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세계’, 이정재에게 제2의 ‘신세계’를 선물하다[인터뷰]
OSEN 강서정 기자
발행 2013.02.21 10: 02

대중은 영화 ‘신세계’(감독 박훈정)를 통해 배우 이정재를 다시 보게 될 것이 분명하다. 연기파 배우 최민식, 황정민 사이에서도 자신의 색깔을 분명히 드러낸 이정재는 물 속에서 자유로이 유영하는 한 마리의 물고기 같았다.
신입 경찰 시절 강과장(최민식 분)에게 스카우트돼 국내 최대 범죄조직 골드문에 잠입, 8년 동안 경찰신분을 숨기고 활동하며 강과장과 정청(황정민 분)의 위험한 경계선에 선 자성으로 분한 이정재는 폭풍 같이 이리저리 휘몰아치는 격정적인 감정을 소름끼칠 만큼 잔잔한 연기로 표현했다.
이정재의 연기를 보고 있노라면 자연스럽게 감탄을 하게 되고 ‘어떻게 이렇게 연기를 잘 하지?’라는 반응이 절로 나온다. 그러나 이정재는 겸손했다.

‘신세계’, 이정재에게 제2의 ‘신세계’를 선물하다[인터뷰]

“사실 다른 작품들보다도 이 작품에서 많은 도움을 받았어요. 최민식, 황정민 선배 뿐 아니라 카메라 감독한테도 도움을 받았습니다. 조명에 따라 얼굴에 음영이 져서 표정이 달라 보이는데 내 연기가 잘 보이게끔 그런 부분을 잘 만들어줬어요. 자성의 심리적 갈등을 표현하는 수준에 대해 감독과도 많은 상의를 했었죠. 여러모로 많은 도움을 받았어요.”
희생을 요구하는 경찰과 피보다 진한 의리를 보여주는 조직 사이를 아슬아슬하게 오가는 자성 캐릭터에서 중요한 건 감정의 절제보다도 조화였다.
“내가 감정을 눌러야 하는 것보다는 조화를 맞추려고 했어요. 조직원에게 나의 신분을 들키지 말아야겠다는 걸 연기할 때는 자연스럽게 절제하는 거고 미치고 팔짝 뛸 것 같은 감정을 관객들에게 분출해서 보여줘야 하고 정청한테는 아무렇지 않다는 감추는 연기를 해야겠죠. 각각 복합적인 감정들을 조화롭게 소화해야 했습니다.”
‘신세계’, 이정재에게 제2의 ‘신세계’를 선물하다[인터뷰]
‘신세계’가 분명 거친 남자들의 세계를 담은 느와르 영화지만 이정재는 영화 속에 흔하게 등장하는 칼 한 번 잡지 않았다. 그것이 아쉽다면 아쉬운 점. 영화에서 자성의 몸의 움직임보다 감정의 변화가 더 중요했기에 이정재는 액션에서 한 발 물러서 있다.
“남자 배우들은 몸으로 하는 액션연기에 대한 로망이 있잖아요. 때리는 거든 뛰는 거든 몸으로 보여줄 수 있는 걸 하고 싶긴 했는데 그렇지 못해 좀 답답한 면이 있었어요. 주로 감정을 잔잔하게 보여줘야 해서 멜로영화 찍는 것 같다고 했어요.(웃음) 자성의 상황에 맞는 감정표현에서 조금만 더 보여줘도 안되니까요. 민식형이나 정민형의 분출하는 화려한 연기가 있다면 나 같이 잔잔한 면이 있어야 잘 어우러지는 것 같아요.”
또 하나 아쉬운 점이 있다면 러브라인. 영화에서 자성의 동거녀가 등장하긴 하지만 두 사람 사이에 그 어떤 미묘한 감정은 찾아볼 수 없다. 이정재는 ‘신세계’에서 철저하게 사랑의 감정을 배제했다. 이 점에 대해 아쉬움을 표하긴 했지만 그런 장면들이 없었기에 ‘신세계’가 더욱 견고한 작품으로 완성됐다.
“아쉽기는 했죠. 멜로라고 하기에는 애매하지만 동거녀가 자성을 불쌍하게 보이게 하는데 일조하는 캐릭터에요. 동거녀와 함께 등장하는 장면들이 있었는데 자성이 더 불쌍해 보이고 영화가 전체적으로 너무 어둡고 무거워 보일까봐 다 뺐어요. 멜로라고 할 수 있는 장면들이 빠지면서 영화에 좀 더 집중력이 생겼죠. 오히려 영화적으로는 좋았던 것 같아요.”
‘신세계’, 이정재에게 제2의 ‘신세계’를 선물하다[인터뷰]
이정재는 ‘신세계’에서 2010년 ‘하녀’에서 젠틀한 모습 속 날카롭고 이기적인 이중적 남자와 지난해 ‘도둑들’의 뻔뻔한 뽀빠이가 생각나지 않을 정도로 자성을 연기했다. 자성은 이정재였고 이정재는 곧 자성이었다.
특히 극 중 이정재가 분노를 표출하는 장면에서 오로지 얼굴 표정으로만 표현하는 모습은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울 만하다. 물건을 때려 부수거나 소리를 지르지 않고 얼굴의 미세한 떨림으로 분노를 표현한 안면연기는 그의 연기인생에서 최고로 꼽을만한 장면이었다. 표정이 살아있다는 느낌이 바로 이런 것이 아닐까.
“글쎄요. 그 장면을 많이들 얘기해서 집에서 샤워하면서 해봤는데 안되더라고요.(웃음) ‘저때는 어떻게 한 거지?’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전 연기할 때 집중을 많이 해요. 내가 캐릭터를 믿어야 다른 사람도 믿으니까요. 연기교본에 내가 먼저 느껴야지 상대방도 느낀다는 가장 기본적인 내용처럼 일차적으로 내가 느끼지 못하면 안되요. 얼마만큼 캐릭터에 빠지냐가 중요하죠.”
특유의 카리스마를 바탕으로 자성 감정의 티끌까지 잡아내서 표현한 이정재, 그가 관객들의 가슴을 충만하게 하리라 확신한다.
kangsj@osen.co.kr
민경훈 기자 rumi@ose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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