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석천이 무슨 죄를 지었나요?
OSEN 손남원 기자
발행 2013.01.27 09: 41

[OSEN=손남원의 연예산책] 홍석천의 드라마 출연이 또 불발되는 모양이다. 요즘 인기 예능프로들에 자주 출연, 재치있는 말솜씨와 감각을 뽐내다보니 방송인처럼 분류되는 그이지만 본업은 엄연히 연기자고 탄탄한 실력을 갖춘 배우다. 그런 홍석천을 드라마에서 보기 힘든 이유는 도대체 무엇일까.
 지난 9일 방송된 MBC ‘라디오 스타’에 출연한 그는 “올해는 드라마 운이 있는 것 같다. 1월에 사극을 하는데 왕과 여주인공 옆에서 도와주는 역할로 그 당시 파티플래너다. 여주인공은 김태희 씨로 확정됐다”며 사극 드라마 ‘장옥정’ 출연을 암시했다. 이에 드라마 제작사는 며칠 후 "(홍석천의 출연이나 섭외는)절대 사실이 아니다"란 식으로 공식입장을 밝혔다.
제작사 발표대로라면 홍석천은 거짓말을 한게 된다. 그것도 '라디오 스타'라는 지상파TV의 탑 클래스 예능 발표에 출연해서 수많은 시청자들에게 허위사실을 유포한 셈이다. 하지만 제작사 공식입장 발표 이후에 벌어진 일련의 사태를 보면 홍석천의 거짓말에 대한 심증은 사라진다. 제작사가 "일체 협의가 없었다"는 당초 발표에서 한 걸음 물러나 "출연하지 않는다"로 수위를 낮춘 게 그 배경이다. 물론 이같은 입장 변화가 난감한 상황에 빠진 홍석천에 대한 배려일 가능성도 배제할 수는 없다.

그래도 홍석천이 '장옥정'과 아무런 관계도 없었으면서 출연을 얘기했을 거라고는 더 믿기 어렵다. 시나리오 초고라도 받았을 것이고 어느 쪽 관계자한테건 "당신한테 딱 맞는 역이 있다"는 언질을 들었을 것이다. 여기서 다른 배우들이었다면 생기지 않았을 홍석천의 불행이 시작된다.
별다른 불이익없이 여기저기 드라마와 영화에서 캐스팅 제의를 받고 골라서 출연하는 배우들이라면 이 정도 상황에서 출연을 운운하지 않는다. 홍석천은 달랐다. 동성애자란 사실을 커밍아웃했다는 죄 아닌 죄로 이미 오랫동안 본업에서 밀려났던 연기자다. 우리 사회의 온갖 편견과 무시, 눈총을 딛고 사업가로 자수성가했고 어렵게 어렵게 방송 프로에 얼굴을 비치기 시작한 게 수 년전이다. 그런 그가 사소한 제의나 언질이라도 본격적인 연기 관련이라면 귀가 더 솔깃하고 장밋빛 꿈을 꿨을 게 분명하다.
배우로서 이미 검증된 연기력을 갖췄고 연기에 대한 열정이 누구보다 뜨겁기에 당연한 일이었을 게다. 2009년 '태양을 삼켜라'와 2010년 '보석비빔밥' 외에는 지상파 TV 드라마 출연기화를 잡지못한 안타까움이 더해졌을 것이고.
이같은 그의 기대는 또 처절한 배신감으로 돌아왔다. '장옥정'의 경우 시나리오 초기에 있었던 역할이 진행과정에서 빠졌으니 당연한 결과였겠지만 한국 연예계가 아직도 지나치게 보수적으로 돌아가고 있는 현실이 그를 더 아프게하지 않았을까 싶다.
홍석천은 지난해 11월 9일 새벽 자신의 트위터에 "대한민국이란 나라에서 게이로, 소수자로 산다는 게 이렇게 힘들 줄이야. 오늘 참 힘든 날이네요. 누군가에게 말도 안 되는 오해와 감시를 받으며 살아야 하는 저의 모습을 보며 참 슬픈 인생이구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커밍아웃했다는 이유로 남들처럼 번듯한 사랑도 못 하고 사는데"라는 글을 올렸다.
이어 "이 나라에서 게이여서 무시 당해도 조용히 참아야 한다는 논리는 제겐 안 통한다는 걸 보여주렵니다. 죄짓지 않았는데 죄인 취급 당하는 게 얼마나 억울한지. 저와 같은 처지에 있는 많은 사람들을 위해서라도 제가 소리 질러보렵니다. 제가 다치는 한이 있어도 말이죠. 잠이 안 오는 밤이네요. 가슴에 상처 한 가득입니다"라고 했다.
이 트위터글이 홍석천의 지금 심경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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