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프로야구 난투사](7) 1차 호세의 난…관중 오물 세례에 호세, 배트로 ‘되치기’
OSEN 홍윤표 기자
발행 2013.02.15 16: 26

펠릭스 호세(1965년생. 전 롯데 자이언츠)는 타이론 우즈(전 두산 베어스)와 더불어 역대 한국 프로야구 판에서 뛰었던 외국인 타자들 가운데 가장 인상적인 성적을 남겼던 선수였다. 호세는 더욱이 한 시즌을 온전히 소화했던 1999년과 2001년, 그리고 2006년에 ‘어김없이’  그라운드 폭력, 난투 소동을 불러일으켰던 장본인으로도 유명하다. 특히 ‘검은 갈매기’ 라는 애칭을 붙여준 롯데 팬들에게 호세는 ‘애증이 극명하게 엇갈린’ 외국인 선수이기도 했다. 
호세의 눈부셨던 성적을 잠시 살펴보자. 호세는 1999년 롯데에 입단, 그해 5월 9일  한국 프로야구 통산 1만호 홈런 (사직구장 해태전, 상대투수 최상덕), 5월 29일 한국 프로야구 최초 한경기 좌우타석 홈런(전주구장 쌍방울전, 좌타석 상대투수 유현승, 우타석 상대투수 오상민), 한국 프로야구 최초 이틀연속 만루 홈런(6월 20일, 사직구장 한화전 상대투수 한용덕, 6월 21일 사직구장 한화전 상대투수 김경원) 같은 기념비적인 홈런을 기록하며 36홈런(5위), 122타점(2위), 타율 3할2푼7리(9위)로 롯데의 포스트시즌 진출을 앞장서 이끌었다. 호세는 그런 공로로 그해 외야수 부문 골든글러브도 받았다.
1년 뒤 롯데로 다시 돌아온 호세는 2001년 역대 한 시즌 최고 출루율 ( .503)과 장타율 1위 ( .695) 타이틀을 따냈고, 2006년에 또 롯데의 부름을 받고 돌아와 2007년 5월 11일에 ‘퇴출’ 될 때까지 역대 최고령 출장 타자(만 42세 8일, 2007년 5월 10일, 문학구장 SK전), 역대 최고령 홈런(만 42세 8일, 2007년 5월 10일, 문학구장 SK전) 기록도 세웠다. 호세의 한국프로야구 무대 4년간 쌓은 개인통산 기록은 394게임에 출장, 411안타, 95홈런, 314타점, 타율 3할9리였다. 

그처럼 빼어난 업적을 남긴 호세는 왜 한국무대에서 난폭한 성향을 아낌없이 드러냈던 것일까. 여러 갈래로 해석이 가능하겠지만, 우선 그의 개인적인 난폭성, 가학적인 성향을 들 수 있겠고, 그를 ‘두려운 존재’로 여겼던 상대 팀 투수들의 지나친 견제와 자극, 일부 몰지각한 관중들의 거친 관전태도도 한 몫을 했을 것이다.  
한국야구위원회(KBO) 징계일지를 살펴보면, 펠릭스 호세는 모두 4차례나 징계를 받은 것으로 나타난다.
1999년 10월 20일, 롯데와 삼성의 플레이오프 7차전 때 관중석의 오물세례를 참지 못하고 방망이 던져 앙갚음하는 바람에 ‘벌금 300만 원과 2000시즌 10게임 출장정지’를 받은 것, 2001년 9월 18일 마산구장에서 삼성투수 배영수의 빈볼에 격분, 마운드로 달려가 주먹으로 배영수의 얼굴을 때려 ‘정규시즌 잔여경기 출장정지와 제재금 300만 원’ 조치를 당한 것, 2006년 5월 12일 볼 판정에 불만을 품고 허운 주심에게 욕설을 퍼부어 그 해 1호 퇴장선수가 된 대가로 받은 ‘제재금 100만 원’, 그리고 2006년 8월 5일 문학구장에서 빈볼 시비로 SK 투수 신승현과 옥신각신, 난폭한 행위를 한 죄로 두 번째 퇴장을 당하고 부과 받은 ‘벌금 300만 원’이 그 요약한 내용이다.  
