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담동 앨리스' 박시후 소이현의 재발견, 문근영의 성장통
OSEN 손남원 기자
발행 2013.01.28 17: 49

[유진모의 테마토크] 서울시 강남구 청담동. 맑은 못이 있었으며 인근 한강물이 맑아 '청숫골'이라고 불렀던 데서 유래된 동네다.
겉으로 보기에는 화려하고 밝기만한 이 동네는 그러나 지금은 맑은 못은 오간 데 없는 대신 탁한 욕망이 꿈틀대고 어긋난 부의 힘자랑만 번뜩이는 곳이 됐다. 그래서 지난 27일 종영된 SBS 드라마 '청담동 앨리스'는 이 동네에서 '그들만의 리그'를 형성하고 결혼마저도 계약서에 의해 형성되는 '치외법권 지역'에서 '자치법'을 만들어 살아가는 사람들과 그곳에 들어가고 싶어 안달이 난 된장녀를 주인공으로 내세워 한편의 신데렐라 변주곡을 만들어냈다.
청담동을 앨리스가 꿈속에서 탐험한 '이상한 나라'로 은유한 이 드라마에서 시청자들은 흔한 '신데렐라 스토리'나 '캔디의 억척 성장기'가 아닌, 나름대로 신선한 사랑과 비즈니스의 합주곡을 읽을 수 있었다. 그리고 출연배우들은 어떤 이들은 수혜를 입었고 어떤 이들은 '본전치기'도 못했다.

더욱 정확하게 말하자면 '꼬픈남' 박시후(35)는 지금까지 보여주지 않았던 새로운 매력을 뿜어내며 인기에 가속엔진을 달았고 소이현(29)은 재발견이라는 찬사를 들으며 데뷔 11년만에 대기만성의 전성기를 열었지만 톱스타 문근영(26)은 이름값 그대로 인정받는 가운데 불편한 논란에 휩싸이며 그다지 소득을 챙기지 못했다.
박시후가 잘생긴 배우인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솔직히 장동건 소지섭과는 다른 미남배우다. 그렇다고 권상우처럼 근육질의 남성미가 두드러지는 것도 아니다. 뭔가 2% 부족했던 게 인정할 수 밖에 없는 진실이다.
그런데 박시후는 '청담동 앨리스'를 통해 자신의 핸디캡을 매력으로 승화시켰다. 그가 연기한 차승조(장 티엘 샤)는 청당동 럭셔리 부티크에서 맞춰입은 듯한 안성맞춤의 의상이었다.
지금까지의 드라마 속 남자주인공 중에 이렇게 독특하고 다중인격적인 캐릭터가 있었을까 싶을 정도로 복잡미묘한 심리를 지닌 인물이 차승조다. 어려서 아버지와 어머니의 이혼, 그리고 위자료 때문에 자신을 이용한 어머니 때문에 상처받고, 위압적인 아버지에 비위 상하고, 모든 것을 다 내던지면서까지 사랑했던 서윤주(소이현)에게 배신당한 승조는 현실을 현실로 인정하지 않고 꿈 속에서 살아야만 살아갈 수 있는 인물이다. 그래서 그는 현실이 힘들 때면 만사 제쳐놓고 도망가야 현실을 이겨낼 수 있다.
그런 그에게 사랑의 존재를 새삼 일깨워준 사람은 아이러니하게도 돈 때문에 자신에게 접근한 가난한 한세경(문근영)이다. 그녀와의 사랑을 꿈꾸는 차승조를 연기한 박시후는 작품 내내 귀여운 표정으로 고개를 흔들면서 약간 정신나간 듯한 행동으로 여성 시청자들의 가슴을 설레게 했다.
재벌 아들에 대기업 회장 그리고 잘생긴 외모지만 이렇게 부족한 내면이 오히려 여성들을 편안하게 만들면서 친근감을 준 것이다. 이런 차승조의 캐릭터와 박시후의 매력을 완성시켜 준 것은 그가 입고 등장한 청담동룩이었다. 박시후는 프랑스 유학을 다녀온 대기업 회장으로서 완벽에 가까운 '똑' 떨어지는 패션으로 남성미의 완성을 보여줬다.
 박시후가 최대치의 매력을 이끌어낼 수 있었던 것은 장동건같은 조각얼굴도, 현빈같은 고독남의 분위기도, 차승원같은 터프함도 아닌, 모성애를 자극하는 방황과 번뇌 그리고 트라우마 속에서 자신을 콘트롤하지 못하는 차도남의 갈등을 절묘하게 그려내는 가운데 패션을 적절하게 매치시켰기 때문이다.
 이 드라마의 가장 큰 수혜자는 누가 뭐래도 서윤주 역의 소이현이다. 지난 2002년 연예계에 첫발을 내딛은 이후 항상 B급에 머물러온 그녀는 이번 드라마를 계기로 드디어 주목받는 여배우로 단박에 우뚝 섰다.
