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프로야구 난투사](6) 삼성과 OB의 잠실 집단 난투극…김진규 빈볼, 강기웅 두발차기로 촉발
OSEN 홍윤표 기자
발행 2013.02.08 09: 57

원인 없는 결과는 없다. 야구 판의 사건도 마찬가지다. 빈볼도 이면에는 그만한 까닭이 있게 마련이다.
삼성 라이온즈와 OB 베어스(현 두산 베어스)는 프로야구 초창기에 유난히 서로 대립의 날을 곤두세웠던 구단이다. 프로야구 첫 해인 1982년에 초대 챔피언 자리를 놓고 맞섰던 두 팀 간의 라이벌 의식은 1984년에 두드러졌고, 1990년 6월 5일 ‘잠실구장 대첩’에서 절정을 이뤘다.
삼성-OB, 앙숙이 된 배경

삼성과 OB가 앙숙이 된 실마리는 거슬러 올라가면 1984년 시즌에서 찾아볼 수 있다. 1983년을 마치고 삼성 구단은 당초 김영덕 OB 감독과 손발을 맞췄던 김성근 OB 코치에게 감독직을 제의했다. 재일교포 선후배 관계였던 두 지도자는 김영덕 감독이 OB를 떠나 삼성 감독 지휘봉을 나꾸어 채가면서 사이가 틀어졌다. OB 감독직을 김성근 코치가 맡은 이후 불편한 관계로 발전, 그라운드 충돌이 잦았다. 그 같은 악연으로 인해 두 팀 선수들은 툭하면 빈볼시비를 벌였다.
결정적인 사건은 1984년 전기리그 1위로 한국시리즈 직행 티켓을 확보해놓고 있던 삼성이 후기리그 막판 롯데 자이언츠에 져주기 극을 펼쳐 OB의 한국시리즈 진출을 가로막고 나선 일이었다. OB는 그 해 후기리그에서 1게임차로 롯데에 뒤져 1위를 놓치고 한국시리즈 진출이 좌절됐다. OB도 한국시리즈와 무관한 해태 타이거즈와의 제주도 2연전에서 김일권의 도루왕 타이틀 만들어주기를 묵인한 대가로 승리를 챙겨 삼성이나 OB 모두 ‘승부 조작’의 혐의에서 자유로웠던 것은 아니었지만. 
그야 어찌됐든 1984년에 삼성과 OB는 그라운드에서 수시로 마찰을 빚었다. 보복이 되풀이된 몇 가지 사례를 살펴보자.
1984년 5월 2일, OB 홈구장인 대전 경기에서 OB 조종규가 삼성 김일융이 던진 빈볼을 얻어맞고 마운드로 달려가 주먹질을 했다. OB 김성근, 삼성 김영덕 두 감독은 ‘선수통제 불충분, 구장 질서 문란’ 이유로 한국야구위원회(KBO)로부터 나란히 경고처분을 받았다. 
5월 14일, OB 구천서가 대구구장에서 관중이 던진 빈병에 머리를 얻어맞아 부상을 당했다. 0-2로 뒤지고 있
던 OB가 6회 말 1사 2, 3루 때 포수 김경문의 3루 견제구를 OB 3루수 양세종이 삼성 주자 천보성의 머리에 태그한 것이 빌미가 됐다.  OB의 7회 초 공격을 앞두고 덕아웃 앞에 선수들이 모여 있는 사이, 흥분한 관중들이 오물을 투척했고, 그 와중에 구천서가 소주병에 얻어맞자 화가난 김성근 OB 감독은 심판에게 ‘몰수게임’ 을 요구하며 경기 속행 거부했다. 그 바람에 경기가 1시간 24분이나 중단됐다. 
사고 보고를 받은 서종철 KBO 총재가 “OB가 경기속행에 불응하면 게임을 몰수하고, 관중 소란이 또 일어나면 삼성에 몰수게임 패를 선언하라”고 지시, 사태를 겨우 수습했다. 구천서는 이마가 부어오르고 유리파편에 코 부위가 찢기는 부상을 당했다.
6월 2일,  OB 이홍범이 대전구장에서 고의적으로 삼성 유격수 오대석의 허벅지를 차면서 슬라이딩, 오대석은 그 해 시즌을 접었다.
1983년에 OB 구단에 입사, 뒤에 OB 구단 운영부장을 지냈던 정희윤 한양대 글로벌 스포츠 산업학과 교수(1990년 당시 OB 마게팅부 직원)는 “제일 큰 원인은 1984년에 삼성이 롯데에 져주기를 하는 바람에 OB가 한국시리즈에 못 올라간 것 때문이었다. 그 이후로 몇 년간 계속 으르렁거렸다. 또 사적인 얘기지만 삼성 감독직 제의를 받았던  김성근 감독이 김영덕 감독에게 상의를 했는데,  ‘가지 말라’고 했던 김영덕 감독이 대신 삼성 감독직을 맡자 감정의 앙금이 생겼다. 그 이후로 양 팀은 홈, 원정할 것 없이 편싸움이 잦았다.”고 증언했다. 
그 해 시즌 중 어느 경기에서는 OB 포수 배원영이 삼성 덕 아웃을 향해   “변태, 변태”를 소리쳤다가 김영덕 감독한테 따귀를 얻어맞는 일도 일어났다.  
삼성-OB 집단 패싸움
1990년 6월 5일, 잠실구장 집단 패싸움은 삼성과 OB 누적된 갈등과 앙금이 대폭발한 사건이었고, 난투극의 정점이었다. 그 사건에 앞서 5월 31일과 6월 1일 대구구장에서 열렸던 2연전에서 삼성이 20-3, 9-1로 대승했으나 빈볼성 투구가 많아 삼성 타자들의 신경이 곤두서 있었던 터였다. 사건 당일인 6월 5일에도 6회 2사 후 삼성 김용철의 타석 때 OB 김진욱의 초구가  머리 위로 날아오자 김용철이 피한 뒤 김진욱을 째려보는 장면도 생기는 등 부글부글 끓고 있던 양 팀 덕아웃은 폭발 일보 직전이었다.  
6월 6일치 1면 머리기사를 보면 ‘OB, 삼성 유혈 난투극’ 제하에 ‘최악추태, 주심구타, 빈볼시비, 공포의 그라운드’ 같은 용어로 사건을 그려 현장 분위기를 충분히 짐작케 한다. 당시 삼성은 정동진, OB는 이광환 감독이 지휘를 하고 있었다.
그나저나 6월 5일, 잠실구장에서 열렸던 더블헤더(연속경기) 1차전. 삼성이 9-4로 앞서 있던 7회 초 삼성 선두타자 강기웅(당시 26살)이 OB 5번째 투수 김진규(당시 28살)의 빈볼에 얻어맞았다. 
그날 3타수 무안타였던 강기웅이 4번째 타석 때 OB 김진규가 초구를 머리 위쪽으로 던지자 피한 뒤에 노려보며 “야이, ☓☓”라며 욕설을 하면서 “이 따위로 야구를 하느냐”고 흥분하자, 발끈한 OB 포수 조범현이 일어나 “선배에게 그런 말을 할 수 있느냐”고 힐난, 둘 사이에 가벼운 실랑이가 벌어졌다. 전초전이었다.
2구째, 김진규가 강기웅의 옆구리를 맞추자 화가 치민 강기웅이 배트를 든 채로 마운드로 득달같이 달려 나가 두 발 차기를 했다. 이를 신호로 마치 기다리기나 했듯 양 팀 덕아웃에서 선수들이 일제히 그라운드로 쏟아져 나와 40여명이 서로 발길질과 주먹다짐을 벌였다. 배트를 들고 위협하며 설치는 선수도 눈에 띄었다. 서로 밟고 밟히는 등 그라운드는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됐다. 하오 5시 26분께 벌어진 집단 패싸움은 속전속결, 2분 남짓 격렬하게 전개됐다.
그 와중에 삼성 2년차 투수 박용준이 OB 이복근의 발길질에 얼굴을 차여 서대문에 있는 고려병원으로 긴급 후송됐다. 패싸움을 말리던 김동앙 주심은 선수들의 발길질에 허리를 차여 심판실에서 응급처치를 받은 뒤 인근 영동정형외과로 후송, X-레이 촬영 결과 갈비뼈 하나가 부러진 것으로 나타나는 등 전치 3주의 부상을 입었다. 
그 경기에서 사건 당사자인 강기웅과 김진규는 물론 김종갑, 박정환(이상 삼성), 조범현, 김태형(이상 OB) 등 6명이 퇴장 당했고 주심이 부상으로 빠지는 바람에 3심제로 경기를 치렀다.
 
