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구는 구라다] 이젠 박찬호가 '갑'이다
OSEN 박선양 기자
발행 2012.04.11 11: 47

■이젠 박찬호가 갑이다
 
▲무릎팍 도사의 가르침

안철수, 추성훈, 한비야...
무릎팍 도사가 우리에게 준 선물이다.
배우 윤여정도 여기 출연한 적 있다. 그리고 불세출의 멘트 날렸다.
윤여정 “배우가 가장 연기 잘 할 때가 언젠줄 아세요?”
무릎팍 도사 “???”
윤여정 “돈이 필요할 때 연기를 제일 잘해요.”
푸하하하. 무도, 건도, 올밴 다 넘어갔다. (그립다. 무릎팍 도사.)
http://www.youtube.com/watch?v=hmCvav6pzvU
40년 넘게 연기한 배우가 내린 명쾌한 답이다.
그래서 정했다. 오늘의 키워드. ‘절실함’이다.
 
▲그는 테스트 받은게 아니다
우리의 영웅, 시범 경기 때 엄청 맞았다.
기록 나열하기 민망할 정도로.
그래서 걱정한 사람 많았다. “저래서 1군에 들겠어?”
한대화 감독 조차 때론 난감한 표정이었다.
하지만 이거 페인트 모션이었다(전문용어로 뼁끼).
사실 영웅에게 시범경기가 테스트일 리 없다.
이글스가 선발 한 자리 그에게 맡긴다는 거 애초부터 의심할 여지가 없었다.
정승진 이글스 사장의 말이다.
“박찬호가 구단 전력에 미칠 영향을 따져 본 적이 없다. 그를 복귀시켜 팬들 앞에 서게 하는 것이 한화 사장으로서 해야 할 책무다.”
우리 야구사에 구단 CEO가 이렇게 멋지고, 강력한 소신을 밝힌 적 몇 번이나 있었는가.
다시 한번 상기하자.
그의 영입은 모기업 회장의 지극한 관심사항이었다.
정리하면 이렇다.
‘시범경기 잘 던지면 1군, 못 던졌다고 2군?’
처음부터 영웅은 이런 데 신경 쓸 필요 없었다.
그러니까 해보고 싶은 것, 던져보고 싶은 것 다 할 수 있었다.
▲구라 1 : 그는 일부러 맞았다?
영웅이 줄곧 했던 말이다. “나, 맞으면서 적응해 간다.”
이 얘기 들은 선동렬 감독은 “과연 베테랑다운 전략”이라고 수긍했다.
맞으면서 적응한다? 뭔 얘기지?.
투수 안 해본 우리들 알 길이 없다. 아마 기술적으로 뭔가를 깨닫는다는 얘기겠지.
하지만 이 말 좀 다른 차원으로 적용시켜 보자. ‘전략’의 차원으로.
그러기 위해서 구라 하나를 전제로 깔아보자.
‘일부러 치라고 던져준 거 아냐?’ (물론 절대 그럴 리 없다. 이거 완전 소설이다.)
왜 그런 전제가 필요하냐고?
지금부터 설명 들어간다.
복귀한 영웅은 큰 짐 두 개를 안고 있었다.
사람들의 어마어마한 기대, 그리고 특혜에 대한 논란이다.
 
 
그의 속마음을 드러낸 인터뷰가 최근에 거의 없다.
작년 12월초 MBC TV 에서 어렵게 그 일단을 찾을 수 있었다.
“이번에 한국 들어오는 거 어떻게 보면 일본 가는거 보다 오히려 더 걱정되고 두렵죠. 한국인데...한국에서 안되면 그 동안의 박찬호의 그런...그건 뭐야 이런 의문을 주게 될 수도 있고...” (박찬호)
아울러 박찬호 특별법으로 불렸던 복귀 과정에 대한 해명도 적극적이었다.
주병진 “그러면 한국에 들어오게 되는 거...특별법은 통과가 된 것입니까?”
박찬호 “(정색하며) 특별법은 아니고, 동의예요, 동의. 특별법은 제가 특별한 사람이니까 법을 만든다...그건 아니예요. 아닌 것 같아요.”
주병진(곤란해 하면서 급히 말을 감춘다) “제가 그런 거 아니구요. 읽었어요, 어디서…”
http://ozzatv.co.cc/tudou/h/?xink=http://www.tudou.com/v/ZFFk8mKKMpY/v.swf
‘특별’이라는 말에 대해서는 상당이 예민했다. ‘두렵다’는 표현도 썼다.
편치 않다는 점 여실히 드러난다.
사실 그가 얼마나 좋은 공을 던지느냐를 결정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는 심리적인 요인이다.
그렇게 믿는다.
워낙 섬세한 스포츠고, 그의 성격 아닌가.
 
▲구라 2: 영웅은 타고난 전략가다
3월 내내 모두가 당황할 만큼 실컷 두들겨 맞았다.
그래서 어떻게 됐는가. 편해졌다. 아주 많이.
이제 그가 초반에 몇 점 준다다해도 ‘그러려니’ 할거다. 8점씩 주는 것도 봤는데 뭘…
사람들의 기대치? 많이 낮아졌다.
보는 사람도, 영웅 자신도 훨씬 편해졌다.
반면에 잘 던지면 감동은 두 배가 될 거다. 어쩌면 눈물이 핑 돌지도 모른다.
특별법의 찜찜함? 그것도 많이 희석됐다.
8실점 하는 영웅의 모습을 보며 안쓰러움, 애잔함이 느껴지지 않았는가?
처음부터 ‘씽씽’ 던져댔다면 논란은 계속 부글부글 했을 거다.
하지만 면도도 못한(?) 텁수룩한 영웅이 92년생에게 홈런 맞는 장면을 보면서 이런 마음 웬만큼 사그라들었다.(영웅은 92학번이다)
이제 그가 일부러 얻어맞았을 지 모른다는 말도 안되는 전제를 없애버리자.
그래도 이건 남는다.
‘그는 편해졌다. 홀가분하다.’
 
▲스스로를 절벽에 세우다
편해진 것만으로는 완성이 안된다.
또 한가지 필요한 것은 절실함이다.
다시 글의 처음으로 돌아가자.
무릎팍도사가, 연로한 여배우가 준 교훈이다.
"배우가 가장 연기 잘 할 때는 돈이 필요할 때다."
절실함에 대한 얘기다. (영웅 돈 많다는 댓글은 제발 달지 마시라. 모양 빠진다.)
시범경기 평균자책점 12.96. 마운드에서 모습은 형편없는 을(乙)이었다.
그러면서 스스로를 절벽에 세웠다.
강을 등 지고 진 치고, 갑옷과 속옷을 꿰매는 계백의 전략이다.
짐은 내려놓고, 절실함은 안았다.
그래서 오로지 타자만 바라볼 수 있는 상황을 만들어냈다.
기막히고, 절묘한 국면전환이다.
아마도 이것이 그의 개막 준비가 아니었을까.
부담감, 기대어린 시선, 논란, 불편함...이런 것들 한방에 ‘정리’됐다.
마운드의 환경설정은 공을 던지기 위한 상태로 최적화 됐다.
역설이고 궤변이다. 하지만 영웅의 복귀 이후 처음으로 이런 생각이 든다.
“왠지 잘 던질 것 같다.”
그래서 결론이다.
이젠 박찬호가 갑이다.
백종인 (칼럼니스트) sirutani@hotmail.com
MBC 화면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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