헐크를 겨냥했던 '레이저 테러', 제재방안은 없나
OSEN 이대호 기자
발행 2012.09.20 11: 36

롯데 자이언츠와 SK 와이번스의 경기가 벌어진 19일 사직구장. 홈 팀 롯데는 빈타에 허덕이며 SK에 0-7로 영봉패를 당했다. 그러면서 2위 자리를 SK에 내주며 3위로 내려 앉았다.
0-3으로 끌려가던 9회 SK 공격 때 최정의 스리런 홈런이 나오자 외야 관중석에서 이물질 하나가 날아 들어오는 모습이 포착되기도 했다. 결국 경기가 롯데의 패배로 끝난 뒤 돌발적인 일이 벌어졌다. 승리를 거둔 SK 선수단이 하이파이브를 나누던 도중 녹색 레이저 포인터가 이만수 감독의 얼굴을 직접 쏜 것이다.
레이저는 가느다란 광선에 에너지가 집중된 빛의 증폭이기 때문에 직접 피부에 쬐면 위험할 수 있다. 강력한 레이저는 외과수술을 할 때 메스 대신 쓰일 정도로 투과력과 파괴력이 높다. 사직구장 1루측 관중석에서 쏘아진 녹색 레이저 광선은 다행히 이 감독의 이마 쪽을 비춰 큰 이상은 없었다. 하지만 만약 레이저 광선이 눈에 닿는다면 망막에 화상을 입어 자칫 시력에 문제가 생길 수 있는 문제였다.

감독의 얼굴에 녹색 동그라미가 생기자 놀란 SK 선수들은 1루측 관중석을 바라보며 비춘 사람을 찾아내려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적지에서 2연승을 거두며 2위를 탈환한 SK 선수단은 기쁨을 누릴 새도 없이 경기장을 빠져나가야 했다.
▲ 야구장 안전지대 아니다
'레이저 테러'는 축구에서 먼저 문제가 돼 공론화되기에 이르렀다. 2008년 11월 사우디아라비아 리야드에서 벌어진 월드컵 최종예선에 출전한 골키퍼 이운재는 관중들의 레이저 세례를 받았다. 밝은 빛에 순간적으로 눈이 부셔 경기에 지장을 받은 이운재는 관중석을 향해 그만 하라는 제스쳐를 보냈지만 수 차례나 반복해 이운재를 괴롭혔다.
세계 최고의 축구스타 크리스티아누 호날두도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시절 레이저 테러를 당했다. 2008년 2월 올림피크 리옹과의 챔피언스리그 원정경기에서 레이저에 곤혹스러운 경험을 한 호날두는 여러차례 좋은 득점기회를 놓치기도 했다. 구단의 항의로 결국 홈 팀이었던 올림피크 리옹은 UEFA로부터 5000스위스프랑(약 600만원)의 벌금을 부과 받았다. 또한 폴 스콜스는 2005~2006 시즌 도중 관중이 비춘 레이저에 눈을 직격당해 수개월동안 출전하지 못할 정도로 큰 부상을 입었다.
한국 프로야구에서도 이미 여러 차례 레이저 포인터가 문제가 됐다. 선수들은 종종 레이저 테러를 당해 경기에 지장을 받곤 했다. 이날 이 감독의 얼굴을 노린 녹색 레이저는 중계화면을 통해 전파를 탔다.
 
▲처벌규정 없다
이처럼 강력한 레이저 광선은 경기장에선 흉기와도 같다. 문제는 이를 야구장에서 제대로 처벌할 규정이 없다는 점이다. 야구장 입장권 뒷면에 인쇄된 약관을 보면 '경기 중 어떤 식으로든 방해되는 행위를 하면 퇴장당할 수 있다'고 명시되어 있다. 이 규정에 따라 지난 6월 사직구장 익사이팅 존에서 경기를 관람하던 한 관중이 페어 타구를 그대로 낚아채 퇴장을 당하기도 했다.
그렇지만 이 감독과 같이 경기가 끝난 뒤 벌어진 일에 대해서는 구장에서 특별히 제재할 방안이 없는 게 문제다. 아직 규정이 마련되지 않았기 때문에 만약 레이저를 쏜 관중을 찾아낸다 하더라도 경기장에서 내보내는 것밖에는 방법이 없다. 롯데 구단 관계자는 "경기 중이었으면 제재할 방안이 있지만 경기가 끝난 뒤라 처벌이 힘들다. 사실상 법적으로 처벌을 받게 하기 위해서는 테러를 당한 이만수 감독 본인이 경찰에 수사를 요청하는 수밖에 없다"고 밝혔다.
또한 야구장의 경호 인력도 부족하다. 공권력을 가진 경찰이 경기장에 배치된다면 조금 수월하겠지만 사실상 쉽지 않다. 경찰은 야구경기를 '사적 단체의 이윤추구 행위'로 간주하기 때문에 매 경기마다 병력을 투입하긴 어렵다는 게 이제까지의 반응이다. 그렇지만 매일 수만명의 인원이 모이는 곳은 사실상 야구장밖에 없기에 시민들의 안전 보장을 위해서라도 경찰 경호병력 배치는 생각해 볼 문제다.
▲안전보장과 인권침해, 미묘한 경계선
야구장을 관리하는 구단과 구장 모두 관중의 돌발행동을 미연에 방지할 방안 마련에 골머리를 앓는다. 투척물에 대한 위험성이 강조되던 때 사직구장은 경호 인력을 강화해 입장 관객들의 소지품 검사를 철저히 했다. 특히 그라운드에 투척했을 때 위험할 수 있는 유리병에 대한 단속을 강화했다. 그렇지만 작은 레이저 포인터를 찾아내기란 쉽지 않다.
입장 관객에 대한 검색을 강화하는 건 가능하지만 문제는 인권침해 소지가 있다는 점이다. 실제로 수년째 야구장 소지품 검색이 인권침해라며 국가인권위원회(이하 인권위)에 진정이 접수되고 있는 실정이다. 비록 인권위가 그 요청을 받아들이지 않아 각 구장에선 소지품 검색을 지금도 계속하고 있지만 안전보장을 위해 강도를 높이는 것도 쉽지만은 않은 일이다.
야구장 안전보장을 위한 검색 강화와 인권보장은 미묘한 경계선에 위치해 있다. 구장과 구단이 취할 수 있는 방안은 사실상 현재보다 획기적으로 나아지기 어렵다. 결국 이와 같은 야구장 테러행위를 근절하기 위해서는 적발 시 엄중한 처벌을 내린다는 규정 신설과 관객들에 대한 홍보활동이 필수적이다.
한편 이 문제와 관련해 한국야구위원회KBO)는 대책 강구에 들어갔다. 정금조 KBO 운영팀장은 "그동안 경기 중 방해 행위를 일으키는 경우에 퇴장 조치를 취했는데 경기 종료 이후에도 선수단에 위협을 줄 수 있는 요소가 발생되면 입장 제한 등 제재를 가할 것"이라고 입장을 밝혔다.
이와 함께 익사이팅존을 통한 그라운드 난입 등에 대해서도 대책을 마련할 계획임을 내비쳤다.
cleanupp@osen.co.kr
부산=백승철 기자,baik@osen.co.kr

Copyright ⓒ OSEN.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