사건 직후 극심한 통증을 느껴 영동정형외과로 후송됐던 김동앙 주심은  “김진규의 초구가 강기웅의 머리위로 날아온 다음에 던진 볼은 명백한 빈볼로 판단 돼 퇴장 선언을 하려는 찰나에 강기웅이 뛰쳐나갔다.”며 “싸움을 말리려고 마운드로 나간 순간, 서로 뒤엉켜 넘어진 사이에 뒤쪽에서 누군가 발길질을 했다”고 설명했다.
난투극, 그 뒤
22분간 중단됐던 그날 사건으로 인해 주역인 김진규와 강기웅은 KBO로부터 나란히 10게임 출장정지와 벌금 100만 원, 배트와 마스크를 들고 그라운드에 난입했던 OB 포수 조범현과 김태형, 삼성 포수 박정환과 김종갑은 제재금 각 30만 원의 징계를 받았다. 
강기웅과 이복근 두 명은 형사입건까지 됐으나 처벌 받지는 않았다.  이튿날인 6월 6일, 삼성 박승호, OB 김광수 양 팀의 주장은 그라운드에서 서로 웃는 낯으로 화해의 악수를 나눴다. 
 
6월 7일, 체육부 주재로 KBO와 대한체육회, 치안본부가 ‘경기장 폭력사태근절 을 위한 관계기관 합동회의’를 열고 ‘경기장내 폭력, 난동 행위에 대해 강력 대처(그 시절 자주 듣던 소리다)하고, 폭력행위 발생 시 관련자를 중징계 한다. 선수, 임원, 관중을 막론하고 엄중한 법적 처벌 내린다.’고 공표했다.
OB 이복근의 스파이크에 밟혀  턱뼈가 부러지고 오른쪽 눈 꼬리와 아랫입술이 찢겨 20여 바늘을 꿰매는 중상을 당했던 박용준은 고려병원에 입원, 응급수술을 받았고 6월 23일에야 퇴원했다.
사건 뒤 삼성 구단은 6월 22일 KBO에 치료비 관련 질의서를 보내 ‘수술비 232만 원과 성형수술비, 연봉 (1000만 원)의 300분의 1(3만3000원)의 사고 이후 날짜 계산에 의한 보상, 박용준과 부모에 대한 정신적인 보상’ 등 보상처리비에 대한 유권해석을 의뢰했다. 그 일은 양 구단이 화해하면서 유야무야 됐다.
/홍윤표 OSEN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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