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년에 나올까 말까 한 천재' 김연경을 위하여
OSEN 김희선 기자
발행 2012.08.16 07: 06

"우리는 김연경을 100년에 한 번 나올까 말까한 천재라고 부릅니다".
지난 4월 열린 NH농협 프로배구 V리그 시상식 현장에서 눈에 띄는 존재가 있었다. 당시 올림픽 예선을 앞두고 V리그 스타들을 관찰하기 위해 비행기를 타고 날아온 일본 TBS 방송 관계자였다.
TBS 방송 관계자는 시상식을 취재하러 왔던 기자들을 '역취재(?)'하고 있었다. 올림픽 본선 진출팀을 가리기 위해 5월 일본 도쿄에서 열렸던 올림픽 세계예선전을 앞두고 한국 선수들의 전력을 탐색하기 위해서였다.

당연히 이쪽도 일본 선수들에 대한 질문이 이어질 수밖에 없었다. 일본의 주포인 기무라 사오리(26, 바키방크)와 당시 일본 대표팀 합류가 점쳐졌던 구리하라 메구미(28, 오카야마 시걸즈) 아라키 에리카(28, 도레이 애로스) 등에 대한 질문이 이어지며 전력 탐색의 시간이 흘렀다.
어느 순간 TBS 관계자는 속내를 드러냈다. V리그 시상식이었음에도 불구하고 TBS 관계자의 관심을 한 몸에 받았던 선수는 따로 있었다. 김사니(31, 흥국생명)나 황연주(27, 현대건설)에 대한 관심도 높았지만 단연 김연경(24, 페네르바체)에 대한 질문이 압도적으로 많았다.
TBS 관계자의 질문은 거의 찬양에 가까웠다. 그는 "일본에서 김연경의 존재는 압도적이다"라며 "한국전을 앞두고 요주의 인물로 꼽고 있는 선수라고 하면 단연 김연경이다"라고 평가했다. 일본 JT마블러스에서 활약하던 시절 팀을 2년 연속 정규시즌 1위, 챔프전 준우승-우승으로 이끌며 MVP까지 차지했던 김연경의 존재감은 일본인들의 뇌리에 선명하게 남아있었던 것. 
여기에 유럽리그 진출 첫 해에 소속 팀 페네르바체를 정규시즌 무패 우승으로 이끈 데 이어 유럽 챔피언스리그 우승컵까지 들어올리며 MVP에 올라 명실상부한 '월드스타'로 거듭난 김연경에 대해 촉각을 곤두세울 수밖에 없었던 것.
일본은 한국과 비교되지 않을 정도로 여자배구에 대한 열기가 뜨거운 나라 중 하나다. 지난 14일 발표된 국제배구연맹(FIVB) 세계랭킹 3위에 오른 일본은 생활체육부터 배구를 장려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국제연맹과 교류도 긴밀하게 유지하고 있다.
이런 일본이 김연경을 '견제 대상'에 포함하고 집요하게 관심을 기울였다는 사실은 김연경이 여자배구에 있어서 얼마나 압도적인 존재인지 실감하게 한다. 그리고 그 경계심은 올림픽 예선에 이어 본선까지 이어졌다.
한국은 득점왕에 오르며 이례적으로 4위 국가 선수이면서도 MVP에 뽑힌 김연경의 원맨팀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김연경의 존재를 일찌감치 파악하고 있었던 일본은 김연경 봉쇄에 총력을 다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올림픽 본선 최종전 일본과 3-4위전에서 20득점을 올리며 맹활약했던 김연경은 '숙적'과 맞대결에서 패한 후 분함에 "눈물도 나오지 않는다"고 했다.
한국은 김연경급의 슈퍼 플레이어가 한 명만 더 있었어도 낙승을 기대할 수  있었다. 탁월한 기량과 우수한 신체조건, 끝없는 도전 정신의 삼박자를 갖춘 김연경은 일찍부터 해외 진출의 꿈을 꿨고 일본-터키를 거쳐 그 꿈을 이뤄내며 일취월장, 월드클래스의 선수로 거듭났다.
그러나 김연경이 끝이었다. 김연경만한 재능을 갖춘 선수를 찾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하지만 해외 진출을 목표로 기량을 갈고 닦는 선수들이 꾸준히 등장하기에는 한국 여자배구의 현실이 너무 열악하다. 유소년 배구팀은 점점 줄어들어만 가고 대한배구협회는 현실적인 지원을 해주지 못하고 있다.
당장 우월한 기량으로 한국을 4강까지 이끈 김연경이 올림픽의 영광 이후에 우울한 현실에 처해있다는 점만 봐도 그렇다. 김연경은 원 소속팀 흥국생명과 에이전트 및 해외진출 문제로 마찰이 계속되고 있어 현재 임의탈퇴 신분으로 방치되고 있는 중이다. 올림픽 전부터 진통을 앓아오던 김연경과 흥국생명의 관계는 올림픽이 끝난 후에도 당분간 해결 기미가 보이지 않고 있다.
한국배구연맹(KOVO)의 한 관계자는 "유럽리그의 경우 9월이면 시즌이 시작한다. 그렇기 때문에 김연경 문제도 그 안으로 결정이 나지 않을까 싶다"며 조심스러운 의견을 드러냈다. 올림픽을 전후로 맹활약을 펼친 김연경에게 관심이 집중되면서 네티즌의 '민심' 역시 그에게 응원을 보내고 있는 상황.
복잡한 문제가 얽혀있다고 하지만 한국과 아시아를 넘어 세계 정상의 자리에 선 선수가 자칫하면 이도저도 아닌 입장에 처할 수도 있는 상황이 지금의 현실이다. 제2, 제3의 김연경이 등장하기도 쉽지 않은 일이지만 설령 등장한다 하더라도 또다른 김연경 사태가 벌어지지 않으리라는 법이 없다.
이번 올림픽을 계기로 한국 여자배구는 큰 가능성을 봤다. 김연경이라는 걸출한 히어로의 등장은 여자배구가 세계적 레벨로 발돋움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갖게 했다. 그러나 신화의 선봉장에 섰던 김연경은 정작 아직 한치 앞길을 모르는 상태다.
V리그 시상식에서 만났던 TBS 관계자는 김연경에 대한 찬양 뒤에 한 마디 질문을 던졌다. "일본에서 김연경이 어떤 별명으로 불리는지 아는가" 고개를 저은 기자에게 그는 이렇게 대답했다. "우리는 김연경을 100년에 한 번 나올까 말까한 천재라고 부른다. 한국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가".
우리는 100년에 한 번 나올까 말까한 천재를 위해 무엇을 해주어야 할까. 36년 만에 올림픽 4강 신화를 다시 한 번 쓰고 돌아온 김연경을 대신해 고민해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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