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시진 선택한 롯데, 변화일까 구태일까
OSEN 이대호 기자
발행 2012.11.06 07: 26

롯데 자이언츠의 선택은 김시진(54) 감독이었다.
롯데는 5일 김 감독을 제 15대 감독으로 영입 했다고 발표했다. 계약기간 3년, 연봉 3억원, 계약금 3억원 등 총액 12억원의 계약이다. 지난 9월 넥센 감독직에서 경질됐던 김 감독은 20년 만에 자신이 선수생활을 마쳤던 롯데에 돌아오게 됐다.
롯데가 김 감독을 선택한 건 '정중동'이라 할 만하다. 안정 속에 작은 변화를 꾀하려 하는 구단의 의중을 읽을 수 있다. 일단 롯데는 카리스마 형이 아니라 부드러운 리더십을 펼치는 김 감독을 선임, 연속성을 갖췄다. 사령탑의 급격한 분위기 변화는 선수단에 영향을 미친다. 안 그래도 양승호 전 감독의 갑작스러운 자진사퇴에 일부 선수들은 동요를 하고 있던 상황이다. 모 선수는 "그래도 예전 감독님과 스타일이 크게 다르지 않은 감독님이 오시게 돼 마음이 놓인다"고 인정했다.

그러한 가운데서도 롯데는 변화를 꾀했다. '우승'보다 '육성'을 이야기한 것이 그렇다. 롯데 구단은 김 감독을 선택한 이유로 "프로야구 감독으로서 오랜 경험, 그리고 선수 육성 능력"을 꼽았다. 롯데의 말에서 주목할 부분은 '선수 육성 능력'이다. 이제까지 롯데는 한 목소리로 '우승'만을 이야기했다. 프로구단의 존재가치는 승리, 더 나아가 우승에 있기 때문에 이것을 무조건 잘못된 것이라고 할 수만은 없다.
하지만 아무리 좋은 말이라도 자꾸 듣게 되면 감독은 부담을 느낄 수밖에 없다. 올 초 롯데 장병수 사장의 "20년 동안 우승을 못한 건 부끄러운 일"이라는 발언이 좋은 예다. 우승에 대한 부담감을 항상 품어 온 양 전 감독은 호성적을 거두고도 2년 만에 롯데를 떠나게 됐다.
3년 연속 준 플레이오프에 나간 제리 로이스터 전 감독도 롯데를 떠나고, 2년 연속 플레이오프에 진출한 양 전 감독도 지휘봉을 내려놓았다. 새 감독을 물색하는 롯데를 두고 '과연 누가 독이 든 성배를 들까'하는 야구계의 말이 괜히 나온 게 아니다. 이제까지 롯데 구단이 보여준 모습을 보자면 당연히 신임 감독은 우승을 노릴 만한 인물이 올 것이라 예상했다. 최소 한국시리즈, 우승이 목표라는 이야기가 나올 수밖에 없었다.
이때 롯데가 김 감독을 영입한 것은 많은 것을 시사한다. 2006년 이후 2008년 한 해만 제외하고 줄곧 프로야구 감독직을 맡았던 김 감독이지만 아직 4강에 진출한 적은 한 번도 없다. 롯데가 원하는 우승청부사, 승부사와는 조금 거리가 있는 게 김 감독이다. 대신 김 감독의 최대 장기는 선수 육성이다. '형님 리더십'을 바탕으로 선수들과 적극적으로 의사소통을 하며 잠재력을 최대한 끌어올리는 데 익숙하다.
결국 김 감독의 선임은 롯데의 핵심 패러다임이 '우승'에서 '구단의 건강한 성장'으로 옮겨지고 있다고 해석할 수 있다. 전력을 극대화 해 한 번 우승을 한 뒤 힘이 빠져 다시 중위권으로 주저앉는 것보다 시간이 걸리더라도 팀 전력의 기초부터 쌓아 올라가는 게 훨씬 안정적이다. 후자의 좋은 예가 삼성이다. 삼성은 최고의 시설과 1군 못지않은 2군 관리, 그리고 과학적인 선수 육성 시스템으로 2연속 우승을 달성했다. 즉 롯데는 장기적인 관점에서 진정한 강팀으로 가기 위해 김 감독을 선택했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다른 이야기도 있다. 야구계 소식에 정통한 이에 따르면 이번 김 감독의 선임 역시 구단 최고위 관계자의 작품이었다고 전해진다. 이 관계자가 김 감독을 염두에 두고 감독 선별과정을 거쳐 일사천리로 임명했다는 이야기다. 불과 반 나절 만에 감독 선임 작업이 완료되었다는 건 이를 방증한다. 양 전 감독이 자진사퇴 의사를 표시한 이유 가운데 하나가 구단 고위층의 지나친 간섭에서 비롯됐다는 이야기가 있다. 구단 윗선의 입김이 여전히 강하다면 여전히 롯데의 숙제는 해결되지 않은 셈이다.
결국 감독 자리는 성적이 모든 걸 말해준다. 2013년 정식으로 출범할 김시진의 '롯데 호'가 어떤 달라진 모습을 보일지 주목된다.
cleanupp@osen.co.kr

Copyright ⓒ OSEN.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