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찬호, "먹튀라는 아픔이 있었기에 지금이 있었다"
OSEN 이상학 기자
발행 2012.11.30 13: 19

"먹튀라는 단어의 아픔을 견뎌냈기에 지금이 있었다".
'코리안특급' 박찬호(39)의 은퇴 기자회견에는 그동안 그와 함께 한 유니폼들이 단상에 놓여있었다. 공주중·고교 시절부터 상징 같았던 LA 다저스, 1998년 방콕 아시안게임과 2006년 WBC 국가대표 유니폼 그리고 2001년 메이저리그 올스타전 유니폼을 비롯해 텍사스 레인저스, 샌디에이고 파드리스, 필라델피아 필리스, 뉴욕 양키스, 피츠버그 파이어리츠, 오릭스 버팔로스, 한화 이글스 등 총 13벌의 유니폼이 기자회견 단상을 빛냈다.
박찬호는 유니폼을 하나씩 바라보며 그때 당시 기억이 떠오르는듯 감회에 젖은 표정으로 추억을 반추했다. 감정이 북받쳐 오르는 듯 목이 매이는 모습도 있었다. 야구를 시작할 때 입었던 공주중고교 시절 유니폼을 바라보며 "중학교 때 처음 투수를 시작했다. 그때 당시 좋은 투수가 되기 위해 훈련한 기억이 떠오른다. 고교 시절에도 청소년대표로 발탁돼 LA에서 좋은 성적을 낸 것도 자랑스러운 기억"이라고 떠올렸다. 

상징과도 같은 다저스 유니폼은 기분 좋은 추억 그 자체. "다저스하면 파란 유니폼 생각이 많이 난다. 스카우트를 위해 한국까지 와준 토미 라소다 감독과 마이너리그 시절 함께 한 코치 분들이 떠오른다. 미국에서 적응할 수 있게 도와준 에이전트 스티브 김씨도 생각 난다"고 말했다. 국가대표 유니폼도 애국심을 키운 최고의 유니폼. 그는 "내게 방콕 아시안게임 금메달은 올림픽 금메달 그 이상의 가치가 있다. 해외에 있다 보니 애국심이 더 커졌다"며 태극마크에 남다른 애정을 보였다. 
그러나 모든 유니폼이 좋은 기억만 떠오르게 한 건 아니었다. 중간 선상에 놓인 텍사스 유니폼을 바라보자 박찬호는 묘한 웃음과 함께 말문을 뗐다. 그는 "눈물을 흘리게 했지만 가족들이 편하게 살 수 있도록 경제적으로 큰 도움을 준 유니폼"이라며 회한에 젖은 표정을 짓더니 "텍사스 시절 먹튀라는 말을 처음 들었다. 그때는 먹튀라는 단어가 너무 분하고 아쉬웠다. 난 그저 부족할 뿐인데 마치 죄인처럼 취급받는 게 힘들었다. 하지만 그런 아픔들을 잘 견뎌냈기 때문에 지금이 있었던 것이다. 텍사스 유니폼을 입고 있을 때에는 많이 힘들었지만, 이제 와서 돌이켜보면 많은 것을 생각하고 깨달음을 줬다"고 담담하게 말했다. 
박찬호는 2001년 다저스에서 시즌을 마친 뒤 FA가 돼 텍사스가 5년간 총액 6500만 달러라는 대형 계약을 체결했다. 텍사스의 새로운 에이스로 큰 기대를 모았으나 계약기간 내내 허리와 햄스트링 부상으로 부진했고,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가장 힘든 시기를 보내야 했다. 미국은 물론 한국에서도 박찬호를 '한 물 간 선수'이자 '먹튀 선수'로 취급했다. 더 이상 국민 영웅은 없었다. 하지만 그때 그 시절 아픔을 견뎌내고, 오뚝이처럼 재기에 성공했기에 지금의 자신이 있었다고 이제는 웃으며 반추했다. 누구나 힘든 시절이 있고 그 시절을 이겨낸 오기와 의지가 박찬호를 더욱 빛나게 만들었다. 
이어 샌디에이고 유니폼에 대해 박찬호는 "앞으로 더 인연을 가질 수 있을 것이다. 나에게 재기의 의미가 있다. 앞으로는 피터 오말리 구단주를 통해 다양한 역할을 맡을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따. 필라델피아 유니폼을 소개할 때에는 직접 뒷면에는 쓰여진 선수들의 사인을 자랑하며 환하게 웃었다. 박찬호는 "필라델피아는 내게 기회가 없을 것처럼 보였던 월드시리즈에 나갈 수 있게 해준 팀이다. 내셔널리그 우승을 차지했을 때 함께 한 팀원들 모두에게 직접 사인을 받았다. 내셔널리그 우승 반지도 받았고, 여러가지로 영예로운 유니폼"이라고 남다른 소회를 밝혔다. 
양키스의 핀스트라이프 유니폼, 피츠버그의 검정색 유니폼도 하나 하나 추억이 서려있었다. 양키스라는 최고 명문팀에서 뛴 것은 큰 자부심이고, 피츠버그에서는 아시아 투수 최다 124승을 거둘 때 대미를 장식한 유니폼이다. 일본 오릭스와 한국 한화 유니폼도 빼놓을 수 없다. 박찬호는 "성적은 초라했지만 오릭스는 나의 커리어를 인정해 준 팀이다. 특히 이승엽과 같은 유니폼을 입을 수 있었다는 게 좋았다"고 말했고, 마지막으로 입은 한화 유니폼을 바라보며 "한국에서 마지막을 장식할 수 있게끔 도와준 소중하고 값진 추억"이라고 감사해 했다. 
그는 "어떤 유니폼을 꼽기가 어려울 정도로 내게는 모두 의미가 있고, 추억이 담겨있다"며 13벌의 유니폼을 흐뭇하게 바라봤다. 이어 "앞으로 먼훗날 내 인생에 있어 큰 값어치가 될 것이다. 앞으로 후배들과 아이들에게 보여주고 메시지가 될 수 있는 기회도 갖고 싶다"고 소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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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대선 기자 sunday@ose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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