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여정 "베드신, 처음엔 불쾌했지만.."
OSEN 김경주 기자
발행 2012.05.03 10: 14

도대체 이 배우에겐 몇 가지의 색이 있는 것일까.
임상수 감독의 전작 영화 '하녀'에서 재벌집의 모든 일을 총괄하는 나이 든 하녀 병식 역을 맡아 '아더매치(아니꼽고 더럽고 매스껍고 치사하다)'를 거리낌 없이 외치며 강한 인상을 심어줬던 배우 윤여정은 MBC 수목드라마 '더킹 투하츠'에선 대비로 등장, 며느리 하지원을 감싸안는 보드라운 이미지를 보여주고 있다.
어디 이뿐이랴. KBS 2TV 주말드라마 '넝쿨째 굴러온 당신'에선 밉지만 미워할 수 없는 시어머니로 통통 튀는 캐릭터를 소화해내고 있기도 하다.

그런데 이번엔 또 강렬한 '붉은색'이다. 임상수 감독의 7번째 신작 '돈의 맛'에서 윤여정은 대한민국 최상류층으로 모든 걸 다 가진 백금옥 역을 맡아 인간이 보일 수 있는, 특히 돈의 맛에 중독된 사람이 보일 수 있는 욕망들을 가감없이 보여주고 있다.
그리고 그 욕망을 보이는 과정에서 어찌 보면 임상수 감독의 '필수 요소'라 할 수 있는 베드신도 감행하는 파격적 연기 변신을 선보였다. 영화 속에서 젊은 육체인 주영작(김강우 분)과의 정사신을 선보인 것.
그러나 윤여정은 처음에 '돈의 맛' 대본을 받아보고 매우 불쾌했다고 한다. 지난 2일 서울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OSEN과 만난 그는 대본을 보자마자 감독에게 딴지를 걸었다고 했다. 사람들이 김강우와의 베드신을 보고 나면 거부감이 들지 않을까 하는 우려 때문.
"베드신에 포커스를 맞추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김강우와의 베드신은 권력있고 힘 있는 여자의 충동이었고 또 많이 가진 사람은 재미로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해요. 한마디로 그 여자의 만행을 표현하려 했던 것이죠. 이 나이에 노출했다고 해서 관심을 가질 필요도 없고 자꾸 노출, 노출하니까 부끄러워지더라고요. '저 여자가 안되니까 옷까지 벗나' 이렇게 생각하실까봐서요. 사실 저도 처음에 대본을 받았을때 감독에게 딴지를 걸었어요. '이 장면 뭐냐, 사람들이 보면 거부감 들거나 불쾌하지 않겠어? 거의 성폭행 아냐' 그랬더니 임상수 감독이 불쾌하라고 쓴 장면이라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제가 그랬죠. '왜 보는 사람한테 불쾌감을 줘'. 그 때 임상수 감독이 그러더라고요. 제 또래의 할머니들이 이 장면을 봤을 때 일단 '뭐야 저게' 그러다가 속으로는 내심 '나한테도 저런 일이 있지 않을까' 그럴거라고요. 인간이라는 것이 그렇다는 거죠. 임상수 감독은 불편한 진실을 참 많이 건드려요. 그래서 그에 대한 호불호가 갈리죠. 어쨌든 저는 인간의 그런 모습을 표현하는 것에 도구로 쓰였을 뿐이에요."
윤여정은 임상수 감독과 인연이 깊다. '바람난 가족'에서 인연을 맺으면서 이후 '그때 그사람들', '하녀' 그리고 이번 '돈의 맛'까지 벌써 네 작품째다. 앞서 지난 달 30일 열린 '돈의 맛' 제작보고회에서 배우 김강우는 임상수 감독의 직설 화법에 상처를 받았다고 밝힌 바 있다. 그럼 오랜시간 동안 임상수 감독을 봐 온 윤여정은 어떨까. 그저 귀여운 조카 같단다.
"제가 직설화법으로 얘기하는 사람이라 그와 저는 별 문제가 없었어요(웃음). 나이차가 많이 나니까 저한텐 귀여운 조카나 아들 같아서 그런 문제는 없었죠. 그와의 상처는 별로 없어요. 가끔 상수가 저보다 더 심하게 직설화법을 하는 경우도 있긴 하죠(웃음). 이런 걸 그와 통한다기 보단 그가 생각하는걸 제가 이해할 수 있고 그가 뭘 원하는지 알아들을 수 있다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을 것 같아요. 많이 했으니까 많이 알기 때문이죠. 젊은 사람과 제가 코드가 통한다고 말할 수 있겠어요(웃음)."
