랑에 대한 나만의 생각이다. 감독님은 이런 생각으로 만든 것이 아닐거다(웃음). 어쩌면 사랑의 가벼움에 대해 말하는 영화가 아닐까라고 생각한다.
- 극중 주월처럼 한 순간의 실망으로 누군가에게 상처준 적이 있나?
▲ 어렸을 때 학창시절 때는 '밥먹고 고춧가루 끼면 정말 싫을 것 같아', '콧구멍을 후비면 정말 싫을 것 같아' 이런 생각 하지 않나. 하지만 이제 안 그렇다. 나이를 먹어봐라. 세상과 인간을 알게 될수록 그런 것들을 교묘하게 받아들이는 것 같다. 사랑하는 사람에 대해 처음에 갖는 생각은 다 환상인 걸 알고 있다. 그렇기에 작은 것에 확 싫어지거나 말로 사람에게 다시 주워담을 수 없는 상처를 준 적은 없다.

- 공효진 씨에게 이 역할을 제안한 건 하정우였다고?
▲ 맥스 광고를 찍을 때 정우 오빠가 재미있는 영화가 있다고 제안했다. 시나리오를 읽고 단번에 결정을 내렸다.
- 사실 영화보다는 드라마에서 공효진 씨의 흥행력이 더 좋았다.
▲ 맞다. 드라마의 커리어를 잘 쌓아왔다. 영화는 사실 들쑥날쑥 했지. 생각해 보면 내가 찍은 영화들은 상업적이란 느낌이 없는 것들이 대부분이었다. '지금 이대로가 좋아요'도 그렇고 '가족의 탄생'고 그렇고 '다찌마와 리', '행복' 등 여러 캐릭터를 가능하게 한 작은 역들도 했다. 그렇게 영화에서는 나름대로 내공을 쌓은 것 같다. 작은 역이라도 임팩트 있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하는지를 그 때 알게 됐다고 할까. 그러다가 '미쓰 홍당무'라는 일생 일대의 작품을 만나게 됐고 고민하고 해냈다. 그 때는 내 연기 패턴이 아니었다. '아 이런 방법도 있구나', '연기하는 방법이 세상에 무궁무진하구나'란 생각을 했다. 사실 그 전까지는 연기에 대해 가볍게 느껴질 지는 몰라도 어쨌든 연기가 다 흉내내는 것이고 척이는 게 아닐까라고 생각했는데, '가족의 탄생'을 찍으면서 그런 것만은 아니구나란 것을 느꼈다. 새로운 게 있을 수 있겠구나, 란 생각. 만족도도 높았고 '미쓰 홍당무' 때는 정말 150% 만족했다. 다시 찍으면 그렇게 못할 것 같다.
- 배우로서 본인의 단점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 아주 평범한 역할이나 단순한 상업영화가 어울리지 않는다는 거겠지. 그래도 드라마를 통해 캐릭터가 '제(공효진)화' 되는 것이 있는 것 같다. 연기가 뭐가 맞다 틀리다를 판단하기는 어렵다. 우리나라 전 국민의 기호도 솔직히 모르겠다. 다만 다양하게 어디든지 다 잘 어울렸으면 좋겠는데 그건 좀 약하지 않나.
- 주변에서도 본인을 '공블리'라고 부르나?
▲ 류승범만 빼고 그렇게 부른다. (하)정우 오빠도 '공블리 양 뭐해요' 이러고, 차승원 씨도 '블리야' 이랬다.
- 드라마 '네 멋대로 해라'가 생각난다. 왠지 양동근과 공효진은 연기하는 것을 보면 비슷한 느낌이 날 때가 있다.
▲ 양동근 씨도 종잡을 수 없는 리듬감이 있어 그렇지 않을까. 나는 쉼표의 길이와 리듬감이 다르다는 말을 많이 듣는다. 대본 상의 '점점점'의 길이가 다른 사람들과 다른 것 같다. 그렇게 '마'가 생기면 보는 사람이 긴장하는 것 같다. 안정된 템포로 연기를 하면 편안한데 그런 나만의 템포로서 보는 사람을 긴장시킬 수 있는 것 같다.
- 요즘은 류승범 씨와 한 작품에 출연 제의가 들어오지 않나?
▲ 희한한 데 같이 들어온 것은 없다. 영화 쪽에서 같이 안 시키려고 하는 것 같다(웃음). 광고는 들어올 때가 있는데 우리가 부부도 아니고 우리 관계를 상업적으로 이용하지는 말자란 얘기를 했다.

- 좋아하는 선배가 있다면?
▲ 많은데 최근 '범죄와의 전쟁:나쁜놈들 전성시대'를 잘 봤다. 최민식 선배는 승범이 옆에서 껴서 술을 많이 먹었다. 너무 말씀도 잘 해 주시고 재미있고 편하고 친구처럼 잘 맞춰주시는 분이다. 눈을 보면 빨려 들어 갈 것만 같아. 마인드가 굉장히 젊으시다. "효진아 격정 멜로 한번 해야지"이러신다. 이러면 옆에서 승범이가 "마음껏 하시라", "제발 하시라"고 한다. 하하.
- 사극이 열풍인데 사극에 도전해보고픈 생각은 없나?
▲ 어우. 요즘 그런 질문을 정말 많이 받는다. 그런데 사극은 정말 어려울 것 같다. 막 도전하기에는 진짜 어려운 작품이 아닌가. 대사나 연기하는 방법 자체가 완전히 다르다. 허투루 연기하다가 발연기 논란이 일어나면 어쩌려고. 13년 연기 했는데 갑자기 논란이 나오면 좀 그렇지 않나.
nyc@osen.co.kr
이대선 기자 sunday@os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