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겨울' '아이리스 2'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것은?
OSEN 손남원 기자
발행 2013.02.19 07: 40

[유진모의 테마토크] 지난 주 수 목요일은 안방극장 관객들에게 초미의 관심사를 제공했다. 캐스팅 스케일 스태프 등에서 기대치의 게이지를 극대치로 끌어올린 SBS '그 겨울, 바람이 분다'(노희경 극본 김규태 연출)와 KBS2 '아이리스 2'(조규원 극본 김태훈 표민수 연출)가 새롭게 시작됐기 때문이다.
공교롭게도 한날 동시에 새롭게 시작된 이 두 드라마는 여러 가지 분야에서 관계자는 물론 다수의 시청자의 관심을 끌기에 충분했다.
우선 '그 겨울'은 톱스타라는 표현이 조금은 남다른 조인성과 송혜교가 남녀주인공으로 호흡을 맞췄다는 점에서 단연 눈길을 끌었다. 두 사람은 각자 떼어놓고 봐도 작품 한 편쯤은 책임질 최정상급 스타인데 처음으로 한 프레임 안에서 갈등과 애정을 오가는 연기를 펼친다고 하니 당연히 큰 관심이 끌릴 수 밖에.

게다가 조인성은 드라마로서는 8년만에, 작품으로서는 5년만에 얼굴을 내민다. 드라마 '그들이 사는 세상' 이후 별다른 공식활동 없이 최근 중국영화 '일대종사' 소식만 간간이 감질맛 나게 전하며 팬들의 눈을 빨갛게 만든 송혜교가 5년만에 컴백한다는 희소가치도 만만치 않다. 당연히 두 사람의 이름값만으로도 이 드라마의 존재감은 상당히 눈부시다.
이를 반영이라도 하듯 '그 겨울'은 방송 전 이미 3회까지 광고판매가 매진됐다. 특히 조각미남의 대명사 조인성의 철철 넘치는 매력은 단연 메가톤급 화제다. 그의 엘빵패션이 유행조짐을 보이고 있는 가운데 연기력마저 극찬을 받으며 극중 이름을 붙인 '오수앓이'란 말까지 나올 정도다.
야구와 영화가 감독놀음이라면 드라마는 작가의 펜이 성패를 좌지우지한다. 예로부터 전통적으로 제작진이 작가의 명성과 필력에 전적으로 완성도를 기대왔으며 연출자는 대본의 토씨 하나 안 고치고 찍을 정도로 작가의 네임밸류에 대한 신뢰와 충성도가 강하다.
시청자들에게 작가의 이름은 배우 이상의 끌림을 주는 리모콘이다. 그런 의미에서 '그 겨울'은 마니아층이 탄탄하게 형성된 노희경 작가가 대본을 쓰고 있는데다가 일반적인 쪽대본에 의한 '생방송'이 아닌, 충분한(?) 사전제작이란 점도 완성도에 대한 각별한 믿음을 준다.
'아이리스 2'는 제작비 200억원의 블록버스터라는 점과 전작 '아이리스'가 평균 30%대의 시청률 고공행진을 했다는 점이 강점이다. 제작진은 쏟아내는 홍보의 물량공세에서 초호화 캐스팅이라고 특히 강조하고 있지만 장혁과 이다해의 조합이 조인성-송혜교에 비해서만큼은 '초호화'는 아니다. 다만 작품의 특성상 출연배우가 많은 인해전술이라는 점만큼은 사실이다.
대신 많은 제작비를 들여 헝가리 오스트리아 캄보디아 일본 등을 오가며 로케이션했고, 카체이싱을 펼치며, 다양한 화기와 무기 등을 등장시키는 대작이라는 점이 세일링 포인트인 것은 맞다. 게다가 '아이리스'의 이름값이 어드밴티지로 작용할 가능성이 크고 현재 흥행순항 중인 영화 '베를린'이 일으킨 첩보물 바람을 탈 수 있다는 것도 긍정적인 전망을 가능케 한다.
