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글로 된 최초의 야구규칙과 경기용어집 <야구규칙(野球規則)> 발견
OSEN 홍윤표 기자
발행 2013.01.28 12: 09

한국야구 기원과 최초의 학생 야구팀 창단 연도 등을 명기해 놓은 한글로 된 최초의 야구 규칙집으로 추정되는 이 발견됐다.
필자가 최근 경매사이트 ‘코베이’를 통해 입수한 이 책은 가로 10cm, 세로13.8cm의 문고본 크기로 해방 2주년에 즈음해 1947년 8월 20일에 나온 것이다. 저자는 최상준(崔相俊)이다. 출판사 이름이 없이 최문혁(崔文爀)이라는 발행인만 명기된 것으로 미루어 개인출판으로 보인다. 저자와 발행인 모두 주소지가 인천으로 돼 있다.
 

야구규칙 외에도 연식야구규칙과 소년야구규칙, 경기용어가 부록으로 붙어 있는 은 본문 144쪽, 책 뒤 판권지와 광고 17쪽을 합치면 모두 162쪽의 분량이고(머리글 9쪽과 목차 3쪽을 포함하면 174쪽) 임시정가 일백 원으로 책 가격이 매겨져 있다. 이 책 123쪽부터 144쪽까지 21쪽에 걸쳐 풀이해 놓은 경기용어는 모두 244가지이다. 
저자인 최상준은 1999년 대한야구협회와 한국야구위원회(KBO)가 공동으로 발간한  에도 전혀 등장하지 않는 생소한 인물이다. 다만 동아일보 체육기자로 1936년 손기정의 베를린 올림픽 마라톤 우승 당시 가슴의 일장기를 지워 옥고를 치렀던 이길용이  서문에서 ‘제물포의 최 군이 신정벽두에 쾌보를 나에게 가져오니 야구규칙과 비록 간단하나마 용어 일부를 얽어맨 원고 한 묶음이 이것이다. 군은 인천공업의 코치로 야구를 생명처럼 안다니 우연치 않은 기연'이라고 언급, 최상준이 당시 고교야구부 지도자임을 알 수 있다. 
책 겉표지에는 포수가 홈플레이트로 들어오는 주자를 블로킹하는 장면, 책 뒤표지에는 야구 글러브에 공이 담겨 있는 캐리커쳐가 그려져 있다. 이길용과 초창기 야구선수 출신 이원용이 감수를 했고, 표지 밑에는 ‘OFFICIAL BASE BALL RULES’이 새겨져 있다. 
 
이 책은 맨 앞장에 유억겸 문교부장(미 군정청 때의 문교부 장관 격)의 ‘야구도의 진수’라는 글과 이길용의 서문, 당시 인천체육협회장으로 1948년 제헌의원을 지낸 곽상훈의 격려문이 들어 있다.
 
이길용은 서문을 통해 ‘왜색일소(倭色一掃)는 우리 스포츠계에서도 절실히 느낀다. 생생하고 빛나는 우리말로 용어를 되도록 살리고 우리 글로 이것을 지도할 필요는 더 말할 나위조차 없다. 해방 후 김용식(金容植) 군의 축구규칙 편찬이 있고 이번 최 군(崔 君)이 야구규칙(野球規則)을 저집(著輯)하니 흔치 않은 장한 일이다’고 언급한 데서 이 책이 한글로 된 최초의 야구규칙집임을 유추할 수 있다.  
1904년 미국인 선교사 필립 질레트가 이 땅에 처음으로 야구를 들여온 이래 일제 식민 치하에서 야구가 널리 퍼지기는 했지만 아직까지 한글로 된 야구규칙서가 발견된 사례는 없고, 그 기록 또한 없다. 따라서 그 시기에는 일본어로 된 야구규칙을 바탕으로 야구경기를 했을 것으로 보인다. 
에는 특히 중요한 야구사적인 사실이 명기돼 있어 그 동안 논란이 돼 왔던 한국야구의 기원 논쟁 등에 종지부를 찍을 수 있게 됐다.
 
저자인 최상준은 ‘자서(自序)와 야구연혁(野球沿革)’을 통해 한국야구의 중요한 사실 몇 가지를 정리해 놓았다. 
 
