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다쟁이 아줌마라도 김희선은 김희선이다 [인터뷰]
OSEN 전선하 기자
발행 2012.11.23 14: 37

세 살 난 딸을 둔 결혼 6년차 주부가 됐지만 밝고 화사한 기운은 여전했다. 톡톡 튀는 감성의 대표주자로 90년대를 풍미한 배우 김희선은 지난달 종영된 SBS 월화드라마 ‘신의’(극본 송지나, 연출 김종학)에서 다소 속물스럽지만 지극히 현실적인 성형외과 전문의 유은수 역을 맡아 6년 만에 브라운관에 컴백했다.
원나라 복속을 1년 앞둔 고려말, 희망이 없고 자포자기의 그림자가 드리운 ‘신의’의 시대적 배경에서 은수는 영양주사를 맞은 화초마냥 홀로 생생한 기운을 내뿜으며 활력소 역할을 톡톡히 했다. 결혼 전 외로워도 슬퍼도 울지 않는 씩씩한 캔디 역할을 도맡았던 것 보다 어쩌면 김희선에게 더 잘 어울리는 배역은 은수 같은 캐릭터였다. 그리고 몸에 잘 맡는 배역은 김희선 자신에게도 오랜 목마름을 채워주는 데 단비 같은 작품이 되어 그녀를 한 가정의 안주인에서 다시 배우로, 그리고 스타로 자리하게 했다.
“첫 촬영이 은수가 최영(이민호)에게 들쳐 업힌 채로 천혈을 통해 고려 시대로 들어가는 장면이었어요. 이야기가 시작되는 굉장히 중요하고도 어려운 장면을 6년 만의 컴백 촬영에서 하게 된 거예요. 말은 안 했는데 너무 떨려서 심장이 튀어나오는 줄 알았어요. 정해진 시간보다 2시간 쯤 일찍 와서 먼저 촬영하고 있는 민호 모습을 지켜봤는데 제가 배우가 아니라 그냥 일반 시청자처럼 넋 놓고 쳐다봤던 기억이 나요. 나름대로 준비를 해왔는데 막상 촬영하는 날이 되니 머리가 하얘졌던 거죠.”

20대를 톱스타로 보내며 촬영장에서 여왕대접 받는 게 익숙할 법도 하지만, 오랜 공백 끝의 컴백은 천하의 김희선에게도 이토록 큰 부담을 안겼다. 그는 “첫 신을 마치고 내가 긴장하는 걸 아셨는지 김종학 감독님께서 ‘괜찮냐’고 물어보시곤 관심을 다른 데로 돌리셨다. 신경 써주는 것보다 그럴 땐 그냥 내버려 두는 게 도와주는 건데 감독님께서 그걸 아셨는지 그 이후로 별 말씀이 없으셔서 정말 고마웠다”며 첫 촬영의 생생한 긴장을 전했다.
김희선에게 김종학 감독과의 호흡은 드라마 작업을 함께 하는 동업자이자 어린 시절부터 우상과도 같았던 스타 연출가와의 설레는 의기투합 과정이었다. 이는 ‘신의’를 집필한 송지나 작가와도 마찬가지.
“‘모래시계’, ‘여명의 눈동자’를 보고 자란 세대이기 때문에 막연히 환상 같은 게 있었어요. 두 분 다 드라마계의 거장이시다 보니 파트너 관계가 아닌 저는 팬이 된 마음으로 작업한 거죠. 또 오랜만의 컴백인데 저한테 모든 포커스가 맞춰지는 것보다 감독님께 살짝 얹혀가자 하는 마음도 있었어요. 상대 배우로 호흡을 맞춘 이민호 씨의 핫한 면모에 묻어가자 하는 생각도 솔직히 있었고요.”
김희선의 말대로 이민호와의 연인 호흡은 10살 나이 차이에도 불과하고 꽤 그럴 듯한 그림을 만들었다. 선남선녀 두 배우의 훌륭한 외모 외에도 ‘신의’를 촬영하며 4개월여 동안 누나-동생 사이로 친밀하게 지낸 점 역시 이 같은 ‘그림’을 완성시키는 데 큰 몫으로 작용했다.
“민호는 겉모습은 영락없는 상남잔데 그렇게 아기 같을 수가 없어요. 거기다 귀도 얇고 사람이 착하기까지 해서 순진하다는 느낌이 들 정도였어요. ‘꽃보다 남자’, ‘시티헌터’ 이런 데서 보면 까칠하고 차가울 것 같은데 촬영장에서 오락하고 남이 하는 이야기에 솔깃 하는 모습을 보면 영 다른 사람 같죠. 겉모습이 키가 크고 남자답게 생겨서 반전효과가 더 도드라지게 나타나는 것 같아요.”