청담동 며느리라는 캐릭터에 걸맞게 화려하지만 퇴폐적이지 않고, 심플하지만 촌스럽지 않은 고난이도의 세련된 패션과 메이크업으로 방송 내내 보는 이들의 눈을 즐겁게 해준 그녀는 '완판녀'라는 이번 드라마가 준 별명답게 패션리더로서 '제 2의 김남주'를 예고했다.
그것 하나만으로도 소이현의 성공을 간단하게 규정지을 수 있다.
어찌 보면 그녀의 성공의 배경은 문근영이었을 수도 있다. 일부러라도 가난한 집안의 딸을 연기하기 위해 촌티나는 포장을 한 문근영에 비해 그녀가 상대적으로 돋보였던 것.
아무리 그렇다고 하더라도 소이현 자체의 강점이 없었다면 이런 의외의 성공은 보장받지 못했을 것이다. 여배우로서 이제 무르익은 절정의 나이에 들어찬 소이현으로서는 조연이지만 주연을 뛰어넘는 존재감과 자신의 표현력으로 출연자중 가장 많은 것을 얻어갔다.
얼핏 보면 문근영이 맡은 한세경은 한 드라마의 여주인공으로서는 완벽한 캐릭터다. 평생을 빵을 구으며 살아왔지만 은행빚을 얻어 장만한 '내집'조차 제대로 지키지 못하는 무능력한 아버지를 둔 취업준비생으로서 유학 한번 다녀오지 못해 대학 졸업 3년만에, 그것도 윤주의 도움으로 계약직 사원으로 간신히 취업하는 현실은 참으로 서글프다.
하지만 누구보다 억척스러운 캔디인 그녀는 '시계토끼'를 잡아 신데렐라가 되겠다며 고군분투하며 살아가고 결국은 우여곡절 끝에 목적을 달성한다. 사랑도 비즈니스도 모두 성공시키는 해피엔딩의 주인공이다.
 하지만 문근영은 이런 좋은 조건 속에서도 아역배우 출신의 한계를 극복하지 못했다. 시청자들이나 관계자들이 공통으로 지적한 여고생 이미지를 완벽하게 벗어던지지 못했다. 그녀가 박시후와 키스신을 펼쳐도 왠지 어색한 이유는 시청자들은 아직도 문근영의 현재 얼굴에 오버랩되는 '가을동화'의 어린 송혜교 역과 영화 '어린 신부'의 여고생 신부의 귀여운 문근영을 떨치지 못하기 때문이다.
연기는 나무랄 데 없었다. 딱 문근영만이 해낼 수 있는 캐릭터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그녀는 한세경에 빙의된 모습으로 성공과 사랑과 양심 사이에서 갈등하는 세경의 심리상태를 잘 묘사하는 가운데 자신의 상처보다는 승조의 상처를 보듬고 치유해주는 성숙한 모습을 입이 쩍 벌어질 정도로 잘 소화해냈다. 하지만 화면 가득한 그녀의 얼굴과 승조가 그토록 목말라하는 순정의 주인공과는 어쩐지 세월의 격차가 느껴지는 것은 결정적인 비현실감이었다.
결국 문근영은 아직도 아역과 성인역의 중간계에서 성장통을 앓고 있는 것은 아닐까?
그렇다면 드라마 제목이 말하고자 하는 앨리스는 누구일까? 문근영, 즉 한세경이라고 1차원적으로 답할 시청자는 아무도 없을 것이다. 결론은 한세경 차승조 서윤주 그리고 타미홍(김지석) 모두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들이다.
세경은 타미홍에게 소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의 결말을 묻고 타미홍은 소설을 가져와 그녀에게 알려준다. 앨리스가 그냥 꿈에서 깨는 것이 끝인 줄 알았는데 앨리스를 꿈에서 깨운 언니가 다시 꿈속에 빠져드는데 그 꿈이 절반은 현실이고 절반은 꿈이라고.
그러자 세경은 그 언니가 눈을 뜨면 현실로 되돌아올 것을 알면서도 반쯤은 (꿈을) 믿고 사는 '어른'이라고 그 의미를 해석한다.
그렇다면 앨리스 언니는 세경이고 앨리스는 오히려 차승조가 아닐까? 게다가 오로지 비즈니스를 위해 사랑 따윈 거추장스러운 낡은 가방 쯤으로 여기며 내달린 끝에 청담동 며느리가 되지만 그토록 불안해하며 그 자리를 지키고자 했던 자신의 어리석음, 그리고 현실과 이상의 괴리감을 뒤늦게 깨닫고 과감하게 먼저 이혼을 선언하고 독립한 서윤주도 앨리스가 아닐까?
여기에 불리한 패인 줄 알면서도 지앤의류의 중추적 인물 신인화(김유리)를 배신하고 한세경 서윤주와 연합세력을 구축하는 무리수를 둔 타미홍조차도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이기는 마찬가지다.
[언론인, 칼럼니스트] ybacchus@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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