첫째, 한국야구의 기원, 즉 도입시점을 1904년으로 천명해 놓았다. 이는 이길용이 1930년 동아일보에 연재했던 에서 밝힌 것과 같은 내용으로, 여태껏 1905년으로 잘 못 알려져 있었던 ‘한국야구기원설’을 전면 수정해야 마땅한 중요한 판단 근거가 되겠다. 
둘째, 황성기독청년회에 이어 한국 최초의 학생 야구팀인 관립한성고등학교(현 경기고 전신)에 1905년에 야구팀이 탄생했다는 사실을 알렸으며,
 
셋째, 1906년에는 경신학교(현 경신고 전신)가 팀을 만들어 서양인이 코치를 했고, 1907년에는 휘문의숙(현 휘문고 전신)이 팀을 조직됐다는 것을 명기해놓았다.
 
넷째, 1909년 여름에 도쿄 유학생들이 야구팀을 만들어 귀국했고, 다섯째, 이 유학생들로 인해 룰을 전수받아 점차 야구를 이해할 수 있게 됐으며, 급속도로 팀이 생겨났을 뿐더러 유학생들의 스파이크가 달린 운동화와 정비된 운동복을 조선인들이 처음으로 접해보았다는 사실을 전하고 있다. 
그 뒤를 이어, 1912년 10월에는 전조선 연합팀이 김린의 인솔 하에 일본에 원정을 갔다는 사실을 밝혀놓았다. 그 때가 한국야구 최초의 해외원정경기였다.  
 
최상준은 “야구운동경기에 전통적으로 우수한 소질과 기능을 가지고 있는 우리 조선민족은 극악무도한 왜적(倭敵)의 최후의 발악으로 인해 야구경기의 용자(勇姿)를 세계운동무대에 자랑할 수 없었던 것은 참으로 울분에 넘치는 일이었다.”고 책을 내게 된 동기를 설명해 놓았다. 
 
최상준은 저자 머리글의 뒷부분에 “이 규칙은 서기 1945년도의 아메리카야구협회의 공인규칙과 같은 해 아메리카학생야구규칙에 준거해 저집(著輯)한 것이다”고 명시, 미국야구 규칙집을 바탕으로 이 책을 펴냈음을 밝혔다.
이 책에는 조선야구협회 심판부장 손효준(孫孝俊)의 ‘심판식(審判識)’이라는 심판의 기술과 자세에 관한 내용을 도해와 함께 실어 놓아 눈길을 끈다. 현행 야구규칙에는 볼 수 없는 이 같은 심판의 기술과 정신, 그 태도에 대한 손효준 심판부장의 글은 요즘의 심판판에 적용해도 전혀 손색이 없는 내용이다.
 
또 3쪽에 걸쳐 ‘경기와 예절’을 강조해 놓은 것도 주목할 부분이다. 모두 12개 항목에 걸쳐 경기에 임하는 선수, 지도자, 경기관계자들의 바른 자세와 마음가짐 가운데는 ‘경기는 총력을 기울여야 하고(3항), 경기 중에 암호, 괴성격려 등은 필요하면 제지하고 조잡하고 야비하지 않도록 장내의 인심을 격분시키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한다(5항)’는 등의 내용은 지금 우리네 프로경기에도 잘 들어맞는 조항이다.
 
야구용어 풀이는 한글을 앞세우고 괄호 안에 영어를 병기해 정리했다. 용어는 모두 244가지로, 최상준이 이 책을 저술함에 있어 미국야구규칙을 참조했다고 밝히긴 했지만 일본식 영어표현이 그대로 들어 있어 일본 야구규칙집의 중역 한계를 벗어나지는 못했다. 
 
이를테면, 아웃 커브(OUT CURVE)나 아웃 드롭(OUT DROP)을 ‘마구의 일종’으로 설명, 일본의 야구용어를 그대로 베낀 흔적이 있으며 대표적인 일본식 야구용어인 데드볼(DEAD BALL=원래 미국식 표현은 HIT BY PTICH), 겟투(GET TWO=DOUBLE PLAY), 게임셋(GAME SET=THE GAME IS OVER), 포볼(FOUR BALL=BASE ON BALLS) 따위가 그런 것들이다. 보크(BALK)를 야구인들이 된 발음으로 흔히 말하는 ‘뻑’으로 표기한 것도 웃음을 자아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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