함께 작업을 한 김강우와 김효진에 대한 질문을 던지자 윤여정은 예의를 지키지 않는 배우들, 후배들에 대한 일침을 가했다. 그와 함께 작업한 김강우, 김효진을 비롯해 현재 함께 호흡을 맞추고 있는 이승기, 하지원은 정말 착하고 예의가 바르지만 간혹 그렇지 않은 배우도 있다는 것. 그러면서 윤여정은 연기자의 기본은 예의라는 말도 함께 전했다.
"강우와 효진이는 정말 열심히 예의바르게 촬영을 했어요. 배우가 연기만 잘하면 되지 뭘 중요하냐 하는데 김흥수씨가 MBC '라디오스타'에서 그러더라고요. '인사 잘하는 배우가 연기를 잘한다'고요. 맞는 말이에요. 배우라는 것이 저의 몸을 도구로 표현하는 것이기 때문에 기본이 안 갖춰진 사람들은 잠깐 잘 할 순 있어보이나 그렇지 않다고 봐요. 그런 면에서 강우와 효진이는 예뻤어요. 인사하고 그런 것들이 쉬워보이지만 안 하는 배우들도 많거든요. 승기와 지원이도 성실히 최선을 다하고 정말 예의있죠. 간혹 설익은 애들이 예의없이 굴죠. 정말 못난건데 본인들은 잘난 건줄 아니까요. 어른이 지나가는데, 사람이 지나가는데 앉아서 다리 쭉 뻗거나 꼬고 있는 사람들이 많아요. 어른을 보면 자동적으로 취해지는 행동이 있잖아요. 그게 다 연기와 호흡인데 그게 안되면 지나가거나 말거나 하는 사람과 어떻게 연기를 할 수 있겠어요."
이번 영화 '돈의 맛'에선 김강우와 김효진, '더킹 투하츠'에선 이승기와 하지원. 젊은 배우들과 함께 호흡하며 작품을 해 나가는 윤여정이기에 그들의 기운을 받아 점차 더 생기 넘치는 연기를 할 수 있는 것이 아닐까. 그러나 그는 오히려 자신의 늙음이 더 보일 뿐이라는 심경을 털어놨다. 특히 밤을 새며 촬영할 때 더욱 그렇다고.
"젊은 배우들과 함께 촬영하면 제가 더 늙어보여요. 같이 밤을 새면 저는 죽겠고 비틀거리는데 그들은 아니잖아요. 제가 젊어지는게 어딨겠어요. 제 늙음이 더욱 더 보일 뿐이에요. 그래서 밤새는 것이 제일 싫어요. 밸런스가 안맞으면서 혀가 굳어지고 아주 속상할 따름이죠."
사람에게 있어 나이를 먹어간다는 것은 피할 수 없는 숙명이기도 하다. 이는 배우에게도 마찬가지. 특히 여배우에게 늙어간다는 것이란 매우 치명적인 일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비련의 여주인공이었던 자신이 하루 아침에 여주인공을 낳아준 어머니가 돼 있을테고 또 눈 깜짝할 사이에 그 어머니의 어머니가 돼 있을테니 말이다. 윤여정은 이러한 시기를 잘 겪어야 한다고 후배들에게 아낌없는 조언을 해주었다.
"30~40대에는 참 많이 좌절하게 돼있죠. 주인공에서 이모, 고모로 떨어지는데 어떤 배우가 좌절을 안 하겠어요. 굉장히 스트레스고 설명할 수 없는 박탈감이 오죠. 소외된 것 같은 느낌 때문에 정신과 치료를 받는 애들도 있어요. 그렇지만 위기가 정말 기회에요. 그걸 잘 버티면 좋은 배우가 되는 것 같아요. 스타나 주인공, 그건 잠깐이에요. 꽃도 잠깐 피잖아요. 살아남아 있는 것을 본인이 터득해야 해요. 본인이 터득해야지 충고라는 게 어떤 일을 당했을 때 내 몸으로 느껴지지 않으면 들리지 않는 법이죠. 서럽고 분해도 그럴 때 일수록 마음을 다 잡고 있어야 해요. 인생은 내 것이기 때문에 본인이 해결 안 하면 아무도 도와주는 사람이 없어요. 대신 살아줄 수는 없잖아요."
'윤여정'하면 누구 할 것 없이 충무로 대표 연기파 배우임을 인정할 것이다. 여기에 토를 달 수 있는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될까. 그런 그도 많은 배우들이 고민하는 것과 똑같은 고민을 한 적이 있다고 털어놨다. 그러나 그런 시기를 버티고 나니 지금이 더욱 감사하다고.