호세의 ‘폭력 행위에 관한 위반’ 사례를 쫓아가 본다. 편의상, 그의 난폭 행위를‘1차, 2차, 3차 호세의 난’으로 명명하겠다.
1차 호세의 난
때; 1999년 10월 20일
곳; 대구구장
난투의 골자; 관중석에서 던진 물병을 급소에 얻어맞은 호세가 격분, 관중석을 향해 배트를 집어던져 한 관중이 부상을 입은 것.
1999년에는 한국 프로야구가 유일하게 양 리그를 실시한 해였다. 8개 구단을 드림리그(롯데, 두산, 현대, 해태)와 매직리그(한화, 삼성, LG, 쌍방울)로 나누어 리그를 소화했고, 양 리그 1, 2위 팀끼리 ‘엇갈려 붙기(크로스 토너먼트)’로 7전 4선승제의 플레이오프를 치러 이긴 팀이 한국시리즈에 올라가는 방식이었다.
그해 롯데는 드림리그 2위를 차지, 매직리그 1위였던 삼성과 플레이오프를 가졌다. 6차전까지 양 팀은 3승3패로 승부를 가리지 못했고, 10월20일 대구구장에서 마지막 승부를 겨루었다.
7차전은 삼성의 초반 우세→롯데의 추격과 동점, 역전→삼성의 재역전→롯데의 재동점과 연장 11회 뒤집기 승의 흐름으로 진행됐다. 포스트 시즌 사상 최다인 홈런 7발이 난무했던, 격렬한 경기였다.
2-0으로 삼성이 앞서 있던 6회 초, 삼성 선발 노장진의 변화구에 막혀 이끌려가던 롯데는 호세가 솔로 홈런을 날려 추격의 불씨를 지폈다. 호세가 3루를 돌 때 3루 쪽 관중석에서 누군가 맥주 캔 한 개를 그라운드로 집어던졌다. 호세가 캔을 피해 홈플레이트를 밟은 다음 1루 덕아웃 앞에서 동료들과 하이파이브를 나누는 순간, 관중석에서 물병이 날아들기 시작했다. 이 물병 가운데 하나가 호세의 사타구니 부위를 직격했다.
흥분한 호세가 분을 참지 못하고 구단 직원의 만류를 뿌리치면서 1루 스탠드를 향해 냅다 배트를 던졌고 사태는 순식간에 걷잡을 수 없이 관중석 전체로 번졌다. 호세가 던진 방망이는 1루 쪽 내야에서 관전하고 있던 박 모씨의 손목을 맞혔다. 삼성 응원 관중들이 기다렸다는 듯 호세와 덕아웃 앞에 나와 있던 롯데 선수들을 겨냥, 일제히 물병과 소주병, 맥주캔, 먹다 만 컵라면 국물 따위를 무차별적으로 퍼부었다.
일부 롯데 선수들도 관중들의 난동에 맞대응, 그물망을 타고 올라 발길질을 주고받는가 하면, 그라운드에 떨어져 있던 물병 등을 관중석에 되던지는 등 ‘응전’을 서슴지 않았다. 관중석에서도 치고받는 난투극이 벌어졌다. 삼성 팬들이 1000여 명의 롯데 응원단을 에워싼 가운데 물병 따위를 서로 날렸다. 그라운드 안팎이 온통 아수라장으로 돌변했다.
난동이 20여분 계속되는 동안 그라운드 주변은 온갖 쓰레기와 오물로 뒤덮였다. 대구구장에는 경기 과열을 우려, 경찰병력 2개 중대가 배치돼 있었지만 손쓸 틈도 별로 없었다.
경기가 중단된 상황에서 6명의 심판원들이 긴급 회동, 6심 합의 끝에 호세에게 임채섭 주심이 나서서 퇴장 명령을 내렸다.
오후 8시 8분께, 호세에 대한 퇴장 선언이 장내 마이크를 통해 방송되자 롯데 선수단이 흥분, 주장 박정태가 앞장서 짐을 챙겨 퇴장을 하자 다른 선수들도 뒤를 따랐다. 롯데 선수단은 “원인 제공을 한 관중들이나 관리책임이 있는 홈팀 삼성에는 아무런 제재도 하지 않고 우리 선수만 퇴장시킨 것은 균형에 어긋난다”며 “선수들의 안전이 위협받는 상황에서 경기를 할 수 없다”고 장비를 꾸렸다. 1루 쪽 관중석에서는 이들 선수를 향해서 다시 오물을 마구 던져댔다.
