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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S] ‘80㎞ 투수’ 윤희상, 드라마는 아직 진행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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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SEN=김태우 기자] 사연 없는 프로 선수는 없다. 윤희상(27·SK)도 굴곡이 많은 선수다. 아마추어 시절에는 고교를 대표하는 투수였다. 당당히 프로에 입성했다. 계약금만 2억 원이었다. 그러나 프로는 만만치 않았다. 자신감만으로 넘어설 수 있는 무대가 아니었다. 2004년 프로에 데뷔해 2년 동안 14경기 출전에 그쳤다. 그 높은 벽을 실감할 때쯤, 오른쪽 어깨가 심상치 않다는 것을 알았다.

공만 잡으면 팔이 아팠다. 어깨는 물론 뒷골까지 당겼다. 자꾸 아프니 공을 잡기도 싫었다. 결국 2006년 7월 오른쪽 어깨에 칼을 댔다. 그 때 의사는 “회복 확률이 20%”라고 했다. 반반의 확률도 안 되는 절망적인 수치였다. 그 후로는 스스로 “다시 그 때로 돌아간다면 절대 수술을 받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할 정도로 힘든 나날의 연속이었다. “포기하고 야구를 접어야겠다”라는 극단적인 생각이 윤희상의 머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공익근무를 시작하기 전 6개월을 쉬었다. 공익근무를 시작하고도 1년을 놀았다. 그 후 다시 야구공이 눈에 들어왔지만 어깨는 계속 아팠다. 윤희상은 “누군가 계속 바늘로 어깨를 찌르는 것 같았다”라고 회상한다. 다 때려 치고 싶은 마음에 야구공 대신 낚시대를 잡았다. 그냥 야구 생각을 하기가 싫었다. 어떻게 하면 고기를 더 잘 잡을 수 있을까만 생각했다. 도피처였다.

다시 SK 유니폼을 입고도 부상과의 전쟁은 계속됐다. 세게 던지면 그 다음날은 무조건 아팠다. 그렇게 시간은 2009년까지 흘러왔다. 앞이 보이지 않았다. 그 때 김성근 전 SK 감독은 윤희상에게 이런 주문을 했다. “5개라도 던져라”. 5개를 던지자 그 다음부터는 투구수가 조금씩 불어났다. 회복에 필요한 시간도 줄었다.

2010년 캠프 때 윤희상은 하루에 200개를 던졌다. 어깨 상태가 좋아진 것은 아니었다. 윤희상은 여전히 전력으로 던지면 다음날은 앓아눕는 선수였다. 그런 윤희상에 김 전 감독은 “80㎞로 던져도 좋으니 200개를 던져라”라고 지시했다. 투구 밸런스를 잃지 말라는 주문임과 동시에 투수로서의 희망을 잃지 말라는 메시지였다.

윤희상은 “그렇게 기다려 줄 수 있는 지도자가 얼마나 될까. 그런 면에서 참 고마웠다”라고 떠올린다. 지금 이렇게 말할 수 있는 것은 윤희상이 부활의 날개를 펼쳤기 때문이다. 지난 시즌 중반 SK의 선발진에 합류한 윤희상은 올 시즌 팀 내에서 유일하게 10승을 거뒀다. 포스트시즌에서의 활약도 계속되고 있다. 지난 한국시리즈 1차전에서는 비록 패전투수가 됐지만 8이닝 3실점 완투패로 SK 팬들의 마음을 울컥하게 했다.

2패로 위기에 몰린 3차전. 윤희상은 덕아웃에서 진심어린 마음으로 동료들을 응원했다. 팀의 승리는 물론 한국시리즈 무대에서 한 번 더 던지고 싶은 스스로의 바람도 담겨 있는 응원이었다. 1차전에서 윤희상의 역투를 바라본 동료들도 힘을 냈다. 3·4차전을 모두 잡으며 시리즈를 원점으로 되돌렸다. 5차전 선발로 내정된 윤희상도 좀 더 홀가분한 상황에서 경기에 집중할 수 있게 됐다.

아픈 만큼 굳어졌다. 웬만한 상처에는 이제 반응하지 않는다. 윤희상은 “예전에는 초반에 점수를 주면 신경질이 났다. 하지만 성준 코치님의 조언을 들은 올해부터는 조금 바뀌었다. 어차피 나는 5~6회를 던지면서 3점만 주면 잘 던졌다는 이야기가 나오지 않나. 더 신경 써서 실점을 막으면 되는 일”이라고 대수롭지 않게 말한다.

그러면서 윤희상은 “힘들 때면 아플 때를 생각한다”라고 했다. 그때와 비교하면 지금은 행복한 시기다. 아프지 않고, 던질 수 있고, 또 뒤에는 동료들과 팬들이 있다. 윤희상이 쓰고 있는 한 편의 드라마는 한국시리즈 5차전에서도 계속된다. 시청률은 높을 것이 확실하다.

skullboy@ose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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