"어느 순간에 저도 막 쓰임을 못 당한다 생각한 적이 있었어요. 그 때 내가 연기자 생활을 해야하나 그런 적이 있었죠. 그걸 잘 견디고 계속 하기를 잘 한 것 같아요. 제가 만약 '더러워, 안해' 그랬다면 감사를 모르고 떫은 것만 남아있었겠죠. 견디고 제가 했기 때문에 지금이 있는 것 같아요. 사람이 어떻게 계속 승승장구를 하겠어요. 안 될때는 불평하고 세상이 원망스럽고 그렇지만 그걸 다 버텨야 하더라고요. 그 때 아마 포기했다면 좋지 않게 남았을거에요."
수많은 감독들, 배우들과 함께 작품을 해 온 그도 혹시 한 번 쯤 이 사람과 작업을 해 보고 싶다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이 있을까. 그는 딱히 그런 사람이 생각나지는 않으나 다만 젊은 감독과의 작업은 피하고 싶다는 말을 남겼다. 젊은 감독들의 혈기왕성함을 자신이 버텨낼 수 없다는 이유.
"저는 많이 해본 사람과 작업을 하는 게 편안해요. 새로운 사람과 하려면 겁나고 그렇더라고요. 제가 영화를 전문적으로 배워서 한 게 아니라 잘 모르니까 여러 감독하고 하면 좋죠. 저의 다른 면을 뽑아주면 정말 좋으니까요.. 그런데 너무 젊은 감독하고 하는건 꺼려요 그들이 너무 혈기왕성해서 제 에너지로는 못 할 것 같아요. 45세는 넘긴 감독하고 해야죠(웃음). 그들의 에너지를 따라갈수가 없어요. 제가 늙었다는 얘기죠."
그렇다면 윤여정에게 롤모델은 어떤 사람일까. 완벽한 연기를 선보이는 그도 롤모델이 있을까. 그는 장인 정신을 발휘하는 사람들 모두가 자신의 롤모델이며 그들을 보면 아름답다는 생각마저 들 정도라고 밝혔다.
"롤모델까진 아니지만 자기 일을 오래 한 사람은 존중하고 싶고 존경하고 싶어요. 롤모델이 딱히 생각나지는 않네요(웃음). 열심히 하는 사람이 좋죠. 사람들이 왜 잘하는 것을 좋아할까요. 김연아에게 열광하고요. 그런데 그 잘하는 아이는 얼마나 힘들게 이뤘겠어요. 그런 장인이랄까. 그런 프로들을 좋아해요. 정말 아름다워요. 그것을 오래 유지할 수 있다면 더 아름다운 일이겠죠."
'돈의 맛'은 오는 16일 열리는 제 65회 칸 국제영화제 경쟁부문에 진출을 확정짓는 쾌거를 맛봤다. 이로써 윤여정은 임상수 감독의 '돈의 맛'과 홍상수 감독의 '다른 나라에서' 두 작품으로 칸 레드카펫을 밟는 경사를 맞게 됐다. 혹시 칸 여우주연상 수상에 대한 가능성도 높지 않을까. 윤여정은 꿈도 꾸지 않는다며 겸손한 말을 건넸다.
"출품된 작품이 22개인데 한 작품당 배우를 4명이라고 쳐도 80명인데 제가 어떻게 받겠어요. 작품을 어떻게 찍었는지 저도 못봤는데 언감생심 수상을 넘보겠습니까(웃음). 이자벨 위르가 받을 것 같아요. 출품된 작품이 두편이고 자국배우고 하니까 주지 않을까요. 이자벨 위르가 홍상수 감독에게 먼저 출연하겠다고 제안을 했대요. 제인 버킨도 홍상수 감독에게 와서 출연하겠다 해서 한 장면 찍고 갔어요."
현재 수목 브라운관은 경쟁이 매우 뜨겁다. SBS에선 박유천과 한지민의 '옥탑방 왕세자'가, KBS에서 엄태웅의 '적도의 남자'가, 그리고 MBC에선 윤여정이 출연 중인 '더킹 투하츠'가 방송 중이다. 3사가 치열한 시청률 경쟁을 벌이고 있는 가운데 첫 방송에서 선두로 나섰던 '더킹 투하츠'는 점차 시청률 하락곡선을 그리며 주춤하는 양상을 보인 바 있다. 다소 속상할 수도 있는 일이지만 윤여정은 현장 분위기가 정말 좋다며 최선을 다해 찍고 있다는 말을 전했다.
"감독이 정말 훌륭한 사람이라는 걸 느꼈어요. 시청률이 떨어지면 현장 분위기가 좀 안 좋을 법한데 너무 잘 위하고 그래서 훌륭한 감독이다라고 생각했어요. 원래 잘 나갈때 보다는 안 나갈때 그 사람의 진짜 모습이 보이는 거에요. 저희는 꿋꿋하게 최선을 다해 찍고 있어요.. 승기에게도 제가 그랬죠. '너 이것도 잘 되면 큰일난다. 사람이 안 되는것도 보고 해야 겸손해진다'라고요(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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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송이 기자 ouxou@ose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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