더욱 재미있는 점은 두 드라마의 스태프가 묘한 인연으로 얽히고설켜 어제의 동지가 오늘의 적으로 만났다는 점이다.
노희경 작가와 표민수PD는 방송가의 몇 안 되는 명콤비다. '거짓말' '슬픈 유혹' '바보같은 사랑' '고독' 등의 작품을 통해 지독하게 아픈 사랑을 그려내며 많은 시청자들의 눈물샘을 자극하는 가운데 마니아층을 만들어냈고 두 사람을 떼려야 뗄 수 없는 조합으로 고착시켰다. 그런데 이번에는 노 작가가 '아이리스'의 연출자였던 김규태 PD랑 손을 잡고 표 PD와 맞섰다.
세 사람은 송혜교 주연의 '그들이 사는 세상'에서 작가와 공동연출자로 호흡을 맞춘 바 있으니 이번의 대결은 참으로 기구한 운명이라고 볼 수 밖에 없다.
이런 여러가지 화제적 요소들과 더불어 각 제작사의 기대치로 인해 각 방송사는 유례 없이 홍보에 힘을 실으며 시청자의 기대치를 한껏 부풀렸다. 그래서 시청자들마저 이 두 드라마의 대결과 시청률에 관심을 갖게 됐다.
하지만 막상 뚜껑을 열고 보니 의외로 결과는 시시했다. 첫날 '아이리스 2'가 근소한 차이로 앞서더니 둘째날은 두 드라마가 전국기준 시청률 12.4%(닐슨코리아)로 동률을 기록하며 공동선두를 내달렸다. 하지만 이는 낯뜨거운 선두다. 꼴찌 MBC '7급공무원'은 12.1%로 불과 0.3% 포인트 밖에 안 뒤졌기에 향후 대결구도가 한치 앞도 내다보기 힘든 안개정국이다.
'7급 공무원'은 '그 겨울'이나 '아이리스 2'에 비교하면 여러 가지 면에서 불리한 핸디캡이 많은 드라마다. '그 겨울'만큼의 초정상급 배우가 포진된 것도, 작가가 그렇게 유명한 것도 아니다. '아이리스 2'와 비교하면 더욱 초라하다. '7급공무원'이 특수공무원이자 직장인이기도 한 국가정보원 요원들의 애환과 활약 그리고 로맨스를 그렸다면 '아이리스 2'는 국정원보다 더 내밀하고 긴박하게 돌아가는 조직 국가안전국(NSS)과 이에 대적하는 아이리스와의 '전쟁'을 그려내고 있는 만큼 스케일에서 비교가 안 될 정도다.
'7급공무원'에서는 8회까지 최우혁(엄태웅) 김성준(정인기) 단 두 사람 밖에 안 죽었지만 '아이리스 2'는 단 2회만에 NSS 대테러실장 박준한(성동일)이란 주요인물부터 수십명을 죽였다. 또한 '7급공무원'은 무기라야 권총이 전부지만 '아이리스 2'에는 각종 중화기는 물론 헬리콥터가 기본이다.
무엇보다 두 드라마의 뚜껑을 연 결과가 실망스러운 것은 시청률의 수치다. '그 겨울'은 그렇다고 치지만 엄청난 물량공세를 쏟아부은 '아이리스 2'가 '아이리스'의 30%대 시청률에 비해 반토막도 안 되는 것은 참으로 낯뜨겁다.
빈 수레가 요란하다고 했다. '아이리스 2'는 소문난 잔치판은 벌렸지만 막상 먹을 게 별로 없다.
장대한 스케일에 긴박감 넘치는 액션을 꾸겨넣다보니 스토리가 사라졌다. 사람들은 뛰고 구르고, 차는 굉음을 내며 질주하며, 이리 저리 총알이 난무하지만 시청자는 도대체 '저게 왜 저러지?'라고 의문을 갖는다.
지나치게 절제된 대사는 미덕이 아니라 시청자에 대한 최소한의 친절한 설명조차 무시한 독선이다. 스토리텔링보다는 보여주겠다는 의욕을 앞세우다보니 드라마의 흐름은 끊기고 설득력이 떨어지는 액션만 난무한다.
