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번방의 선물' 대성공, '집으로'가 보인다
OSEN 손남원 기자
발행 2013.02.09 08: 12

 
[유진모의 테마토크] 지난 2002년 4월 개봉된 영화 '집으로'는 전국 420만 관객을 동원하는 대성공을 거둔다. 순제작비 13억원, 총제작비 30억원에 불과했고 '여주인공' 77살의 할머니 역의 김을분은 연기경험이 전무한 평범한 보통할머니였고 7살 상우 역의 유승호 역시 이제 막 연기를 시작하는 데뷔 신인이었다.
그렇다보니 이 영화는 '미술관 옆 동물원'의 이정향 감독이 연출한다는 것 외에는 내세울 만한 자랑거리나 마케팅 요소가 전무하다시피 했고 그런 만큼 개봉되기 전까지 이 영화를 눈여겨보는 이는 하나도 없었다.

하지만 막상 뚜껑을 열고나니 상황은 달랐다. 그렇게까지 큰 기대치를 못 줬던 이 영화는 입소문을 타고 수많은 관객들을 울리고 웃기며 이례적인 흥행돌풍의 돛을 올렸다.
내용은 간단하다. '이 땅의 모든 외할머니께 이 영화를 바칩니다'라는 감독의 메시지처럼 감독의 기억 속에 애잔하게 남아있는 외할머니에 대한 오마주를 담아 두 '남녀' 배우가 티격태격하며 영화의 전체를 이끌어간다.
도시에 살던 상우는 형편이 어려워진 엄마의 손에 이끌려 외진 시골구석 홀로 사는 외할머니의 집에 맡겨진다. 할머니는 말도 못하고 글도 읽지 못하는 시골의 순박한 촌로에 불과하지만 전자오락기와 롤러블레이드에 익숙한 영악한 도시소년 상우는 배터리도 팔지 않는 시골가게와 사방이 돌 투성이인 시골집 마당 그리고 깜깜한 뒷간 때문에 생애 최초, 최악의 시련을 겪는다.
상우는 자신의 할머니에게 노골적으로 욕구불만을 드러내며 투정을 부리지만 세상의 모든 외할머니가 그렇듯 짓궂은 상우를 외할머니는 단 한번도 나무라지 않고 어떻게든 만족시켜주려 애쓴다.
상우는 배터리를 사기 위해 잠든 외할머니의 머리에서 은비녀를 훔치고 양말을 꿰매는 외할머니 옆에서 방구들이 꺼져라 롤러블레이드를 탄다. 그리고 상우는 프라이드 치킨이 먹고 싶다고 손짓발짓을 다해 외할머니에게 설명하지만 결국 할머니가 내놓은 것은 닭백숙.
이에 실망해서 울고, '요렇게' 잘라 달라던 머리가 뭉텅 삐뚤빼뚤하게 잘린 것에 울고, 그렇게 할머니와 상우의 동거생활은 좌충우돌 이어지다가 결국 이별의 날이 오며 관객들의 손수건을 흠뻑 적신다.
최근 극장가에서는 '7번방의 선물'과 '베를린'의 흥행쌍끌이가 연일 화제다. 하정우 한석규 류승범 전지현의 화려한 캐스팅에 류승완 감독이라는 크레딧만으로도 '베를린'의 성공은 어느 정도 예견됐던 결과지만 '7번방의 선물'의 돌풍은 신선한 뉴스다.
'베를린' 개봉 이후 '7번방의 선물'은 흥행 1, 2위를 왔다갔다 하는 가운데 8일 500만 관객을 돌파하는 쾌거를 올렸다.
많은 영화 관계자들이 이 영화의 대성공을 분석하는 가운데 관객들은 입소문을 듣고 앞다퉈 극장을 찾는다. 이런 '7번방의 선물'의 성공의 배경은 무엇일까? 혹자는 '아이 엠 샘'과 '하모니'의 적절한 하모니라고 얘기하지만 실제 이 영화 속에는 '집으로'가 들어있다.
이 영화의 내용은 그다지 새로울 게 없다. 교도소 내의 감동스토리는 굳이 '하모니'를 거론하지 않더라도 흔하게 봐온 소재다. 게다가 6살 지능의 바보 아버지와 7살 딸의 애절한 부성애도 '아이 엠 샘'에서만 볼 수 있는 휴먼스토리도 아니다.
그렇다면 '7번방의 선물'과 '집으로'의 닮은꼴은 무엇일까?
우선 흥행을 보장할 만한 톱스타가 없다는 점이다. '7번방의 선물'의 주인공은 소위 '2000만 배우'라는 류승룡이 있지만 그가 출연한 히트작 '최종병기 활' '내 아내의 모든 것' '광해, 왕이 된 남자'에서 그는 철저하게 조연이었다. 그가 흥행의 절대이유는 아니었다. 게다가 그는 이번이 주연이 처음인 조연배우였고 이번 영화에서도 주연이라고는 하지만 사실은 화려한 진용의 명품조연들의 힘이 류승룡 한명의 힘과 대등했다는 점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두번째는 매력이 철철 넘치는 아역 주연배우와 그의 뛰어난 연기력과 매력이다. '집으로'의 유승호도 천연덕스럽게 연기를 잘 하고 누나와 이모들의 마음을 흔들 정도로 귀여웠다면 '7번방의 선물'의 갈소원도 당시의 유승호 못지 않은 연기력에 그 어떤 중녀남자라도 아빠 노릇을 하고 싶어질 만큼 사랑스러운 딸의 모습을 보여줬다.
가장 큰 매력이자 비슷한 점은 웃기는 영화인 줄 알았는데 울리고, 울리는 영화인 줄 알았는데 웃긴다는 것이다.
저질스러운 언어나 과장된 행동도 없이, 잔잔한 상황과 출연자들의 교감이 마음이 따뜻해지는 웃음을 준다. 그러다가 갑자기 폭풍눈물을 쏟게끔 관객들의 가슴을 후벼판다. 그래서 관객들은 미리 손수건을 준비해 '집으로'와 '7번방의 선물'을 보고 울다가 웃다가 감정의 양극단을 오가는 가운데 어느덧 엔딩크레딧을 보고 극장문을 나서며 '참 괜찮은 영화 한 편 봤다'는 뿌듯한 만족감을 느낀다.
물론 다른 점도 많다. 그 중에서 가장 돋보이는 것은 과장된 유치함이다. 말미에 교도소에 불이 난 설정이나 용구와 예승이 애드벌룬을 타고 하늘 높이 올라가는 장면이다. 감독의 과한 욕심이 빚어낸 옥에티로밖에 보이지 않는 생뚱맞은 장면이지만 관객은 용서한다. 왜? 배우들의 연기는 흠잡을 데 없고 캐릭터는 살아있으며 무엇보다 용구와 예승의 맑은 영혼이 눈이 시리도록 아름답기 때문이다.
[언론인, 칼럼니스트] ybacchus@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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