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연 양승호라는 내비게이션만 문제였나?
OSEN 김태우 기자
발행 2012.10.31 10: 22

2010년 12월. 한 언론사 주최 시상식 전 만난 양승호 롯데 신임감독은 “롯데는 중간이 없다”라고 말을 시작했다. 그는 “어차피 계속 포스트시즌에 나갔던 팀이다. 4위를 하려고 감독을 바꾸지는 않았을 것이다. 4위를 한다고 하면 나도 무능한 감독이다”라면서 “계산이 단순해서 좋다. 목표는 당연히 우승이다”라고 거침없이 목표를 이야기했다.
그러면서 비유한 것이 ‘내비게이션’이었다. 그는 “요새는 한 달만 지나도 길이 바뀌는 경우가 많다. 그런 만큼 계속 업데이트를 해야 한다. 롯데는 3년 동안 4위를 하면서 하나의 길에 익숙해진 기분이 든다. 그런 측면을 보완하는 것이 나의 임무”라고 했었다. 그랬던 양 감독은 2년도 지나지 않아 롯데를 떠났다. 공식 발표는 자진사퇴다.
양승호라는 내비게이션은 설치 초반 좌충우돌이었다. 2011년 초반에는 경로가 자주 어긋나는 듯 보였다. 열성적이면서도 성적에 민감한 롯데 팬들의 비난이 쏟아졌다. 당시 양 감독은 “그것이 롯데 감독의 숙명”이라고 담담하게 말했다. 하지만 끝내 정규시즌을 2위로 마치는 저력을 선보였다. 비록 플레이오프에서 SK에 져 한국시리즈 진출이 좌절되긴 했지만 정규시즌 성적으로만 보면 근래 들어 최고의 성과였다.

내비게이션은 계속 업데이트됐다. 올해 롯데는 정규시즌에서 고전했다. 이대호의 일본 진출과 장원준의 입대 공백은 분명 컸다. 시즌 막판 한계를 드러내며 4위로 정규시즌을 마쳤다. 대다수가 포스트시즌 전망까지 어둡게 봤다. 그러나 롯데는 가을야구에서 달라진 팀이 됐다. 더 끈질겼고 위기에서 강해졌다. 주축 선수들의 체력 저하와 부상에도 계속 전진했다.
그 원동력 중 하나가 양 감독의 승부사 기질이었다. 적시에 이뤄진 투수 교체, 과감한 대타 카드로 팀이 가진 힘을 최대한 짜냈다. 비록 정규시즌 2위 팀 SK에 2승3패로 지며 한국시리즈 진출은 좌절됐지만 롯데 팬들의 마음을 사로잡는 분투였다. 적어도 양 감독은 전임 제리 로이스터 감독 시절 하나의 길에 익숙해져 있었던 롯데에 ‘새로운 길’을 안내하는 성과를 거뒀다. 경로의 재탐색이었다.
그러나 성적에 대한 부담은 이겨내지 못했다. 시즌 중반부터 성적에 대한 압박을 털어놨던 양 감독이다. 농담조가 짙었지만 그 속에는 뼈가 있었다. 그리고 한국시리즈 진출에 실패한 그날, 양 감독은 마음의 준비를 한 듯 보였다. “무한책임을 지겠다”라는 말을 했다. 결국 양승호라는 내비게이션은 업데이트 대신 ‘경로취소’ 버튼을 선택했다.
장병수 롯데 사장은 올해 초 구단 시무식에서 “20년간 우승하지 못했다. 강산이 두 번이나 바뀌었다. 올해는 반드시 한국시리즈에 진출해 우승의 한을 풀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리고 수시로 ‘한국시리즈 우승’을 강조했다. 결국 롯데는 그 목표를 달성하지 못한 양 감독의 사퇴 의사를 적극적으로 제지하지 않았다. 사실상 구단에서 선장의 교체를 결정한 것이다.
그러나 롯데의 실패가 과연 양승호라는 내비게이션만의 문제였을까. 롯데는 투자에 인색한 구단이라는 꼬리표가 붙는다. 정대현과 이승호를 영입하며 FA시장에서 지갑을 열었다고는 하지만 이대호와 장원준이 빠져 나간 것을 감안하면 남는 장사가 아니었다. 당장 2년 전 팀의 간판스타와 ‘7000만 원’ 차이를 좁히지 못해 연봉조정에 들어갔던 팀이 롯데였다. 선수들과의 연봉협상에서도 끊임없는 불협화음이 터져나오는 팀도 롯데다.
2군에 대한 투자도 이제 막 시작했을 뿐이다. 그것도 다른 팀들에 비해 체계적이지 않다. 양 감독은 재임 기간 내내 “2군에서 불러 쓸 선수가 마땅치 않다. 아직은 1군과 기량 차이가 있다”라고 입맛을 다셨다. 냉정하게 말해 현재 롯데의 투자는 3위라는 팀 성적보다 못했다. 그럼에도 롯데는 오직 우승을 외쳤다.
어쨌든 롯데는 변화를 선택했다. 양 감독이 돌아오지 않는 이상 경질이냐, 자진사퇴냐는 논란도 큰 의미는 없다. 하지만 이왕 내비게이션을 바꾸기로 결정했다면, 한 번쯤은 차체도 살펴볼 필요가 있는 롯데다. 20년 동안 수리 없이 이어온 지금의 차체로는 어떤 내비게이션이 새롭게 장착돼도 우승까지 내달리기 쉽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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