첫 촬영에서의 떨림 역시 이민호의 이러한 면 때문에 긴장감이 잦아들 수 있었다. 김희선은 “민호와 대사만 주고받는 촬영이었다면 가까워지는 데 오래 걸렸을지도 모르는데 오히려 들춰 업는 등 스킨십이 있는 장면이었기 때문에 빨리 친해질 수 있었다”고 덧붙였다.
6년만의 컴백에서 힘을 얻을 수 있었던 건 이들 외에도 인터넷 커뮤니티 ‘신의’ 갤러리 회원들의 적극적인 응원 덕분 때문이기도 하다. 김희선과 이민호를 은수와 최영이라고 부르며 적극적인 애정 표시를 하는 회원들 덕에 빡빡한 생방송 촬영 일정에도 감격하기가 여러 번이었다고.
“회원들이 배우들 보다 더 꼼꼼하게 대본을 분석하는 걸 보고 깜짝 놀란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에요. 은수와 최영의 모습을 캐리커처로 그려주신 건 카메라로 찍어 휴대폰에 저장해 두고 보기도 여러 번이었어요. 제가 한창 활동할 때는 없는 모습이었는데 실시간으로 반응이 오는 걸 보고 정말 놀랐어요.”
이 같은 갤러리 회원들의 응원은 김희선의 연예계 생활에 적지 않은 마음의 변화를 일으켰다. 팬카페 방문도 뜸했던 그녀였지만 실시간으로 열광적인 반응을 보이는 팬들을 보며 이들에게 적극적인 팬서비스를 해야겠다는 결심을 하게 만들었기 때문. 김희선은 “셀카 찍어서 SNS에 올리는 데 1분 정도 시간이 걸릴 텐데, 내 모습을 보며 기뻐해주는 분들에게 그 1분을 왜 투자 못 하겠냐”며 달라진 마음자세를 전했다.
그리고 이 같은 넉넉한 마음을 먹기까지에는 김희선에게 안정과 여유를 가져다 준 남편 박주영 씨와 딸 연아 양의 존재를 빼놓을 수 없다. 김희선은 지난 2007년 락산그룹 차남 박 씨와 결혼에 골인해 2009년 첫 딸을 출산했다.
“제 딸이라서가 아니라 요즘 아이들은 유전자가 우월한 것 같아요. 연아만 하더라도 그림도 뚝딱뚝딱 잘 그리고 피아노에도 앉혀 놓으면 알아서 띵똥띵똥 잘 친다니까요. 하지만 연아를 따라다니면서 극성맞게 키우고 싶지는 않아요. 저는 딸한테도 할 말은 하는 스타일인데 그래야 밖에 나가서 안 좋은 이야기를 듣더라도 아이가 면역력이 있어서 상처를 덜 받을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하기 때문이에요.”
이제 세 살 난 연아의 뒤를 이어 둘째를 가질 생각은 없는지를 물었지만 김희선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아직은 계획이 없다”고 덧붙였다. 연아가 엄마에게 동생 타령을 하지만 육아 스트레스에 엄두를 내지 못한다고. 하지만 만약 둘째를 낳는다면 첫째 딸에 이어 아들을 낳고 싶다는 바람을 밝혔다.
“요즘 TV에 나오는 2PM 닉쿤이나 제국의 아이들 임시완 같은 친구들을 보면 정말 예뻐서 ‘나중에 이런 아들 낳고 싶다’ 하는 생각을 떠올리긴 해요. 저는 하얗고 눈이 축 쳐진 강아지상을 좋아하는 것 같아요.”
이제 막 6년만의 긴 잠을 깬 만큼 작품 활동은 오래 지나지 않아 다시 도전하고 싶은 김희선에게 늘 현재진행형의 고민이자 평생의 업(業)이다. 하지만 욕심이 있다. ‘토마토’, ‘미스터큐’와 같은 트렌디 드라마를 종횡무진 하며 김희선이라는 이름 석자를 작품을 대표하는 이미지로 각인시켰던 만큼 앞으로의 출연작에서도 이 같은 공식이 이어졌으면 좋겠다는 게 그녀의 바람이다.
“좋은 작품이 있으면 당연히 출연을 망설이지 않겠죠. 그런데 앞으로의 작품에서도 ‘토마토’하면 김희선이 생각나듯 저라는 배우를 떠올릴 수 있는 그런 드라마를 만나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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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준형 기자 soul1014@ose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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