고인이 된 김명성 당시 롯데 감독은 퇴장하는 선수들에게  “경기를 포기하는 것은 프로야구에 커다란 오점을 남기게 된다. 다음에 또 관중 폭력사태가 발생하면 심판에게 몰수게임을 강력하게 요청하겠다”고 설득했다. 박정태가 “호세는 어떻게 되느냐”고 묻자, 김 감독은 “어떤 일이 있어도 관중에게 방망이를 던지는 것은 용납되지 않는다”고 엄한 표정을 지었다. 김명성 감독의 설득으로 롯데 선수들이 덕아웃으로 되돌아 왔다. 경기는 23분간 중단 됐다가 속행됐다.
마해영이 호세의 뒤를 이어 솔로 홈런을 날렸고, 경기는 2-2 동점이 됐다. 롯데가 7회에 김응국의 적시타로 3-2로 뒤집자 삼성은 8회 김종훈(2점짜리)과 이승엽(솔로)이 백투백 홈런을 날려 5-3으로 다시 앞섰다. 전세는 그대로 기우는 듯했지만, 롯데는 9회 1사 1루 때 임수혁(고인)이 등장, 임창용을 상대로 극적인 동점 2점 홈런을 날렸다. 결국 롯데는 연장 11회에 임재철의 좌전안타, 임수혁의 희생번트 다음 김민재의 좌전안타로 승부를 가르고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경기를 승리로 이끌었다. 롯데는 11회말 주형광이 삼성 3타자를 모조리 삼진으로 돌려세워 승리를 확인했다.
그 후
경기가 끝난 다음 삼성 선수단은 허탈감을 감추지 못하고 고개를 숙인 채 구장을 빠져나갔지만 롯데 선수단은 다시 시작된 1000여명 관중들의 난동으로 40여분간 덕아웃에 갇혀 있었다. 롯데 선수단은 밤 11시 15분께야 관중 소요가 본부석 출입구 쪽으로 몰리는 사이, 외야 쪽 출입구로 피신, 겨우 빠져나가 부산으로 이동했다.
그 날 관중 난동을 지켜본 관계자들의 당시 언론 인터뷰 내용을 정리해보자.
우선 소동의 당사자였던 호세는 “관중들이 너무 난폭하다. 왜 그러는지 모르겠다. 관중들이 그라운드에 오물을 던지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스포츠를 전쟁처럼 생각하는 것은 잘못이다. 방망이를 던진 것은 흥분해서 돌발적으로 일어난 행위로 죄송스럽게 생각한다”고 변명 겸 주장을 했다.
이철화 당시 롯데 단장은 “그라운드에 물병이 날아와 호세의 급소를 강타, 치명적인 부상을 입히는 몰상식한 행동이 일어난 현실이 개탄스럽다. 문화가 다른 미국에서 건너온 호세에겐 받아들일 수 없는 일이었을 것이다. 신판의 합의에 의해 퇴장 명령을 내린 것은 너무 성급하지 않았나 싶다. 호세가 관중에게 정중히 사과할 시간을 주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는 견해를 피력했다.
당시 김찬익 KBO 심판위원장은 “선수는 관객석을 향해 불순한 동작을 취해서는 안 된다. 하물며 방망이를 던지는 행위는 상상조차 할 수 없다”고 단호한 어조로 나무랬다.
KBO는 난동 다음날인 21일에 즉각 상벌위원회를 소집, 호세에게 2000시즌 10게임 출장정지와 벌금 300만 원, 선수들을 선동해 경기 속행을 거부했던 롯데 주장 박정태에게는 50만 원, 관중난동을 막지못한 삼성구단에는 100만 원 벌금을 각각 매겼다. 당시 호세에게 내려진 벌금 300만 원은 그 때까지 징계 가운데 최다액이었다.  
/홍윤표 OSEN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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