1부 초반에서 정유건(장혁)은 힘들여 무기밀매상을 잡아왔더니 박준한이 그의 얼굴에 총을 겨눈다. 그러자 정유건은 눈에 핏발을 세우며 '다시 한 번 내 얼굴에 총을 겨누면 그때는 둘 중의 한 사람이 죽는다'고 엄포를 놓는다. 향후 두 사람이 굉장한 갈등을 겪을 것처럼 그려졌지만 이후 두 사람은 NSS 실장과 팀장의 간부와 중간관리자로서 둘도 없는 사이로 그려진다. 이건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아이리스 2'가 앞뒤 얼개가 엉성한 불친절한 드라마인 점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예다.
차의 속도를 높이다보면 창밖의 사물이나 글자가 잘 안 보이기 마련. 이 드라마는 마치 시속 200km 이상의 차 안에 시청자를 가두고 창밖 풍경을 즐기라고 강요하는 느낌이다. 군더더기 없이 스피드하다고 자랑하지만 그저 빠르기만 할 뿐 정작 드라이브의 재미와 느낌은 사라졌다.
'그 겨울'은 잘 요리한 밥과 반찬을 평범한 상에 얹은 느낌이다. 이 작품의 원작 '사랑따윈 필요 없어, 여름'은 일본에서 절찬리에 방영된 10부작 드라마로 이미 2006년 김주혁 문근영 주연으로 국내에서 한차례 리메이크된 바 있다. 하지만 당시 영화는 크게 성공하지 못했다.
물론 당시의 영화와 이번의 드라마는 여러 가지 조건이나 양상은 다르다. 우선 캐스팅에서 앞서고 작가의 이름이 완성도에 기대치를 얹는다.
하지만 3회까지 방송된 지난 주까지 대본에서 크게 빛을 발하는 부분은 없다. 노희경 작가 정도면 16부작 중에서 3부작을 썼으면 한 개 정도의 명대사는 나와줘야 한다.
게다가 연출력에서는 더욱 기대할 게 없다. 첫 회 인트로에서 눈밭을 롱테이크로 잡아 허허롭고 황량하며 공허한 주인공들의 마음과 인생의 순탄치 않은 여정을 표현한 것은 좋았지만 그 뒤로 프레임 안에서 볼 것은 빛나는 두 주연배우의 외모와 패션 밖에는 없다.
게다가 조인성(186cm)에 비해 상대적으로 키가 작은 송혜교(161cm)를 배려하지 않은 카메라 워크로 그림은 언밸런스한 느낌이다. 이런 세세함을 거스르는 무성의는 적지 않은 시청자의 몰입도를 떨어뜨린다.
표민수-노희경 조합은 지상파 방송 사상 초유의 1%대 시청률이란 불명예스러운 기록을 지니고 있는 '시청률에서 자유로운' 대표적인 작가다. 하지만 표민수 PD는 드라마 '풀 하우스'에서 최대 40%를 기록하며 이런 굴레를 벗어던진 바 있다. 노 작가도 이번 '그 겨울'에서 그런 욕심이 있고 그런 의도를 대본 속에 담았다는 것을 역력히 느낄 수 있게끔 만든다.
그렇다면 '그 겨울'도 '아이리스 2'도 최소한 20%대는 찍어야 체면치레를 할 수 있다. 지금 시청자들을 확 끌어당기지 못하는 이유가 뭣이고 원인이 어디 있는지 빨리 밝혀내야 할 것이다. 안 그러면 '그 겨울'은 공들여 좋은 배우 캐스팅했다가 명성에 흠집 내면서 체면만 구긴 케이스가 될 것이고 '아이리스 2'는 여기저기 PPL 왕창 끌어들여 초호화로 치장했지만 막상 빛좋은 개살구에 불과했음을 자인하는 결과 밖에는 얻는 게 없게 된다.
[언론인, 칼럼니스트] ybacchus@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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